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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신앙의 표적 ‘고창오거리당산’

  • 기사입력 2018.11.02 10:06
  • 기자명 정진해 문화재전문위원

문화재 : 고창 오거리 당산(국가민속자료 제14호)
고창 오거리 당산제(전북무형문화재 제37호
소재지 :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584-6번지, 282-4, 878-1



고창을 여행하다 보면 가장 먼저 생각하고 떠나야 할 곳은 국내 최대 밀집 지역과 고창오거리당산, 고창읍성, 그리고 선운사이다. 고창은 삼한 시대인 마한의 54개 소국 가운데 ‘모로비리국’이며, 백제 때는 ‘모량부리현’(모양현), 고려기대에 와서는 고창현으로 불러 오늘날 ‘고창’으로 계속 유지되어 오는 지명이다. 예부터 고창은 인목의 고장이자 예향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고장이다.

읍내에는 고창읍성이 자리하고 있다. 이 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왜침을 막기 위해 전라도민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자연석을 모아 축성한 성이다. 옛 전설에 의해 성을 밟으면 병이 없어 오래 살고 저승길엔 극락문에 당도한다고 하여 매년 답성 놀이 행사가 열린다. 성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 한다고 한다. 그러나 답성 놀이는 돌 한 개, 흙 한 줌도 부녀자들의 손과 머리로 운반하여 축성하였는데 당시의 대역사를 되새겨 보는 뜻으로 돌을 머리에 이고 도는 풍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또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도는 관습은 여인네들의 체중을 가중해 성을 더욱 단단히 다지게 하는 의도였다.

▲ 고창오거리당산제


고창에는 답성 놀이보다 더 큰 행사가 있다. 정월 대보름날에 행해지는 고을 당산제로 ‘고창오거리당산’이 그것이다. 고창읍의 다섯 방향에 위치한 다섯 마을 상거리, 안거리, 중거리, 하거리, 교촌리에 각 마을의 당산을 두었다. 각 마을의 당산은 자연 입석과 인공석간, 당산나무 등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중앙동 당산과 중거리 당산, 하거리 당산은 화강암을 다듬어 세운 석간으로 상부에 갓을 쓰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이를 ‘갓당산’이라고도 부른다. 이들 당산은 모두 할아버지 당산으로 불리고 있다.

▲ 중앙당산


고창 매일 시장에서 고창읍성 앞으로 옮겨 세워진 조선 후기의 석주형 당산인 중앙동 시장 안에 있었던 중앙 당산은 마치 당간이 서 있는 모습이다. 높이가 390cm에 이르는 높은 당산은 화강암으로 다듬어 세웠다. 3단으로 이루어진 당산은 8각으로 이루어졌으며 4면은 넓고 4면은 모서리각을 죽여 면을 만들었다. 하단 지름이 70cm나 맨 위의 지름은 65cm, 두께 7cm의 모양의 판석을 끼웠다. 당산을 타고 올라가는 새끼줄은 줄다리기가 끝나고 이 당산에 감아 놓은 것이다. 위로 올라가면서 좁아져 꼭대기에는 갓을 쓰고 있어 남성의 신격을 가진 할아버지 당산으로 부르고 있다. 갓을 쓴 석주라 하여 ‘갓당산’이라고 부르며, 은진미륵을 닮았다고 하여 미륵당산이라고도 부른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하여도 할아버지 당산 옆에는 할머니 당산 나무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남아 있는 것이 없어 정확한 위치나 형태를 알 수 없다.
석간에 ‘嘉慶八年 癸亥閏二月初十日’(가경팔년 계해윤이월초십일)라 음각되었는데 1803년 음력 윤달 2월 10일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석주를 만들기 위해 큰 비용이 들었을 것이며, 이때 비용을 낸 사람으로 추정된 이름이 새겨져 있다.
중앙 당산에서는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당산제가 열렸다. 당산을 관리하고 제사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당산답’을 두어 조성하였는데, 1948년 토지개혁 이후 민간에 불허되면서 충당될 경비의 출처가 중지되고 말았다. 당산제 날짜를 정해놓고 마을에 부정한 일이 생기면 이월 초하룻날로 연기한다.

▲ 중거리당산


고창읍의 중앙에 위치한 중거리 당산은 1803년 풍수 비보의 목적으로 세운 중거리할아버지당이다. 높이 328cm의 화강암을 다듬어 만든 석간 형태이다. 상부에 사각 모양의 갓을 씌운 모양이다. 석주의 면에 ‘千年頑骨屹然鎭南 癸亥三月 日’(천년완골흘연진남 계해삼월 일)이라 음각하였는데, “천년 세월 강한 몸체가 우뚝 솟아 남쪽을 누른다.”라는 뜻으로, 1803년 3월에 읍내 남쪽 축령산 일대의 강한 기운을 누르기 위해 세웠다.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자시에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면서 지내던 당산제는 6.25 한국전쟁 전까지 진행되었었다. 당산제에는 마을의 축제로 진행되었는데 연등놀이와 줄다리기가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연등놀이는 25개의 연등을 걸어 만든 연등대를 서로 부딪혀 상대방의 연등을 무너뜨리는 힘 싸움이었다. 고창 읍내의 주민을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연등대놀이가 끝나면 바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숫줄을 암술 안에 넣어 비녀목을 걸고 서로 잡아당기는 방식으로 동서팀은 최선을 다해 힘겨루기한다. 줄다리기에서 이긴 팀은 이긴 줄을 당산 상륜부에 끼운 뒤 아래로 내려감아 마치 용이 승천하는 형상을 한다. 이것으로 당산제가 끝이 난다.

