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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의 詩마당> 아버지
 
이오장 시인   기사입력  2019/11/19 [16:42]

                    아버지

                          윤하섭 (1946~ )

 

 

어버이 날

봉사활동에 나가려고

신발장에서

낡은 소가죽 구두를 꺼내 신었더니

삐걱소리가 난다

 

우리집 논과 밭을 갈아엎던 소

수레에 거름 나르고 땔감을 해오던 소

앓는 나를 태우고 병원으로 달리던 소

식구들 목숨을 끌고 삶의 보릿고개를 넘은 소

죽어서는 기어이 가죽 구두가 된 소

 

삐걱

70키로 늙은 내 몸의 하중을 견디며

그 소가 오늘도 나 싣고 집을 나선다

 

 

아버지 시에 아버지가 없다. 아버지의 이미지만 살아나와 읽는 우리에게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윤하섭 시인은 현대시의 묘미를 살리는 작업에 몰두하며 이미지가 주는 시의 재미를 가증시킨다. 이미지는 상상이다. 그러나 헛된 상상이 아닌 살아있는 상상이다. 사물을 보던가. 언어의 끝 지점에서 꿈틀대는 공통적인 상상을 그리기란 쉽지 않다. 이 말은 너와 내가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을 찾기가 어렵고 뚜렷한 선을 이어줄 고리를 잡기는 더욱더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서 윤하섭 시인은 소가죽 구두를 신고 나서다가 주인을 위해서 일만 하는 소를 떠올리고 이 시대의 아버지들을 대입시키는 상상이 기발하다. 현시대의 젊은이는 쇠고기의 소는 알고 있지만 농경작업에 동원되어 쟁기작업이나 수레작업을 하는 소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왜 아버지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하지만 대다수의 독자는 이해한다. 예부터 농경사회가 전부였던 우리 민족은 소를 가장 귀한 재산으로 키웠다. 소 한 마리가 재산의 전부였어도 가난하다고 체념하지 않고 귀한 존재로 대하였다. 집안의 근본적인 기둥이었던 아버지와 농경의 근본이었던 소가 하나로 묶여 시의 행마다 아버지는 살아 나온다. 금방이라도 기침을 하며 부를 것 같은 아버지가 소의 등에 올라 발현하는 것이다. 지금은 살아있지 않은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헌신적인 희생으로 정신과 몸을 남겨주시어 내가 현존한다는 효심을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시인은 참말로 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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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19 [16:42]   ⓒ wn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