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북만주 낙봉성 병영에서 들려오던..

[정현웅 역사소설] <종군위완부> ... '출장군무<25>'

  • 기사입력 2012.02.17 15:24
  • 기자명 정현웅
사람은 한번밖에 죽지 않는다고 하지, 그리고 반드시 죽는다고 하지! 그렇다면 두려워하지 말자. 옥경은 마음을 굳게 가라앉히며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려고 했다.하사가 잠을 자고 와서 풀어 준다고 했지만, 술에 취한 그가 깨어서 오기를 기대할 수 없었다.

더구나 아랫도리를 모두 벗겨놓았기 때문에 두어 시간 지나면 몸이 얼어 붙을 것이다. 밤이 되면서 기온은 더욱 내려가 영하 삼십여 도를 넘게 되었다. 벼랑위로 바람이 불어치자 살을 찌르는 추위가 엄습했다.

드러난 피부가 벌에 쏘이듯이 통증이 왔다.어쩌면 두 시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옥경은 다가오는 위기를 편안하게 맞이하려고 애썼다.다만 몸에 고통이 없이 죽기를 바라고 있을 따름이었다.

북만주의 겨울밤은 무척 추웠다.며칠 전 그 부근의 바위에서 한낮에 중국인 여자가 발가벗고 심문을 받다가 얼어죽었던 기억이 옥경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얼어서 죽을 때는 어떤 기분일까?

몸에 감각이 없어지고 죽음이 오는 것일까? 아니면 몹시 아프고 사지가 비틀리는 것 일까! 노출된지 잠깐인데 발이 얼어드는 것이 벌써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뒤따르면서 납덩어리라도 매달아 놓은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죽음의 속도가 그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옥경은 다리의 통증을 없애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려 보았다.바닥은 얼음이 얼어붙은 바위였다. 발로 바닥을 쳐서 다리에 느껴지는 통증을 없애고 좀더 견디려고 했다.팔과 몸은 묶였지만, 소나무에 묶이면서 두 다리는 자유스럽게 되었다. 그래서 두 다리를 가능한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지를 입지 않아 칼로 베어내는 듯한 차가움이 허벅다리에 전해 왔다.열심히 다리를 휘젓자 효과가 있었다.우선 몸이 땀이 배이기 시작했다. 다리로 올라오던 통증도 사라지고 새로운 기분이 느껴진다. 그것이 지속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옥경으로서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다리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동안 구름에 가렸던 초승달이 나타나며 그녀를 비추었다.

초승달은 그 빛이 밝지는 못했으나 어둠에 덮인 골짜기며 벼랑 주위를 희미하게 밝혀 주었다.달빛이 흰눈과 얼음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벼랑 아래쪽 저 멀리 들판이 보이고, 얼음이 얼어붙은 하천이 보인다.

달빛은 그 하천을 거울처럼 반사하여 번쩍이게 했다.초승달 주위에 별들이 있었고, 그것은 모두 얼어붙어 있다.그녀의 뺨은 이제 얼어서 추운 감각도 없었다.드러난 허벅다리는 감각이 없어졌다.다리운동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잠깐만 쉬어도 추위는 엄습했고, 땀이 나는 듯했으나 단번에 찬기가 온몸을 떨게 했다.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낙봉성의 병영은 조용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들려오던 오락시간의 노랫소리도 그쳤다.밤은 무거운 침묵 속에 쌓였다.소음마저 얼어붙은 느낌이었다.다리운동을 하다가 지쳐서 잠시 쉬고 있으면 그 침묵 속에서 가늘게 터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하였다.

숲을 지나 그 아래쪽에 병사들의 막사가 있었다.크게 떠들면 옥경이 묶여 있는 벼랑까지 들렸다.옥경이 소리를 지르면 병사들이 뛰어 올라올 만한 거리였으나 입 안에 잔뜩 물린 재갈을 풀 길이 없었다. 옥경이 묶여 있는 벼랑 부근에는 보초도 없었고, 순찰도 돌지 않았다.

옥경에게 살 길이 있다면 니시야마 하사가 술이 깨어 정신을 차리고 옥경을 풀어 주기 위해 오기를 기대하는 길밖에 없었다. 하사가 돌아와서 풀어 줄 때까지 얼어죽지 않는 길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이 들자 옥경은 다리운동을 시작하여 몸에 땀을 내었다.

다리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휘젓기도 하고, 발길질을 하면서 근육운동을 하였다.그러한 운동이 점차 둔해지는 것으로 보아 다리가 얼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나중에는 지쳐서 몸을 움직이기조차 괴롭다. 옥경은 그대로 죽을까 하는 체념조차 생겼다.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추위는 그렇게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몸이 얼면서 감각이 둔해지는 것이었다. 다리의 운동은 처음보다 훨씬 느려졌고 감각도 없어졌다. 이미 남의 살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옥경은 어렸을 때 고향 밤골에서 보낸 일이 떠올랐다.고향의 겨울밤은 추워도 아름다웠다.눈이 쌓여 있고, 얼음이 언 시냇가에서 동네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았다.밤이 되어도 눈얼음을 지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특히 설날이나 대보름이면 그러했다.대보름이면 쥐불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옥경은 그 아이들 틈에 끼어들어 덩달아 소리를 질러 대었다.그때는 겨울밤이 춥지 않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비록 빼앗긴 들판이지만 어린 가슴에도 아름다운 강산이었다.

그러나 북만주의 산골짜기 낙봉성 벼랑은 무서운 추위뿐이었다.죽음이 서서히 다가오며 그녀를 혼돈의 상태로 끌고 가려고 했다. 이제 그녀는 다리운동도 할 수 없었다.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다리를 추켜올리려고 해도 올려지지 않는다.안간힘을 쓰면서 다리를 올리려고 했으나 발이 바위에 늘어붙은 것 같이 떼어지질 않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정사회
경제정의
정치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