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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범종의 완전한 정착작품 ’청녕4년명동종(淸寧四年銘銅鐘)

  • 기사입력 2018.12.07 10:54
  • 기자명 정진해 문화재전문위원

문화재 : 여주 출토 동종 (보물 1166호)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고려 시대의 유물 전시관에 범종이 크기별로 전시된 것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범종 한 구가 많은 관람객의 시선을 받고 있다. 범종은 사찰의 불구로 때를 알리거나 여러 불교 행사에 타종하여 중생을 구제하는 정정한 불음으로 상징되는 청동종인 범종이다.

범종의 시작은 인도 고래의 목관 타악기인 ‘건치(建稚)’와 중국 주대의 ‘용(甬)’, 또는 전국시대의 ‘박(薄)’ 등에 그 시원을 두고 발전한 것이라고 하는 설이 있는가 하면, 중국 은(殷)나라 이후에 악기로 사용되었던 ‘고동기(古銅器)’의 종을 본뜬 것과 고대 중국의 종이나 탁(鐸)을 혼합한 형식이 점점 발전되어 범종을 이루게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모두 정확하지는 않다.

▲ 상원사 동종 용통과 용뉴(국보 제36호)


우리나라의 종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불교가 전래한 이래 미륵사지 동탑지에서 발견된 ‘금동탁(金銅鐸)’이나 통일신라의 범종 등에서 그 연대를 찾을 수 있다. 특히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종(725년, 국보 제36호)과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성덕대왕 신종(771년 조성, 국보 제29호)이 대표적 범종이다. 이 두 범종은 종의 상부에 용뉴, 용통, 종신의 상대와 하대 무늬, 유곽과 9개의 유두, 비천상과 당좌를 갖춘 것으로 우리나라 범종의 전형적인 양식을 형성한 시원의 종으로 보고 있다. 종신에는 종의 조성 경위와 목적, 사용한 자료의 양, 공장(工匠)의 이름, 제작연대를 새긴 명문도 있다. 상원사 범종은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범종으로, 한국 범종의 조형인 동시에 규범이 되는 종이다. 봉덕사 성덕대왕 신종은 현재 국내에 있는 종 중 최대의 거종이다. 종신에 제작 연대와 주종 의장, 제작된 이유와 불법을 포교하게 된 내용 등을 명기하고 있다. 종신 상하에는 견대와 하대를 둘렀고 그 속의 주된 문양을 공양상과 보상 당초문으로 장식하였다. 특히 종구가 8릉형을 이룬 특수한 형태로, 일반적인 신라 범종과는 다른 유일한 예이다.

▲ 상원사 동종 비천상(국보 제36호)


한국 범종은 종정에 1개의 원통으로 된 음관인 음통, 용통이 있어 종의 내부와 관통하고 있는데 이것은 중국 종과 다르다. 종을 매달 수 있도록 종정에 배치한 용뉴는 한 마리의 용으로 되어 있고 좌우에 두 개의 앞발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중국 종이나 일본 종은 두 개의 용두가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한국 종은 범종의 전후좌우를 정하는 기준이 되는데 용머리의 방향이 전면, 음통 쪽이 후면이 되며 타종은 용머리가 보이는 전면 쪽에서 이루어진다. 종신의 상부 및 하부에는 아름다운 문양을 가진 상대(上帶)와 하대(下帶)가 있으며 상대에 인접하여 4개의 유곽이 배치되어 있고 그 내부에는 9개의 유(乳)가 있다. 종복(鐘腹)에는 당좌와 비천상, 또는 보살상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비천상은 천의 자락과 영락을 휘날리며 하강하는 천인의 모습을 새겼는데 천인들은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이나 향로를 바치는 공양상으로 믿음의 세계를 표현한 예술품이지만, 중국 종이나 일본 종은 단순한 선으로 구성된 것이 한국 종과의 차이다. 종의 소리는 불음(佛音)이라 하여 맥놀이와 길고 은은한 긴 여운을 가진 청아한 소리를 가진 것이 특징인데 성덕대왕 신종 소리는 우렁차고 여운이 길다.

