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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제보복, 명분도 실익도 없다

  • 기사입력 2019.07.05 10:13
  • 기자명 발행인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에서 비롯된 한·일 간의 마찰과 대립이 마침내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이어졌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4일부터 수출 관리 규정을 개정해 스마트폰 및 TV에 사용되는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한국 수출 절차를 강화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동안 한국을 우대국으로 대우해 심사ㆍ허가 절차를 간소화했던 것을 품목당 심사 방식으로 바꾸어 앞으로 허가에 90일 정도 걸릴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일본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8월 1일부터 군수품 전용 가능성이 있는 품목의 수출 허가 신청을 면제했던 안보상 우호국인 27개 ‘화이트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일본이 4일부터 수출허가 심사를 받도록 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레지스트, 에칭가스 3개 품목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과정에서 꼭 필요한 화학 소재로 전체 수입품 중 일본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40~90%에 이를 정도로 일본 의존도가 높다. 일본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이번에 규제 대상이 된 세 가지 품목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거나 국산화하면 되지만 기술력의 차이로 수입 대체도 쉽지 않고 당장 국산화도 어렵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 주력산업의 핵심부품과 소재의 일본 의존도가 높아 일본의 보복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심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일본 현지 언론들의 비판 목소리도 확산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보복을 즉각 철회하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일본 정부가 발표한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정치적 목적에 무역을 사용하는 것"이라며 "자유무역의 원칙을 왜곡하는 조치는 즉시 철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신문도 '서로 불행해질 것'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일본의 조치는 일본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화의 실마리를 찾아 조기 수습을 꾀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한국 기업의 '탈(脫)일본'이 진행되는 역효과가 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한일 관계가 급격히 냉각되면서 일본 기업과 제품에 대한 반감도 커지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소리가 들끓고 있고, 각종 커뮤니티와 SNS 등에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나서자는 글이 넘쳐난다. 당장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일본 경제 제재에 대한 정부의 보복 조치를 요청한다'는 내용의 청원도 올라왔다.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국과의 갈등증폭으로 혐한감정을 자극하고 표심을 결집시키려는 아베총리의 의도가 정치적으론 득이 될 순 있겠지만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일본은 타국과의 갈등에서 통상규칙을 자의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G20 정상회의에서 의장국으로서 채택한 ‘자유무역 원칙’을 스스로 위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명분도 실익도 없는 일본의 보복 조치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 일본의 부당한 통상 조치에 대해 우리 정부도 대응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정치·외교 갈등이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차분히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감정적 보복의 악순환보다는 한일관계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중장기적 전략을 마련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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