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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비동의 강간죄' 개정 계획 철회에 여성단체, 반발 목소리 '확산'

여가부, 강간 구성요건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 검토 시사
법무부 "개정 계획 없다" 반박···권성동 국민의힘 의원도 여가부 비판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한 목소리로 반발

  • 기사입력 2023.01.28 13:37
  • 최종수정 2023.01.30 18:08
  • 기자명 장영수 기자
연합뉴스
연합뉴스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의 '비동의 강간죄' 개정 추진 계획이 법무부의 반대로 사실상 철회되자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가부는 지난 26일 브리핑을 통해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을 발표하면서 법무부와 함께 형법상 강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브리핑에는 법무부 관계자도 동석했다.

그러나 여가부의 발표 이후 법무부는 출입기자단에 "'비동의 간음죄' 개정 계획이 없다"고 공지, 여가부 입장을 정면 반박했다.

법무부는 "여가부의 '비동의 간음죄' 신설 논의와 관련해 '성범죄의 근본 체계에 관한 문제이므로 사회 각층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반대 취지의 신중검토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도 페이스북에 "이 법('비동의 간음죄' 처벌)이 도입되면 합의한 관계였음에도 이후 상대방의 의사에 따라 무고당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동의 여부를 무엇으로 확증할 수 있나"며 여가부를 비판했다.

이처럼 법무부는 물론 여권 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자 여가부는 브리핑 후 9시간 만에 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제3차 기본계획에 포함된 '비동의 간음죄' 개정 검토와 관련해 정부는 개정계획이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그러면서 "이 과제는 2015년 제1차 양성평등 기본계획부터 포함돼 논의돼온 과제로, 윤석열 정부에서 새롭게 검토되거나 추진되는 과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린다"고 덧붙였다. 

여가부의 '비동의 강간죄' 개정 계획이 철회되자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강간죄개정을위한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제3차 양성평등기본계획은 당일인 1월 26일 양성평등위원회에서 이미 의결된 바 있다"면서 "법무부 장관은 양성평등기본법 제11조와 시행령 제8조에 의거한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이라고 말했다.

연대회의는 전국 210여개 여성인권운동단체와 전문가의 연대체다. 연대회의는 "장관이 위원으로 소속된 위원회에서 의결한 계획을 법무부가 나서서 당일 반대하고 부정한 것"이라며 "양성평등기본법은 성평등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담고 범부처의 책무를 체계화한 법인데 법무부는 이를 무시하고 나선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연대회의는 "'비동의 강간죄'는 20대 국회 시기 현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도 발의, 5개 정당 10개 국회의원실이 대표발의했던 법안"이라면서 "한국이 비준하고 있는 국제규약도 한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권고했다"고 강조했다.

연대회의에 따르면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는 2006년 제2차, 2017년 제3·4·5차에서 그리고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1년 제7차, 2018년 제8차 최종견해에서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여부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하고 배우자 강간을 범죄화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도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래로 바뀌지 않은 현행 강간죄는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항거 여부에 따라 그 죄의 경중을 물어 피해자에게 피해 유발의 책임을 묻는 악법"이라면서 "피해자에 대한 낙인을 법제화한 것에 다름 아니다"고 밝혔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비동의 강간죄'는 이미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우리 정부에 권고한 바 있는 법안으로 국제형사재판소와 유럽인권재판소는 동의 여부에 따라 강간을 판단하고 있다"며 "독일·캐나다·영국·스웨덴 등에서도 이미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성폭력의 법적 구성요건을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그런데 여가부의 공식 발표가 있은 후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이나 법무부의 관계자들은 여가부의 형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면서 "그러자 불과 9시간 만에 여가부가 입장을 바꿨다. 여성뿐만 아니라 국민들은 아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여가부의 발표 자리에 법무부 관계자가 배석했다는 것은 이미 법무부와의 조율을 마쳤다는 것"이라며 "그런데 여가부에서 발표한 '비동의 강간죄' 개정발의와 관련해서는 논의된 바 없다며 여가부의 발목을 잡은 법무부의 처신은 실망을 넘어 분노감을 느끼게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성폭력 근절과 예방의 안전망이 될 수 있는 '비동의 강간죄'로 형법 개정을 추진하는 여가부의 행보에 힘을 실어 주지는 못할 망정, 부처 간에 불협화음을 조장하고 여당의 국회의원이 여가부의 옆구리를 찌르는 경거망동을 방관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한 입 가지고 두 말 하는 행태'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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