▲ 하거리당산


고상천 남쪽 골목 안에 있는 하거리 당산은 중앙동 당산이나 중거리 당산과 마찬가지로 사각기둥 형태를 띠며 높이는 645cm이다. 두 당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표면이 거칠게 다듬은 대신 높이가 3당산 중에 가장 높다. 높이보다 갓 모양 장식은 가장 작은 크기여서 마치 돌솟대를 보는 느낌이 든다. 특이한 것은 석간을 받치고 있는 받침석이 석탑의 지붕돌을 뒤집어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석간을 세운 것이 아닐까 한다. 이 당산이 서 있는 곳은 옛 삼흥동 서부리 숲정이로 본래 숲이 우거져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팽나무 한 그루가 남아 있다. 당산 옆에는 팽나무와 ‘高敞邑內水口立石碑’(고창읍 내 수구입석비)가 있다. 팽나무는 할머니 당산으로 보고 있으며, 입석비 또한 당산으로 보고 있는데 아들 당산이라고도 한다.
석간 측면에는 ‘鎭西華表嘉慶八年 癸亥三月 日’(진서화표가경팔년 계해삼월 일)이라 음각되어 1803년 3월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이 당산은 읍의 서쪽 방위를 비보하기 위한 것이다. 하거리는 고상천이 있어 수재를 비롯해 각종 재앙을 비방하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룻날 저녁에 제의를 하였다.

▲ 상거리당산


상거리 당산은 읍내의 동부리로 불리는 천북동 골목길에 있다. 높이 180cm의 사각기둥 석간을 할아버지 당산이라 부르고, 모양동 큰 길가에 있는 높이 106cm의 자연석 입석을 아들 당산 또는 큰 부인 당산이라 하고, 민가 마당에 있는 팽나무 노거수는 할머니 당산, 민가 마당의 자연석 입석이 며느리 당산이다. 당산제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에 지낸다.

▲ 교촌당산


고창읍의 북쪽에 위치한 교촌 당산은 군청에서 북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길가에 있다. 본래는 고창중학교 앞의 길가에 할아버지 당산, 고창중학교 내에 할머니 당산, 향교 서편에 아들 당산이 있었으나 지금은 할아버지 당산만 남은 상태이다. 할아버지 당산은 석간 형태였으나 차량에 의해 훼손되자 고창오거리당산제보존회에서 1984년에 높이 220cm의 정사면체 돌기둥에 지붕돌을 얹은 모습으로 정면에 ‘鎭北華表(진북화표)’라 음각하였다.
할아버지 당산으로 옮기면서 아들 당산과 함께 마을 안쪽으로 옮겨와 현재는 할아버지 당산과 아들 당산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교촌당산제는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지낸다.

1803년 고을의 화주를 자청한 아전들이 지역의 허한 수구막을 막기 위해 잣은 침수 지역인 중앙과 중거리, 하거리에 기존의 자연입석신체를 높고 큰 인공 석주를 만들어 당산으로 모시면서 당산제를 지내왔다. 당산제는 이원화로 운영되고 있다. 각 당산 마을은 정월 초에 마을별로 행한 후에 정월 대보름날에 다시 전체 오거리 당산제를 중거리 당산 일대와 고창 문화의 전당 광장에서 지낸다.

▲ 고창오거리당산제


당산제는 먼저 굿판을 어우른 다음 진설-헌작-재배-독축-소지-음복 순으로 유교식 제례로 치러지며, 제의가 끝나면 연등놀이, 줄놀이, 줄예맞이, 줄시위굿, 줄다리기, 당산 옷 입히기 등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연등제작은 동부는 청색연등, 서부는 백색연등을 만들어 6m의 긴 간대를 축으로 하여 맨 위에서부터 등을 달 수 있는 적당한 간격으로 횡목을 대어 내려오면서 1, 3, 9, 11개를 매달아 총 36개의 연등을 단다. 줄다리기에 쓰이는 줄은 암줄과 숫줄로 만들어진다. 동부는 샌님 패의 줄을 제작하고 서부는 마님 패의 줄을 제작한다. 줄의 길이는 암수 각 50m로 하고 지름은 30cm가량의 굵기로 한다. 줄다리기는 풍물패를 앞세우고 동부 샌님 패는 줄 머리에 신랑을 태우고 서부 마님 패는 줄 머리에 신부를 태운다. 줄 놀이가 끝나면 양 진영의 줄머리 앞에 신랑과 신부가 서고 그 중앙에 합환주 거리와 과일을 차린 소반상을 차려 놓고 집례자는 전통혼례홀기에 준하여 줄 예 맞이가 치러진다. 예 맞이가 끝나면 혼례의 첫날밤인 암줄과 숫줄의 합방을 시도하는 놀이를 한다.

▲ 고창오거리당산제

합궁이 끝나면 줄다리를 한다. 줄다리기를 통해 서로의 힘의 승부를 겨룬다. 줄다리기에서 이긴 패의 줄을 한 해의 소망을 기원하며 중앙 당산에 줄 말미부터 시계의 반대 방향으로 감아올려 줄 머리 고리 부분을 당산의 삿갓에 걸치므로 옷을 갈아입히는 것으로 끝난다. 다른 하나의 줄은 태우는 것으로 줄다리기를 마친다. 마지막으로 짚단 위에 대나무를 쌓은 화단(火檀)에 불을 붙이는 소망 달집태우기를 한다. 대나무는 불에 타면 마디가 터지는 소리가 나는데 이것은 잡귀의 접근을 막는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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