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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시마을]김명경, 중년의 판화

  • 기사입력 2019.04.12 10:44
  • 기자명 김명경

중년의 판화
김 명 경

먹통 같은 터널을 지나온 기차가
간이역에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시착한 비행기는 바퀴가 빠지고 심장이 멎었다
우주까지 날아가고 싶었던 연들이
낙엽처럼 추락한다
석양녘에서 떨며 몸부림치는 황혼의 이파리들
풍화된 늑골의 나목이 창백하다
새들은 해골처럼 서있는 안나푸르나의 빙벽을 알까
수직의 유리벽으로 세워진
히말라야 설산에 매달린 목숨이 흔들린다
입 벌린 악어들의 크레바스
노려보던 아마존의 포식자가 심장을 물어뜯는다
핏빛으로 물드는 강물의 일상이 흐르는 초원
사자갈기에 매달렸어도
끝내 창을 놓지 못하는 마사이 전사가 눈을 부릅뜬다
냉혹한 사막의 밤
낙타들의 뼈를 묻는 모래 바람을 뚫고
꿈을 실은 은하철도 999는 언제쯤 떠날 수 있을까
검은 계단을 오르는 태풍의 발자국 소리에
날개들의 추락은 끝이 없다

김기덕 시인의 시해설/김명경의 시 「중년의 판화」는 절벽 끝으로 내몰린 오늘날 중년들의 절망적 현실을 그리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군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정작 자신의 삶과 행복은 얻지 못하고,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배척된 채 불시착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우주까지 날아가고 싶은 꿈은 아직 가슴에 가득한데, 현실은 유리벽처럼 차가운 절벽에 매달려 있다. 언제 떨어져 크레바스에 빠질지 모르는, “핏빛으로 물드는 강물의 일상이 흐르는 초원”과 같은 상황에서 시인은 중년을 “사자갈기에 매달려서도 끝내 창을 놓지 못하는 마사이 전사”로 표현하고 있다. 냉혹한 사막과 같은 현실, 모래바람이 불고, 낙타들은 하나 둘 쓰러져 뼈를 묻는다. 김명경 시인은 실업과 소외와 무능력으로 내몰린 중년의 현실을 뼈아프게 표현하며, 80년대 만화영화인 ‘은하철도999’의 꿈을 실은 탈출을 기다린다. 이는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과거로 회귀하고픈 욕망과 희망찬 미래로 떠나고 싶은 욕망의 중첩이 아닐 수 없다. “풍화된 나목의 늑골이 창백하”지만 한때 그들의 그늘이 있어서 많은 이들이 행복할 수 있었음을, 또한 현재 넉넉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함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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