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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시마을]이정금, 해동

  • 기사입력 2019.05.10 13:48
  • 기자명 이정금

해동

이 정 금

겨울 지낸 수도가 조금씩
마당을 적시는 게 수상하다
시멘트 바닥을 깨고 보니
아버지의 위장처럼 피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보온재로 싸매놓고 무심히 지난 계절마다
수축과 팽창의 사이에서
아프게 곪은 줄은 몰랐다
땅을 더 파고 공사를 하기가 겁이 난다
고된 삶의 흔적들로 녹 슬은 철판같이
부식되고 있는 아버지의 몸은 이미
한계를 넘었다고 의사는 말한다
자신의 속내를 잘 잠그고 사셨다
가끔 꼭지를 틀면 갇힌 공기가 빠지듯
고인 아픔에서 비명처럼 파열음이 나곤 했었다
이제 잠글 일도 없는데
해동되지 못한 기억의 수로에
쇠 비린내를 풍기며 아버지가 박혀있다

김기덕 시인의 시해설/얼었을 때는 알지 못하다가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터진 배관에서 물이 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인생도 삶에 쫓겨 긴장하며 살 때는 멀쩡한 줄 알았는데, 먹고살만해져서 여유가 생긴다 싶으면 병이 찾아온다. 가정을 돌보기 위해 일만 하며 정신없이 살아 온 아버지는 아플 새도 없었다. 부식되고 녹슬어 간 몸은 손 댈 수 없는 한계를 넘었고, 아픔을 잘 참고 지내 온 아버지는 한 순간 얼어붙은 작자의 가슴에 쇠 비린내 풍기는 파이프로 박혔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은 오늘날 중년 세대들의 아버지 모습이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제 몸 하나 돌볼 새 없이 사셨다. 삶의 수축과 팽창을 겪는 격랑의 세월을 참고 땀 흘려 살아온 아버지들의 삶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존재한다. 그런 아버지의 기억이 가슴 한 구석에 안쓰럽게 얼어붙어 있다. 또한 일만 하며 자식들을 재대로 돌보고 가르치지 못한 기억도 아픈 상처로 박혀 있지만, 곧 해빙기가 찾아올 것이다. 그간 속내를 잠그시고 사신 아버지의 삶을 이해할 때쯤이면 자식 된 삶에도 누수가 찾아오고, 계절이 순환하듯 삶의 주기도 반복되는 것임을 시인은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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