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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 없이 회비로만 운영되는 단체

  • 기사입력 2019.10.12 05:34
  • 기자명 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 이상재 대전충남 인권연대 사무국장

예전에 지역에서 꽤 큰 시민단체에서 실무책임자로 일했던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가 후원 행사를 열거나 후원회원 가입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낼 때마다 잊지 않고 매번 하는 말이 있었다. 그건 “정부 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회원의 회비로만 운영되는 저희 단체를 후원해 주세요” 라는 문구였다. 한번 두 번 받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몇 년간 계속 받다 보니 후원해 달라는 이유가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것밖에 없나? 오히려 단체가 지역을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으니 후원해 달라고 하는 적극적인 문구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에 인권단체를 만들고 몇 년이 흐른 지금은 그 선배처럼 나도 비슷한 문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 단체가 격주에 한번 회원과 시민 1,500여 명에게 보내는 뉴스레터의 마지막은 항상 “대전충남인권연대는 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사양하고 시민의 참여와 후원으로만 운영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로 후원회원 가입을 요청하고 있다. 국가와 기업의 지원 없이 독립적인 인권운동을 펼쳐나가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시민들에게 후원회원 가입을 요청하는 문구에 정부 지원을 일절 받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이유라는 건 어딘지 모르게 궁색해 보인다.

 몇 년 사이 지역사회에 나타난 변화 중의 하나는 이른바 중간지원조직이 많이 생겼고 그런 기관에 가서 일하는 시민사회 출신들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확장이라는 측면과 정부조직이 원활하게 할 수 없는 사업 형태를 담당한다는 측면에서 다양한 중간조직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일 것이다.

 지역에서도 이제 기존 시민단체는 중간지원조직과의 후원이나 협업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우리 단체도 대전시가 전국 최초 민간위탁으로 설립한 대전시인권센터와 올해 처음 공동주최형식으로 진행한 인권학교는 60명이 넘게 수강하면서 시민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

 이렇게 우리 단체뿐만 아니라 지역의 많은 단체가 중간지원조직과 협업을 하고 때로는 후원을 받아 사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이런 연대사업들이 기존 시민단체들에 마냥 좋기만 할 것인지는 판단이 정확히 서질 않는다. 위에서 말한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단체들의 독립적인 활동과 성장을 더디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당장 우리 단체의 경우 내년에도 다시 인권센터와 공동으로 인권학교를 할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상황이다. 대전시의 재정지원을 받는 인권센터와 같이하는 사업이라 올해는 수강료가 무료였는데 계속 이런 방식으로 하다 보면 우리 단체 독자적인 사업의 경우 유료 강의를 하기가 어려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같으면 모르겠지만 강좌도 많지 않고 상대적으로 좁은 바닥인 대전에서 어떤 강좌는 무료이고 어떤 강좌는 유료라면 시민들은 당연히 무료강의를 찾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제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지방자치단체나 중간지원조직의 지원을 받지 않고 하는 사업들을 만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열악한 단체 형편을 고려하면 그게 지적받을 일인지 반문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단체의 열악한 상황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역 시민단체는 몇 개 단체를 제외하고는 두 명의 상근자도 두기 힘들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 꽤 오래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심각한 것은 이를 타개할 변화의 움직임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지역 시민단체들이 보내주는 뉴스레터에 신입회원이 몇 명 들어왔다는 소식은 정말 드문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사실 뉴스레터나 소식지를 보내주는 단체는 몇 군데 없다.)

 이런 상황에서 중간지원조직에 기대는 사업만 하다 보면 단체의 재정적, 사업적인 독립은 점점 힘들어지고 시민단체 본래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비판기능마저 무뎌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지방자치단체, 중간지원조직과의 거버넌스는 아주 중요한 시민단체의 활동영역이다. 하지만 개별 시민단체의 독립적인 활동과 성장의 토대가 약한 가운데 전개되는 협력, 특히 재정적 지원은 그 자체로 시민단체 성장의 위협적인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처음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자면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회원의 회비로만 운영되는 단체’는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이 지향해야 할 운영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와 중간지원조직과의 거버넌스와 연대는 물론 중요하지만 원활한 단체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재정과 활동성은 독립적으로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건강한 시민사회를 위해서 시민단체의 독립적인 활동과 비판기능을 위해서 시민단체의 후원회원이 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정부 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회원의 회비로만 운영되는 우리 단체를 후원해 주세요”라는 말은 어색함이나 진부함의 홍보문구가 아니라 이 땅에서 시민단체가 활동하고 성장하는데 근간이 되는 당당한 요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요청을 접하는 시민들이 외면하지 말고 보다 많은 지지와 후원을 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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