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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시마을]김나비, 나를 쇼핑하다

  • 기사입력 2019.03.29 11:09
  • 기자명 김나비

나를 쇼핑하다

김나비

올해 나는 201살
매장을 누비며 나를 쇼핑하는 것은
언제나 두근거리는 일
내 몸 각 부위의 만료일을 확인 하고
기한이 다된 부위부터 쇼핑을 한다

1구역에선
시력7.0짜리 노란 안구와 8.7짜리 파란 안구를 산다
얇은 눈빛은 두꺼운 과거의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
몸을?갈아입으면?고여 있는 삶이 출렁일까

2구역으로 향한다
교차하며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지난 해 중고로 판 내 얼굴이 누군가의 몸 위에 달려
무표정하게 나를 스치며 내려간다

입구에 발을 딛자 팔과 다리가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묶음 판매대에서는 팔 다리 세트도 판다
하나 값으로 두 개를 살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오늘도 나는 즐거운 리무빙을 하며
익숙한 방식으로 나를 잃고 또 나를 얻는다

김기덕 시인의 시해설/미래에 다가올 수 있는 삶을 현실적인 쇼핑과 연계하여 묘사하고 있다. 나이는 201살, 실재적으로는 약150여년 뒤의 일이다. 자동차의 부품을 갈 듯 인간의 기관이나 지체들도 필요에 따라 원하는 대로 교체 할 수 있음을 표현한다. 그러면서 안구를 갈았다고 과거의 기억을 지울 수 있을까 반문한다. 또한 몸을 갈아입는다고 고여 있던 삶이 출렁일까라고 의문하기도 한다. “중고로 판 내 얼굴이 누군가의 몸 위에 달려 무표정하게 나를 스치며 내려간다”에서 이미 나는 내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인간의 정체성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머리가 바뀌었다면 이미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데, 시인은 가슴으로 노래하기 때문에 머리도 하나의 지체로 본 것일 수도 있고, 정체성이 사라진 상징적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을 시인은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본다. “익숙한 방식으로 나를 잃고 또 나를 얻는다”고 표현한다. 결국 나라는 개념이 사라진 공유의 세상을 말한다. 그것은 육체적인 공유만을 의미하지 않고 정신적인 공유까지도 포함한다. 진정한 내가 없는 수명연장은 끔찍한 재앙일 수도 있지만, 나를 잃고 얻는 것에 익숙해진다면 즐거운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상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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