▲ 성덕대왕신종 용통과 용뉴(국보 제29호)


신라의 종이 한국 전통의 맥을 이어온 종이라 하면 고구려와 백제의 종은 아직 어떤 형태를 갖추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1974년 8월에 실시한 익산미륵사지동탑지 발굴 조사과정에서 출토된 백제의 금동제풍탁(金銅製風鐸)에서 백제 종의 특징을 찾으려 했으나 신라 종에서 볼 수 있는 범종이 아니고 용종과 같이 평면이 타원형이었다. 상대나 하대, 유곽 부분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문대(素文帶)였다. 유곽 내에는 소문인 5개의 유두 돌기가 있다. 당좌가 배치되어 있는데 8판의 연판의 문양이 있고 이것이 전형적인 백제의 연판당좌이다. 이러한 점에서 신라 범종과 비슷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 성덕대왕신종 비천상(국보 제29호)


통일 신라 시대 이후 고려 시대를 넘어오면서 크게 변화를 주지 않고 부분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용뉴가 빈약해지고 용의 몸통이 구부러지는 등 장식적 면이 강조되고, 종의 어깨 부분 테두리에 연꽃잎 문양이나 여의도문양 등의 입하수식(立華垂飾)이 나타나고 음통 테두리에는 연주돌기문을 두었다. 상대나 하대에는 덩굴무늬나 보상화무늬 대신 번개무늬나 국화무늬가 새겨지고, 특히 하대나 유곽에는 범자문이 나타나게 된다. 종신에는 주악비천상이나 구름무늬 위의 연화좌에 앉아 있는 여래나 보살상이 배치되었는데 모두 네 구획의 유곽 사이에 배치된다. 당좌는 유곽의 아래쪽 면으로 옮겨지고 종구(鐘口)도 조금 벌어지고 규모도 작아져, 종신과 종구의 비율이 2:1에서 1:1로 변화하여 종의 외형이 가로 퍼지게 된다. 명문도 종이 다 만들어지고 난 뒤에 음각선조(陰刻線條)로 새겨 넣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변화는 고려 시대에 이르러서도 호국불교로서 왕실은 물론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확산되어, 범종을 주성하는 일도 성행하였다. 고려 시대의 범종은 전기와 후기에 따라 양식과 수법이 달라지고 있다. 전기는 북방(北方) 요(遼)의 연호를 사용하던 때로 신라 종의 전통을 이어오던 시기로 조각적인 것에서 공예적인 방향으로 흘러 공예미술에서 특색을 나타냈다. 후기에 들어와서는 고려예술의 각 부분이 치졸해지고 평민화 되어 가는 쇠퇴기에 들어서는 시기로 범종 또한 신라 종과는 달리 왜소해진 느낌을 준다.

▲ 청녕4년명 범종(보물 제1166호)


고려 전기에 속하는 대표적인 범종으로 성거산 천흥사동종(天興寺銅鐘, 1010, 국립중앙, 청녕4년명동종(淸寧四年銘銅鐘, 1058, 국립중앙박물관), 용주사 동종(龍珠寺銅鐘, 국보 제120호)의 3구를 들 수 있으며, 고려 후기에 속하는 범종으로는 정풍2년명동종(正豊二年銘銅鐘, 1157, 개인 소장), 내소사 동종(來蘇寺銅鐘, 1222, 보물 제277호), 탑산사동종(塔山寺銅鐘, 보물 제8호), 죽장사기축명동종(竹丈寺己丑銘銅鐘, 1229, 호암미술관) 등이 있다.

