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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학계의 거짓말 잔치(48)

신라는 중국 동해안 보하이성~절강성에 있었다!

  • 기사입력 2018.04.09 09:50
  • 기자명 황순종

▲ 황순종 『매국사학의 18가지 거짓말』의 저자

신라 영토에 대해서는 남조의 『양서』에도 보인다.

“신라는 백제의 동남쪽 5천여 리에 있다. 그 땅은 동쪽으로 큰 바다에 면하고, 남·북은 고구려 및 백제와 접해 있다.”

신라가 백제의 동남쪽 5천여 리에 있다는 이 내용은 매우 획기적이면서 충격적이다. 우선 백제의 동남쪽이라고 했으므로 이것은 한반도의 상황이 아님을 말한다. 매국사학의 반도사관에 따른다면 신라는 백제의 동쪽이라야 하며 동남쪽이라는 표현이 나올 수 없다.

또 동남쪽 5천여 리라고 했는데, 이것은 백제와 신라 사이의 거리를 말한 것이 아님은 상식에 속한다. 그러면 이 5천 리는 신라 강역의 크기를 말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5천 리(약 2,000킬로미터)라면 신라의 강역이 무척 광대했다는 것으로, 위에 본 복건성에서 절강성까지의 신라라야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한반도 동남부에 있는 신라라면 5천 리는 고사하고 2천 리라고도 말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매국사학자들은 이 문제에 꼭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신라는 백제의 남쪽, 고구려의 동남쪽에 있다!”

한편 『수서』 백제 조에는 백제의 “남쪽은 신라와 접해 있다.”고 했는데, 이 역시 현재 교과서에 나오는 한반도에서의 위치가 아니라는 것은 위의 『양서』의 기록과도 통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신라 조에는 “고구려의 동남쪽에 있으며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의 매국사학에서 주장하는 고구려와 신라는 남북으로 연결되어 있다. 더구나 평양의 낙랑 땅이 신라의 강역이라면 그곳은 더 확실한 고구려의 남쪽이 되지 동남쪽이 될 수 없다. 이것도 두 나라 모두 대륙에 있어야 성립되는 내용이다.

특히 평양 지역에 낙랑이 있었고, 고구려에 의해 멸망했다고 주장하는 현 매국사학자들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내용이다. 낙랑이 보하이 서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까지 신라가 차지한 상황을 언급한 것이며, 그런 이유로 중국에서 신라왕을 ‘낙랑군공’으로 칭했던 것이다.

신라 9주 중 신라 땅 3개 주는 절강성 지역에 있다!

다음은 『삼국사기』의 기록들을 살펴본다. 많은 기록이 있으나 신라 9주의 위치를 살펴보는 것이 가장 나을 것 같다. 31대 신문왕은 전국을 9주로 정비하고, 경덕왕이 재정비했했는데, 옛 신라 땅에 상주·양주·강주, 백제 땅에 웅주·전주·무주, 고구려 땅에 한주·삭주·명주를 두었다. 신라 9주가 관할한 군현이 무려 450이었던 점만 보아도 신라가 좁은 반도에만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우선 옛 신라 땅의 3주에 대해 『삼국사기』‘지리1’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왕성 동북쪽의 당은포 방면을 상주라 하고, 왕성의 남쪽을 양주, 서쪽을 강주라고 하였다.”
당은포가 왕성의 동북쪽이라고 했는데, 당은포(唐恩浦)는 당나라에서 백제를 칠 때 수군이 이르렀던 곳이므로 당나라 수군이 백제를 치기 위해 신라의 동해안에 상륙했다는 것이 말이 안 되므로 학계에서는 왕성 동북쪽이라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무시하고 아무 근거도 없이 경기도 화성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상주가 지금의 경북 상주라고 하는데 이곳은 왕성이었다는 경주의 동북쪽이 아니라 서북쪽이므로 전혀 맞지 않는다. 대신 모두 중원지역으로 보아 앞 호에서 별궁이 있었던 절강성의 임해보다 약간 북쪽을 당은포, 상주 지역으로 보면 이 기록과 정확하게 맞는다.

또 왕성의 남쪽으로 되어 있는 양주를 학계에서는 지금의 양산이라 하나 양산은 경주의 남쪽이 아니며, 왕성의 서쪽이라는 강주를 지금의 진주라고 하지만, 진주도 경주의 서남쪽이다.
▲ 오재성이 보는 신라 위치

강주에 대해서는 경애왕 4년(927) 조에, “후당의 명종이 권지강주사 왕봉규를 회화대장군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참고가 된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회화는 진(晉)나라에서 설치한 현 이름으로 옛 치소가 지금의 광동성 광주부 번옹현 동남쪽에 있었다고 하며, 강주는 지금의 광동성 덕경이라고 한다. 즉 신라의 강주 책임자를 중국에서 강주(광동성 덕경) 부근 지명을 딴 회화현 대장군으로 삼았다는 것이니, 신라의 강주가 광동성에서 가까운 곳이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광동성 지역은 위 『삼국사기』에서 말한 대륙 신라 왕성의 서쪽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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