상단영역

본문영역

이곳에도 ‘꽃동네’가

[연재 32회]

  • 기사입력 2022.05.07 10:21
  • 기자명 이철원 전 아라우 파병부대장
▲ 아라우부대가 공사를 지원한 필리핀 레이테주의  ‘꽃동네’ 전경  

우리나라의 '꽃동네'는 잘 알려진 사회복지공동체로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14개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는 국제적인 구호단체이다. 지금은 이렇게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얻고 있는 꽃동네가 되었지만, 오웅진 신부가 1976년 11월 충북 음성에 최초의 꽃동네를 개원할 때에는 산기슭에 마련된 자그마한 판자 집에 불과했었다. 자신 또한 장애인의 몸이면서도 밥 동냥으로 자신보다 더 병든 걸인들을 먹여 살리고 있던 최귀동 할아버지를 만난 오웅진 신부가 큰 영감을 받아 세상에서 버려진 걸인들을 위해 '사랑의 집'을 만든 것에서 시작된 것이다. 현재 꽃동네는 세상에서 버려진 5천여 명의 입소원생과 천여 명의 수도자가 생활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회복지공동체로 발전했다.

어떻게 보면 아라우부대와 아무 관련이 없을 것 같은 꽃동네를 이렇게 소개하는 것은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아라우부대가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첫 번째는 마닐라에 있음) 개원하게 되는 꽃동네 건립을 지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대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현지 언론을 통해서 부대활동이 보도되고 입소문도 퍼져나갔다. 아라우부대가 레이테주에서 태풍 피해복구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세부와 마닐라에 있는 교민들에게도 서서히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여러 종교 및 복지단체 소속의 교민들이 가끔씩 부대를 방문하곤 했는데 그 중 한 달에 한 번 장병들의 종교활동을 돕기 위해 마닐라에서 신부가 찾아왔다. 부대에는 군종신부가 없었기에 한동안 신부가 집전하는 정식 미사를 드리지 못하고 현지 성당에서 주민들과 미사를 드리거나 신자대표인 헌병대장 주도로 약식으로 미사를 드렸었다. 그런데 우연히 부대를 방문한 수녀를 통해 마닐라에 있는 여러 한국인 신부와 수녀들 사이에 아라우부대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고, 마닐라에 있는 꽃동네 소속 신부와 수녀도 부대를 방문하게 되었다.

사실 마닐라에 있는 꽃동네 소속 신부와 수녀는 새로 취임한 프란시스코 교황의 부탁으로 태풍으로 폐허가 된 레이테주에 꽃동네를 만들기 위해 현지 조사차 이곳에 왔었고 이어 6월 24일에는 꽃동네 개원을 협의하기 위해 오웅진 신부가 부대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때 태풍피해 지역에 꽃동네가 만들어지게 된 사연을 오신부로부터 직접 듣게 되었는데 아라우부대와 꽃동네의 인연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교황이 즉위하기 전 아르헨티나의 추기경으로 있을 때, 아르 헨티나에 꽃동네 개원을 의논하기 위해 오웅진 신부가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으나 여러 일정들이 겹쳐 추기경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교황으로 즉위하자 오웅진 신부를 교황청으로 초청하여 필리핀 태풍피해 지역에 가난한 사람과 고아를 위한 새로운 꽃동네를 2015년 1월 중에 개원해 달라고 요청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현지 건설업체들의 능력을 고려했을 때 기간에 맞춰 개원이 어려웠기 때문에 필리핀 대주교와 오웅진 신부는 아라우부대에 꽃동네 개원을 위한 부지 정리를 직접 요청하였다. 당시에는 태풍 잔해물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나 부대가 보유한 중장비 운영에 여유가 있었다. 또한 이곳에 만들어지는 꽃동네가 태풍피해 주민을 돕기 위한다는 점에서 부대의 활동과도 무관하지 않았기에 흔쾌히 지원을 약속했다. 나는 꽃동네 부지정리를 위한 작업팀을 편성, 6월 30일부터 중장비와 전문인력을 투입하였다. 작업팀은 현지인들이 1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생각한 꽃동네 부지 6,000여 평을, 작은 산 하나를 없애 가면서 단 6주 만에 정리하였다. 그 결과로 꽃동네 공사는 아라우부대가 만든 부지 위에서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우리 가 철수하기 직전에 종료되어 15년 1월 17일, 레이테주의 태풍피해 주민들을 위해 교황께서 방문하여 꽃동네 (양로원, 고아원, 병원 등) 개원식을 가졌다. 부대는 꽃동네의 개원을 보지 못하고 2014년 12월 21일에 철수하였지만 태풍피해 주민들을 지원한 부대의 활동은 꽃 동네로 이어져 고아, 노숙자 등 불쌍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정사회
경제정의
정치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