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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독립선언서, "이광수 혼자 쓴 것 아니라 유학생들 공동작업"

미야모토 마사아키 와세다대 연구원, 형사소송기록 발굴

  • 기사입력 2019.10.05 11:04
  • 기자명 김다원 기자
▲ 개회사 하는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2·8 독립선언서'가 춘원(春園) 이광수(1892~1950) 단독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 도쿄 유학생 모임인 조선청년독립단 위원들이 공동으로 작성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그 동안 2.8 독립 선언서와 결의문, 청원서 작성이 이광수 단독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가 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학술회의 '일제 문서로 보는 2·8독립선언과 3·1운동'에서 미야모토 마사아키 와세다대학 대학사자료센터 연구원은 '취조기록을 통해 본 2·8 독립선언으로의 도정 '발표에서"신문 기록을 보면 독립선언서 서명자들은 조선청년독립단 위원인 최팔용과 김도연, 백관수, 이광수, 김철수 5명이 주로 문안을 만들고 여러 번 회합을 거듭해 최팔용이 원안을 만든 것으로 진술하고 있다"며 "이광수가 초안에 대한 검토와 보정을 거쳐 정서(淨書)한 뒤 위원들의 회합에서 서면을 확인하는 형태였다"고 설명했다.

 

미야모토 마사아키 연구원은 "당시 청원서는 처음부터 일본어로 작성됐고 선언서와 결의문은 조선어로 기초했으나 각국 대사관 등에 송부하기 위해 영어와 일본어로 번역됐다"며 "번역 작업도 최팔용과 김도연, 백관수, 이광수, 김철수 5명이 하고 이광수가 최후 수정을 담당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윤소영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학술연구부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은 대부분 일제 측의 조사·보고 자료나 당사자 회고록에 의존했는데, 2·8 독립운동 당사자의 개별 취조기록 등을 발굴해 소개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며 "선언서와 결의문, 청원서의 작성이 이광수 단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 새롭다"고 평가했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1919년 함흥지방법원에서 근무하던 이시카와 노부시게 검사의 3·1운동 관련자 조사문서도 공개됐다.

  

미야모토 연구원은 2·8 독립선언 서명자를 일본 경찰과 검찰이 출판법 위반 혐의로 취조한 내용과 이들의 공판 기록 등을 통해 2·8 독립선언 과정을 재구성했다.

 

2·8 독립선언은 1919년 2월 8일 일본에 유학 중이던 한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서와 결의문을 선포한 사건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에 자극받은 도쿄 유학생들은 조선청년독립단을 발족한 뒤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한국유학생 대회를 열고, 독립선언서와 결의문을 낭독하고 일본 의회에 청원서를 제출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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