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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NGO칼럼]중국선비들을 지도한 조선선비들

  • 기사입력 2019.07.09 09:55
  • 기자명 이용수
▲ 이용수

요즘 우리는 U-20 축구월드컵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이 보여준 선전에 국민 모두가 신바람을 느끼고 있다. 1983년 멕시코에서 열렸던 동 대회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올렸던 4강 신화에 이어 사상 첫 준우승이라는 신화를 다시 썼다. 그때마다 우리는 도깨비문양을 한 ‘붉은악마’라는 응원기에다 “대-한-민국!“을 크게 외치고 나서 ”따단따 단따!“하며 손뼉을 치며 열심히 응원했다. 그 도깨비문양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저 열심히 외쳤다. 바로 그분이 배달국 14대 임금인 치우천왕인데, 나는 그 분의 도움이 있어 그런 성적을 올렸다고 생각한다.

그간 우리는 사대주의에 의해 우수한 학문은 중국으로부터 들어왔고, 중국인들은 훌륭한 선비들이라고 아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 학문과 철학사상의 대부분은 우리 환인이나 환웅 또는 단군(檀君)시대에 중국으로 흘러갔다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 것이다. 우리 선비들이 중국 사람을 지도하고 보답 받았던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조선 명종 때(1563) 김주(金澍)가 조선사절로 북경에 갔을 때, 여관에서 한밤중에 글 읽는 소리가 들리기에 신기하여 그 방에 가서 내막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지방에서 과거시험을 보러 왔다가 낙방하고 고향으로 가지 못한 채 날품을 팔면서 공부를 한다고 했다. 측은하게 생각한 김주는 그에게 단념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여 꼭 뜻을 이루라고 부채 하나를 선물하고 비단도 주면서 부채에다 고난에서도 단념하지 말라는 의미의 ‘조병추달(操柄推達)’이라고 써 주었다. 그리고 10년 뒤 김주가 다시 북경에 갔을 때 그는 과거에 합격한 후 예부시랑이 되어 김주를 도와 조선의 역대 숙제인 종계변무(宗系辯誣: 태조 이성계가 이인임의 아들이라는 잘 못된 중국역사기록을 정정하려는 노력)에 도움을 준다.

또 선조 때(1588) 홍순언(洪純彦)이라는 통역관이 북경에 갔을 때 기방(妓房)에서 울고 있는 류씨라는 여인을 만나 ‘남경 호부시랑의 딸로서 부친은 공금횡령누명으로 옥사하고 이일로 모친마저 죽자 장례비를 마련코자 기방에 팔려 왔다’는 얘기를 듣고, 그녀에게 현금 2,000냥과 인삼 1,000냥 어치를 주면서 그냥 고이 내보냈다. 그녀는 후일 돌아가신 부친의 친구인 석성(石星)에게 인사를 갔다가 석성의 부인 병수발을 하게 되고, 부인이 죽자 석성의 후처가 되었다. 후일 홍순언이 종계변무사절로 다시 북경을 갔을 때 그 류씨부인은 예부시랑이 된 새 남편 석성과 함께 멀리까지 마중 나와 큰절을 하며 환영을 하였으며, 아내에게서 사정 이야기를 들은 석성은 홍순원을 장인대접 하였고, 홍순원이 돌아올 때는 그녀가 직접 짠 ‘보은(報恩)’이 새겨진 비단 100필을 가지고 나왔고, 조선의 종계변무 시정요구에 협조하는 큰 공을 세웠다.

세 번째 이야기는 임진란 다음 해(1593)에 송영구(宋英?)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북경의 한 여관방 부엌에서 군불을 지피며 글 읽는 소리가 나서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주지번이란 청년이 과거시험을 보러 왔다가 몇 차례나 낙방하여 노동일을 하면서 다시 시험 준비를 한다고 했다. 송영구는 과거 답안 작성요령을 가르쳐주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책도 필사해주고, 노자까지 주며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주지번은 2년 후에 과거에 장원하여 큰 인물이 되었고, 선조 39년(1606)에 사신으로 조선에 왔을 때 은인인 송영구를 찾아 사후에 묻힐 묘자리까지 잡아주고, 전주의 객사(客舍)에 ‘풍패지관(豊沛之館)’이란 현판 휘호를 크게 써 주고 갔는데, 지금도 전주객사 그 자리에는 그 글씨가 그대로 남아있다.

이처럼 중국 선비들이 조선 선비에 대해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결과 200여 년간 끌어오던 종계변무의 기록이 바로 잡혀지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 한민족은 예로부터 고고한 선비정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방탄소년단(BTS)과 같이 가무에 특출하고 각종 운동에도 뛰어나 이번 축구에서와 같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느끼는 정(情)과 감(感)이 남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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