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칼럼] 문학상賞 앞에 줄선 군상들

이오장 시인

  • 기사입력 2017.09.27 14:48
  • 기자명 이오장

▲ 이오장 시인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묘한 존재가 틀림없다. 협력과 대립의 일상에서 누구든 칭찬을 해주면 현재의 행동에 배가하는 초능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능력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 한정된 능력을 한꺼번에 쏟아내어 나머지 힘을 소진해버리는 부작용을 만드는 초능력이다.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는 데 능수능란한 인물이나 단체는 우리가 사는 곳곳에 진을 치고 자신들이 얻고자하는 그 무엇인가를 취하는데 이용한다. 그것이 상이다. 상이란 잘한 일이나 훌륭한 일을 마쳤을 때 칭찬하기 위하여 증서나 물건 또는 현금을 주는 것을 말한다.

원래의 목적대로라면 인간이 추구하는 목표에 제일 먼저 도달한 사람에게 여러 사람이 보답하는 의미에서 성의를 다하여 주는 것이 맞다. 한 사람이 먼저 도달한 일이 여러 사람을 위한 선도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고마움의 표시와 칭찬으로 주는 것이다.

사람 사회에는 의외로 상이 많다. 그만큼 역동적이라 할 수 있지만 정치적인 목적을 채우기 위하여 선동적으로 주는 상이 대부분이고 자신을 나타내려는 욕구에 의도적으로 만들어 주는 상이 의외로 많다. 칭찬은 목석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상은 대단한 효력을 나타내어 자신에게 충성하거나 어떤 일에 동참하여 따르게 하는 일직선의 줄을 만든다. 또한 상을 받으려는 열망이 무수한 군상을 만들어내어 목적을 달성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오히려 그것을 목적으로 시상하는 주최자가 많이 증가하여 부작용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상을 준다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고 칭찬을 받고 상을 받는다는 것은 영광이다. 그러나 상의 목적에서 벗어나 단체의 존립이나 영리의 목적을 가지고 시상한다면 과연 옳은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상이 난립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는 상을 빼놓고 각종 문학상의 현황을 본다면 어리둥절해진다. 1966년에 제정된 대한민국 예술원상 외 214개의 문학상이 등록되어 있고 등록되지 않은 비공식 문학상은 150여개 넘는다는 말이 있어 모두 합한다면 365개 이상의 문학상이 존재하는 것이 된다. 그만큼 한국문학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일까.

하지만 아니다. 오히려 문학의 질이 퇴보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어 이 문제를 논한다는 자체가 부끄럽다. 시상의 계절이나 무슨 행사장에서 각종 문학상을 시상하는 것을 보면 과연 그 인물에게 상을 주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고 시상이 끝나고 나면 이구동성 뒷말이 무성한 것은 왜 인가를 생각해 보자.

또한 어느 상을 받기 위하여 줄을 서고 끼리끼리 뭉쳐 한 부류가 상을 독식하기도 하며 심지어 금품이나 선물이 거래되기도 하는 것을 보면 한국의 문학상 가치가 얼마일지가 의문이다. 평생을 문학에 정진하며 많은 업적을 남긴 분들을 제외하고 전혀 의외의 인물이 받을 때는 그보다 더 큰 업적을 낳았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하지만 아무런 언급이 없고 기천만 원의 시상을 작품 몇 편으로 심사하고 심사위원들 몇몇이 독식 심사하여 자신들 편에게만 시상하고, 심지어 한 단체의 회장이나 이사장을 역임한 인물들에게만 매년 수천만 원의 시상금을 시상하는 상도 존재한다.
어느 문학지는 등단 2.3년의 신인들에게 회식비를 받아가며 시상하는 것도 모자라 시상자를 물색하여 흥정하기도 하는 암담한 현실에 무슨 해결책이 필요할까.

상은 상다워야 한다. 신인이라고 제외되어서도 안 되고 자기편이 아니라고 제외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문호를 개방하여 넓고 높은 시야를 가지고 정관이나 관례를 철저하게 지켜나가는 문학상이 한국을 노벨문학상의 나라로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또한 이러한 상을 받기 위하여 무리지어 줄을 잡으려 온갖 아첨을 하고 자신의 역량을 모른 체 상에 대한 욕심으로 뒷거래를 하는 군상들이 난립하는 것을 보면 수많은 문학상이 오히려 문학의 질을 떨어뜨리며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정사회
경제정의
정치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