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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성북동 네 모녀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

  • 기사입력 2019.11.11 22:43
  • 기자명 편집인

 지난 2일 서울 성북구의 17평 규모 한 다세대주택에서 생활고에 극단적 선택을 한 네 모녀가 숨진 채 발견돼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이 복지국가인지 반문하게 한 사건이다.

 

 

현장에서 발견된 A4용지 1장 분량의 유서에는 “힘들었다. 하늘나라로 간다”고 적혀있었다.이들 네 모녀는 월세와 건강보험료가 몇 달 치 밀려 있었다.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해결해야 할 먹고사는 문제에 힘이 부쳐 일어난 일임을 반증하고 있다.

 

 

이들의 주검은 건물 리모델링을 하려고 집을 찾은 관계자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뒤늦게 발견됐는데 한 달 전쯤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례식장으로 연락 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경제적 빈곤이 사회관계의 빈곤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리라.

 

이번 사건은 5년 전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서 발생한 세 모녀 자살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한 단독주택 지하에 세 들어 살던 60대 여성과 30대 딸 2명이 경제적 궁핍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세 모녀는 질병을 앓고 있는 데다 수입도 없었다. 이들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70만원,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당시 국가와 지자체가 구축한 어떤 사회보장체계도 이들을 돕지 못했다.

 

이 사건 이후 우리 사회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여러 복지 대책을 발표하고 막대한 복지 예산을 투입했다. 급기야 국회에서는 ‘송파 세모녀 방지법’을 만들기까지 했다.특히 서울시는 2015년 7월부터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며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를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7월에도 봉천동 탈북자 모자 자살 사건이 발생하는 등 그 이후에도 절대적 빈곤을 해결하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생을 마감한 비극적 사건은 계속됐다.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사선을 넘어온 봉천동 탈북자 모자 사건도 40대 초반의 탈북 여성이 여섯 살 짜리 아들과 함께 숨진 지 2개월 뒤에야 발견됐다. 단수(斷水)가 됐는데도 소식이 없자 찾아간 아파트 관리인 신고로 인한 것이었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패를 갈라 정치적 촛불잔치가 벌여지는 사이 봉천동의 탈북모자와 성북동 네 모녀는 아무도 몰래 죽어갔다. 송파 세 모녀의 죽음 이후 5년이 흘렀지만 달라진 것이라곤 없다. 하물며 “사람이 먼저”라는구호를 외치던 정권이 들어섰고, 공무원 숫자도 기록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왜 이런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는가? 현 정부·여당의 무능과 무책임을 질타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과 정부 뿐 만 아니라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번 사건을 가슴 아프게 받아들이고 통렬한 반성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난을 해결하지 못하면 삶을 죽음으로 대신해야 하는 이 냉혹한 사회를 우리 아들·딸에게 물려 줄 수 없지 않는가? “가난은 나라도 구하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지금은 틀린 말이다.‘빈곤 퇴치’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뒤플로·바네르지 부부는 ‘가난이 개인의 무지와 게으름의 문제가 아님’을 증명했다. ‘사회적 타살의 책임은 국가가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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