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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시마을]조정화, 상수리나무 도서관

  • 기사입력 2019.03.08 10:41
  • 기자명 조정화

상수리나무 도서관

조 정 화

양식이 고갈될 때면 상수리나무 숲으로 간다
다람쥐들 나무아래 쏟아진 꿈을 모으고
늙은 부엉이는 돋보기로 가끔씩 세상을 내려다보곤 했다
바람이 책장을 넘기는 도서관에서
노을이 물들던 순간들은 무지갯빛 책갈피가 되었다
상수리나무 이파리들은 우주로 향하는 창문이었다
책상에 웅크린 벌레들은 푸른 하늘이 보이는 유리창을 갉아먹었다
사그락 사그락 나뭇잎을 베어 먹는 책벌레들
깡마른 소크라테스가 책속에서 길을 뚫고 있다
하늘의 길을 만든 가지마다 새겨진 희망의 코드번호
나는 800번째 문학 앞에서 딱따구리처럼 나무를 쪼았다
811.7082가지에서 나온 벌레 한 마리
허기진 내 영혼의 양식이었다
코드에 접속하자 깜박이던 회로에 불이 들오고
어둠을 털고 나온 새 한 마리 종이 위에 집을 짓는다
수만 권의 서고를 간직한 상수리나무는 초록 잎을 펼치며
땅 속 깊이 뿌리를 뻗어 양분을 뽑아 올렸다
수액을 먹고 자란 벌레들이 허물을 벗고
둥지에서 깨어난 새들은 비상을 준비한다
종일 해가 지지 않는 상수리나무 도서관
나뭇잎 사이로 눈부신 영감이 쏟아져 내린다

김기덕 시인의 시해설/조정화 시인의 「상수리나무 도서관」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공부하는 도서관이 하늘 향해 가지를 뻗고 푸른 잎을 피우며 열매 맺는 상수리나무로 연상되게 한다. 양식의 고갈은 정신적 양식의 고갈이며, 꿈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실의 시대에 조정화 시인은 상수리나무숲으로 간다. 상수리나무숲은 오염되지 않은 현실이며, 꿈의 잎을 갉아먹는 벌레들이 사는 세상, 곧 도서관이다. 상수리나무 이파리는 우주로 향하는 창문이고, 벌레들은 푸른 하늘이 보이는 유리창을 갉아먹는다. 이 벌레들은 책벌레와 동일하며, 위대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와도 통한다. 또한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와 둥지에서 깨어나 비상을 준비하는 새들과도 상통한다. 초록잎 하나하나는 다 양분이 가득한 책이라서 상수리나무는 수만 권의 책을 간직한 도서관이다. 그래서 시원한 바람이 책장을 넘긴다. 노을이 물들던 순간은 무지갯빛 책갈피가 되어 다시 펴보고 싶은 추억이 되었다. 도서관은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모든 장소이고 현실이다. 그래서 푸른 꿈으로 하늘을 향해 치솟은 도서관엔 종일 해가지지 않고 책장마다 눈부신 영감이 쏟아져 내린다. 조정화 시인의 「상수리나무 도서관」은 적절한 비유와 아름다운 표현으로 읽는 이에게 깊은 감동과 상수리나무의 푸른 꿈을 선사한다. 또한 그 안에 담긴 깊은 철학성으로 인해 진정한 영혼의 양식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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