고려 전기에 주조된 범종인 청녕4년명동종을 살펴보면, ‘淸寧四年戊戌五月日記’라는 오목새김 된 명문이 있어 고려 문종 12년(1058)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 동종은 통일신라 범종 양식을 뛰어넘어 고려 시대의 범종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을 완연히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용뉴에서 보면 입을 천판 위에서 띠어 앞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고, 입을 크게 벌려 보주를 물고 있는 모습은 통일신라 동종에서 보지 못한 모습이다. 몸은 오메가(Ω) 형으로 몸을 한껏 둥글게 하여 마치 물방울 역모양의 공간을 두었으며 갈기와 비늘까지 섬세하게 묘사되었다. 다리 앞에서 좌우로 뿔처럼 길게 뻗어 나온 갈기 장식이 음통 좌우로 뻗게 한 새로운 모습을 더했다. 통일신라의 종에 비해 가는 긴 음통에 연주대문양을 따로 구획하고 연당초문양을 얕게 시문 하였다. 연주문대로 두른 상, 하대에는 생동감이 느껴지는 모란당초문을 섬세하게 장식하였다. 천판 외연에는 꽃잎이 피어있는 입상화문대처럼 띠를 두른 장식을 하였다. 이 또한 통일신라의 종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상대 위에 나지막하게 굴곡을 이루는 장식 띠도 고려 후기 종에 등장하는 입상화문대의 초보적인 단계로 볼 수 있다.

▲ 청녕4년명 범종 용통과 용뉴(보물 제1166호)


특히 상대와 하대의 모란과 줄기, 잎은 입체적으로 꼭 채워 표현하였으나 하대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하대는 모란을 더 강조한 대신 줄기는 간략하게 묘사하여 다르다는 느낌을 받도록 하였다. 상대와 하대의 모란문양 아래위에는 염주문양을 돌려 모란문양이 더욱 화려하게 느끼도록 하였다.
상대와 붙어있는 4개의 연곽대에는 상대와 동일한 모란문을 장식하였고 그 외곽을 염주문으로 바깥과의 경계를 이루게 돌렸다. 예부터 모란꽃은 깨달음과 해탈의 의미를 지닌 꽃이다. 모란문 주위의 구슬문(염주문)은 불교의 보배(佛珠) 혹은 세계와 생명을 상징하는 문양이다. 즉 종은 그 자체가 보배이고 종을 치면 깨달음과 해탈에 이른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 청녕4년명 범종 상대 유곽 유두(보물 제1166호)


연곽 내애 배치된 9개의 연꽃 봉우리 모습인 연뢰는 자방을 약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이 자방 주위의 연판문을 7엽으로 두르고 그사이에 간엽을 배치하였다. 연곽 바로 아래의 네 면에 번갈아 가며 불상과 보살상을 배치하였다.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두른 불상과 보살상은 측면관을 취하였고 연화대좌 위에 앉은 불상은 결가부좌를, 보살상은 무릎을 꿇어 합장한 모습이다. 연화좌 아래에는 구름이 받치고 있으며 신광 뒤쪽으로 길게 구름문이 솟아있다. 이러한 배치는 주악천인상이나 비천상이 아닌 불보살상을 번갈아 배치한 것은 최초의 범종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대 바로 위에 배치된 당좌가 사방에 각 1개씩 배치되었다. 이 종에서 처음 등장한 새로운 당좌 배치 방법이다. 당좌 중앙의 연과를 두고 가늘고 긴 16엽의 연판을 돌려 구성한 당좌의 문양은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당좌 한쪽 옆으로는 하대에 맞붙여 네모난 위패형(位牌形) 명문구를 구획하여 음각명문을 새겼고, 상부에 꽃무늬를 장식한 점이 특이하다. 음각으로 새겨진 해서채의 명문은 ‘特爲, 聖壽天長之願鑄, 成金鍾一口重一百. 五十斤, 淸寧四年戊戌五月日記(특위, 성수천장지원주, 성금종일구중일백. 오십근, 청녕사년무술오월일기)이 5행으로 기록되었다. 그해 5월에 150근의 중량을 들여 금종 한 구를 수명장수를 위해 발원하였다는 내용이다.

▲ 청녕4년명 범종 하대(보물 제1166호)


이 종은 1967년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상품리에서 우연히 땅속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존상태가 완벽하게 남아 있었다. 이 종은 길이 84㎝, 입지름 55㎝의 완전한 정착을 이룬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범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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