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문화와 종교 유적지 탐방 (1)

거지가 곧 위대한 성자인 나라, 인도

구장회 | 기사입력 2010/04/2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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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문화와 종교 유적지 탐방 (1)
거지가 곧 위대한 성자인 나라, 인도
 
구장회   기사입력  2010/04/26 [15:36]

인도사진1-1.
코끼리를 타고 축제에 젖어있는 인도인들

인도의 수도 델리는 구시가지인 올드 델리와 신시가지인 뉴델리로 나누어져 있다. 델리뿐만이 아니라 인도의 대부분 도시들이 그렇게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분되는 것은 인도의 과거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구시가지에 해당하는 곳은 영국 통치 이전부터 존재하는 역사적인 옛 성곽과 왕궁, 그리고 각 종교의 사원들이 있고, 인도 재래적인 시장 바자르(Bazar)가 있는 지역이다. 이 구시가지는 옛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힌두사원을 비롯해 이슬람교의 모스크가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신시가지는 바로 현대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는 높고 빽빽한 건물이 많은데, 이곳은 영국 식민지 시대에 건설된 곳이다. 신시가지의 특징은 구시가지의 외곽에 있으며, 군대를 주둔시켜 그 주변에 영국인의 거주지와 집무실이 있는 거리로 만들었다. 넓게 뚫린 길과 가로수, 관청과 은행, 대학, 식민지 시대의 호텔과 신축한 고급 호텔을 비롯한 유흥장이 있다. 올드델리와 뉴델리의 구분은 그렇게 보면 맞을 것이다.
나는 외국의 여러 나라를 다녀보았지만 인도만큼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나라는 극히 드물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중세기에 만들어 놓은 카스트라라는 신분 제도부터 시작해서, 빈부의 차이라든지, 여러 종교가 섞여 저마다 다른 표정을 내고 있다. 어느 도시든지 거지가 우글거렸는데, 그것은 빈곤하다는 점도 있겠지만, 어떤 타성 때문이기도 하였다. 구걸한다는 그 자체를 죄악시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인도의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많은 종류의 거지들을 만났는데, 겨우 말을 할까 말까하는 아이부터 시작해서, 팔순이 넘어 보이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있다. 노인 거지 가운데 일부는 그렇게 구걸하면서 수행을 한다고 한다. 힌두교의 수행자들 중에 일부는 죽을 때가 되면, 집을 훌쩍 떠나서 성스러운 도시(이를테면 겐지스강이 흐르는 바라나시 같은 곳으로) 간다. 가는 길이 멀어도 구걸을 하면서 목적했던 장소에 도달하고, 그곳에서도 구걸을 하면서 강가에 나가 죽을 날을 기다린다. 구걸해서 돈이 좀 모아지면 자신을 불태워 화장할 장작을 사놓고, 그 일을 할 사람을 구해놓는다는 것이다.
인도인들은 아침저녁 만나면 나마스테(Namaste)라고 인사를 하는데, 이 말은 <당신을 존경합니다>라는 뜻이다. 각 나라마다 인사법이 있는데, 미국이나 영어권 사용자들은 굿모닝(좋은 아침)이라고 날씨를 찬양하고, 중국인은 뉘 하오(너 좋아)라고 감정을 표현하며, 한국인은 안녕(잘 지냈느냐는 뜻)이라고 한다. 당신을 존경한다는 의미가 담긴 인도식 인사법은 바로 그들이 종교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도는 25개 주와 6개의 중앙정부 직할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는 연방정부인데, 지방 자치제가 영국식으로 잘 짜여져 있다. 제도적인 것은 영국식으로 잘 짜여져 있지만 실제 정치는 혼탁하고 각 주마다 경제적인 빈부 차이는 크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일이지만 잘 사는 주에 들어가면 먼저 길부터 좋다.
식민 통치를 했던 제국들의 특성은 비슷했겠지만 영국도 인도를 발전시키는 일보다 적당히 유지시키면서 시장 경제를 착취한 것을 알 수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 통치한 것을 일본 위정자 일부는 <한국을 발전시킨 일이다>고 망언을 한 일이 있다. 물론, 철도를 놓고 공장을 지었으니 전보다 발전은 되었겠지만, 그것은 모두 광물과 양곡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고, 발전에 한계를 두었다. 조선인 고급 인력은 제도적으로 막아서, 당시 고등기술이나 전기, 전자, 항공, 등 고급 기술자 양성을 억제하고, 주로 단순 노동에만 주력하도록 했다. 수많은 광물과 쌀을 가져갔다. 이와 같은 식민통치의 전형이 인도에도 해당되었다. 인구가 자그마치 약 8억 명이고 넓은 농토와 자원이 있지만, 발전은 늦다. 그것은 영국이 소모적인 식민 지배만 하였지 오늘날의 홍콩처럼 발전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를 지배하는 힌두교는 단순히 종교로만 생각할 수없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모든 생활과 의식, 나라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정치 구조에 이르기까지 힌두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인도에서 약 10%정도 되는 이슬람교와 시크교, 그리고 불교와 자이나교,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국민이 힌두교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종교에 대한 서약을 하든 말든 중요하지 않다. 태어나면서 바로 힌두교도가 될 수밖에 없고, 모든 생활 방식이 그 종교와 밀접하다.
그러나 인도의 도처에 남아 있는 종교 유적지가 모두 힌두교 사원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잘 알다시피 불교가 태어난 곳이 바로 인도였다. 인도가 독립이 되자 이슬람교 교도는 파키스탄이란 별개의 국가를 만들어 분리했는데, 현재 인도 국민 가운데도 이슬람교 교도는 적지 않은 편이다. 이슬람교는 6세기에 마호메트가 일으킨 것으로 코란을 성전으로 하고 유일신 <알라>를 숭배한다. 8세기에 이슬람교도군이 델리 지방을 점령하고 이슬람 왕국을 세워 인도에 이슬람교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도 북부 지역 곳곳에 이슬람교의 신전이나 왕궁이 남아있으며,

오늘날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인도1사진3.
타지마할 유적지 앞의 시장 풍경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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