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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쟁기념관, ‘적대와 왜곡 그리고 배제’로 가득 차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용산 전쟁기념관 전시 문제점과 대안 토론회 개최

  • 기사입력 2019.06.05 19:52
  • 기자명 은동기 기자

-전쟁박물관이 오히려 최적의 인권박물관, 평화박물관이 될 수 있어야

“전쟁 피해의 상당수가 여성과 아동임에도, 그동안의 전쟁경험이 오로지 ‘남성•군인•전투’를 중심으로만 설명되었다. 용산 전쟁기념관 역시 여성에 관한 내용은 거의 부재하고, 또한 전쟁기념관의 추모대상이 다양한 피해에 대해 다루지 않고 획일적으로 국가를 위한 희생에만 국한되고 있다.”

[한국NGO신문] 은동기 기자 = 한국군의 문제점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통해 한국군을 인권과 평화, 민주주의를 지키는 군대로 변화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는 6월 3일 오후 3시에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용산 전쟁기념관 한국전쟁 관련 전시의 문제점과 대안>을 주제로 첫 번째 토론회를 개최했다.

▲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는 6월 3일 오후 3시에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용산 전쟁기념관 한국전쟁 관련 전시의 문제점과 대안'을 주제로 첫 번째 토론회를 개최했다. ©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제공

이번 토론회를 주최한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는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해서는 우리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그 중에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 69년 동안 쌓여 온 ‘증오와 적대감의 극복’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대두된다고 밝혔다.

1987년 민주화 대투쟁의 열기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요구로 확산되자 마지막 군사정권이었던 노태우 정부는 1988년에 전후세대 안보관 확립을 명분으로 용산 전쟁기념관 건립을 기획했다.

국방부 주도로 건립된 용산 전쟁기념관의 9천여 점에 달하는 전시 내용 중 많은 부분은 한국전쟁과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졌으며, 그 주된 내용은 북한에 대한 적대감 고취, 사실에 대한 왜곡과 배제로 가득 찼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는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은 북한에 의한 남침으로 단순화되고, 당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남북관계나 국제정치적 맥락 등 총체적 인식을 얻기는 어렵다”고 지적하고, 국가권력의 잘못에 의한 희생으로 밝혀지고 두 차례나 대통령 차원의 사과가 있은 제주 4·3 역시 용산 전쟁기념관에서는 좌익세력의 무장투쟁에 의해 발생한 희생으로 규정되고 있다“면서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등의 사실은 전시 내용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는 “특히 홀로그램과 디오라마 방식을 동원한 전투와 무기 중심의 전시는 전쟁을 마치 게임처럼 느끼게 하며, 전쟁으로 인한 고통보다 오히려 친근감과 흥미를 고취시키고, 상대에 대한 적대감에 기반한 ‘힘을 통한 평화’라는 메시지는 우리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안보제일주의와 군사력 강화의 명분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1년에 2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관람하며, 그 중 70만 명 이상이 청소년과 어린이들이라는 점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9년, 한반도의 평화를 준비해야 하는 지금, 왜곡된 안보관과 그릇된 역사적 사실을 전시하는 용산 전쟁기념관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는 한반도 평화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해 증오와 적대감을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아직까지 북한에 대한 적대감과 전쟁을 고취시키는 방향의 전시를 하고 있는 용산 전쟁기념관의 전시를 바꾸기 위한 차원에서 연속 토론회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평화 지향적 전쟁박물관 사례 : 오키나와평화기념공원, 베를린-칼호스트 독일-러시아 박물관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박래군 대표의 사회로 진행왼 이번 1차 토론회에는 정근식 교수(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김민환 교수(한신대학교 평화교양학부), 전진성 교수(부산대학교 사회교육학과)가 발제에 나섰으며, 조정아 교사(전국역사교사모임 연대사업부장), 김명희 교수(경상대 사회학과)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토론회 자료집 보기>

