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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문학지 홍수에 빠지다

  • 기사입력 2017.10.11 10:04
  • 기자명 이오장
▲ 이오장 시인

한 나라의 문학역량이 노벨문학상 수상횟수로 정한다면 한국은 당연히 꼴찌다. 아직까지 노벨문학상을 한 번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지의 숫자로 본다면 세계 1등으로 이 분야에 노벨상이 있다면 당연히 최고의 수상감이다. 유럽 문화계에 정통한 인사의 말을 빌리면 문학 강국이라 일컫는 프랑스는 인구 6,600만 명에 문학인은 2천 명 정도이고 문학지의 숫자는 150여 개 남짓이 전부라고 하는데 비해 한국은 인구 5200만 명에 등록된 문학인이 2만 명, 문학지가 300개가 넘는다. 등록되지 않은 지방 문인단체의 잡지와 개인이 발행하는 문학지를 합한다면 숫자는 훨씬 늘어나 문학인 3만에 문학지 5백여 개가 넘는다고 하고 있어 문학의 홍수 속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8년 최초의 월간지 "소년"이 최남선에 의해 발간되고, 1919년 김동인 주요한 전영택 등이 잡지 "창조"를, 1920년 "폐허", 1921년 "장미촌", 1923년 "백조" 등이 발간된 이래, 수많은 문학지가 탄생하여 한국문학의 발전을 주도한 것은 사실이다. 그보다 앞서 1896년 2월에 "친목회회보" 라는 잡지가 있었으나 문학지의 성격에서 벗어나, 한 단체의 회보역할을 하였을 뿐이고 본격적인 문학지는 아니었다.

이후 문학의 위상은 나라를 잃은 민족의 설움까지 안고가야 하는 숙명에 빠져 민족의 수난사를 안고 발전을 거듭했다. 한 나라의 문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문학지는 선도자 역할을 하며 그 나라의 문학을 이끌어간다. 거기에 따라 우수한 인물이 등장하고 민족의 정신을 일깨워 가는 것이다. 그런 것으로 본다면 우리의 문학지가 한국문학의 뿌리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초의 시작과는 반대로 문학지의 범람이 가증되고 있어 오히려 문학의 퇴보를 가져오는 것이 아닌지 염려가 되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과거 정지용 김소월 윤동주 서정주 박목월 등등 유명한 시인들이 활동할 때의 문학지는 손꼽을 정도여서 문학지를 통해 등단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만큼의 노력과 실력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때의 시인이나 소설가 등은 선망의 대상으로 어디를 가나 존경을 받고 누구든지 우러러봤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시인 소설가라고 말하기가 쑥스러울 정도로 민망할 때가 많다. 국민 대다수가 따라 외우고 정서적으로 위안과 희망을 주던 시를 이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아직도 윤동주 박목월 김소월 등등의 시는 관심이라도 가지지만 현재 활동하는 시인들의 작품은 발표되는 즉시 사장되고 만다. 왜 이렇게 됐는가. 현대시가 옛 시인들의 작품을 따라가지 못하는 졸작뿐일까. 아니다. 시와 소설 등 문학작품은 시대를 초월하기도 하고 시대의 아픔과 행복을 아우르기 때문에 그 시대의 모든 것이다. 따라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외면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다만 과학의 발달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각종 기계를 접하는 것이 편리하여 문학을 등한시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문학지가 문학의 질을 떨어트려 국민이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학지를 운영하는 데는 많은 금전적 요건이 필요하다. 그 이유로 경영상 많은 신인을 배출 운영비 충당을 하기 때문에 문학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이유라고 본다. 한마디로 독자로 남아 시집과 소설을 구매하여 읽을 독자들이 손쉽게 등단하여 너도나도 문학인 행세를 하는 데서 독자를 잃고 문학의 질이 낮아지는 것이다.

한 나라의 문화융성은 문학인이 주도한다. 또한 그만큼의 정신을 향상시켜 문화 창달로 이어지는데 돈 몇 푼만 들이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소설가 수필가가 되어 창작물이라고 발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 나라의 문학위상은 숫자로 판명되는 게 아니라 질로 판명된다. 이제라도 자중해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남이 하는 문학지를 외면하고 자신이 주도하는 문학지를 창간 또 다른 세력을 만든다는 것은 자중지란을 일으켜 세계적인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다르게 생각하여 전 국민의 문학인, 전 국민의 예술인을 지향한다면 모를까 그것은 하늘 밖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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