‘전쟁기념관 재론’으로 첫 번째 발제에 나선 정근식 교수는 현재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필요성이 논의되는 이 시기에 여전히 냉전분단체제의 특정기억만을 재생산하는 전쟁기념관을 지적하면서 전쟁기억이 다르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한국전쟁이 한국과 북한만의 전쟁이 아닌 세계사적이고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이해되고 기억될 때에야, 전쟁기억이 국가주의나 반공주의를 정당화하는 데에만 쓰이지 않고 보편적인 평화를 지향하는 자원이 될 수 있다”면서 “전쟁기념관이 민간인 학살과 포로 문제와 같은 전쟁의 어두운 측면을 감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민환 교수는 ‘전쟁의 낭만화와 평화의 낭만화 사이에서 : 일본, 오키나와의 기념시설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두 번째 발제에서 일본의 전쟁책임을 다루지 않고 전쟁을 찬미하여 전쟁을 낭만화하는 ‘야스쿠니적 방식’과, 원폭 피해만을 주장하며 전쟁책임과 히로시마의 군사기지화를 다루지 않고 평화를 낭만화하는 ‘히로시마적 방식’이 다르지 않다고 지적하고, “위와 같은 일본의 방식에서 벗어난 오키나와평화기념공원에서는 민간인의 전쟁체험을 중심으로 다루기에 증언 등을 통해 일본군의 학살 사실 등 전쟁책임을 드러내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전진성 교수는 ‘기념에서 애도로 : 독일 전쟁박물관의 사례’ 제하의 발제에서 전쟁박물관은 오로지 군인들의 군사적 경험만을 다루는 군사박물관이며, 평화박물관과는 대척점에 설 수밖에 없다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독일의 박물관을 평화 지향적 전쟁박물관의 사례로 들었다. 전 교수는 호전적인 관점을 배제하고 범유럽적 지향에서 중립성을 택한 베를린의 독일사 박물관, 냉철한 관점에 기초해 엄격한 사실성을 중시한 바이에른 전쟁박물관, 전쟁의 고통과 일상, 사망자에 대한 기억/애도를 중시하는 베를린-칼호스트의 독일-러시아 박물관 등의 사례는 전쟁박물관이 오히려 최적의 인권박물관 혹은 평화박물관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회에서 조정아 교사는 ‘평화·인권감수성 증진을 위한 전쟁기념관 낯설게 보기’ 제하의 토론문을 통해 한반도 평화의 가능성이 드러나는 이 시점에 역사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냉전과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를 가르쳐야 할 과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교과서의 한국전쟁 내용은 안보논리에 머물러 있으며, 교실 내에서 요구되는 자기검열 등의 문제로 인해 한국전쟁 교육이 분단체제에 갇혀 있음을 지적했다.

조 교사는 전쟁기념관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학생을 대상으로 준비한 교육 대부분 ‘무기’에 관련되며, 안보논리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것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한·중·일 학생들과 진행했던 ‘전쟁기념관 낯설게 보기’를 사례로 제시했다. 그는 이 활동을 통해 동아시아 학생들이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토론할 기회를 가졌고 전쟁의 어두운 면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다며 전쟁을 평화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쟁과 젠더 : 용산 전쟁기념관이 여성을 재현하는 방식과 그 효과’를 주제로 한 토론에서 김명희 교수는 전쟁 피해의 상당수가 여성과 아동임에도, 그동안의 전쟁경험이 오로지 ‘남성•군인•전투’를 중심으로만 설명되었다고 지적했다. 용산 전쟁기념관 역시 여성에 관한 내용은 거의 부재하고, 또한 전쟁기념관의 추모대상이 다양한 피해에 대해 다루지 않고 획일적으로 국가를 위한 희생에만 국한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에 대비되는 사례로 일본군 위안부를 다루는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을 제시하면서, ‘여성•피해자•인권’ 중심의 전시를 통해 과거의 전쟁에서 여성과 아동이 겪었던 폭력이 현재와도 연결돼있음을 보여주고,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의 목소리도 소개하면서 자국의 책임까지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소개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는 이번 1차 토론회 이후에도 ‘전쟁기념관이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다룰 2,3차 토론회를 준비 중이며,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전쟁기념관이 다루지 않는 한국전쟁 당시 여성의 문제 등을 다룰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일에는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해 전쟁기념관의 변화를 촉구하는 연대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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