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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민주통일 운동의 거목, 고 오종렬 의장 영결식 거행

10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민족통일장’으로

  • 기사입력 2019.12.10 17:41
  • 기자명 은동기 기자

[한국NGO신문] 은동기 기자 = 지난 7일 밤, 82세를 일기로 운명한 자주민주통일 운동의 거목 고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 의장의 영결식이 10일 오전 10시에 광화문 북측광장에서 진보진영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진행되었다.

▲ 서울대병원을 출발한 고 오종렬 선생의 운구행렬이 서울시청을 거쳐 광화문광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민족통일장으로 치러진 고 오종렬 선생이 운구행렬은 이날 오전 8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떠나 서울시청 광장을 거쳐 광화문광장에 도착했다. 영결식은 11시 30분까지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 고 오종렬 선생의 영결식이 10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민족통일장으로 지춰지고 있다.    

“당신은 산처럼 버티며 우리의 운동, 우리 민족, 민중의 미래를 지켜냈다”

이날 영결식에서는 진보단체 인사들이 조사(弔死)를 통해 오 의장에 대한 슬픔을 표했다.

▲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이창복 상임대표의장이 조사를 낭독하고 있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이창복 상임대표의장은 조사를 통해 “민족민주운동의 오랜 동지를 먼저 보내는 아픔이 너무 크다”며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고인의 동지들과 선후배들과도 이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대의 우렁찬 연설은 항상 우리 운동의 가야할 길을 밝혔고, 당신의 열정어린 강연은 후배들과 제자들에게 삶의 나침반이자 교과서가 되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당신은 한국 진보운동의 선각자이자 참된 지도자였으며, 이 땅 민중이 힘겨워 할 때면 당신은 항상 그들의 든든한 우산이었으며, 그대가 그토록 사랑한 민중들이 들고 일어 설 때면 그 전선의 첫 자리에 항상 있었고, 모두 단결하여 힘을 모아야 할 때면 가장 먼저 제안자가 되어 길을 열었다”고 말했다.

▲ 송경동 시인   

송경동 시인은 ‘우리는 당신을 보내지 않습니다’ 제하의 조시를 통해 오 의장에 대한 절실하고 애틋한 마음을 표현, 참석자들을 숙연케 했다.

 

당신을 보낸다 생각지 않습니다
당신을 잃는다 생각지 않습니다
큰 별은 떨어지는 게 아니라
역사 속으로 자리를 옮기는 거라 하셨죠
저 태산을 보니 여전히 거기 계시는군요
강물을 보러 가니 거기 여전히
쿵쿵쿵 소리를 내며 흐르고 계시군요  

살아서도
이 땅 어느 곳에나 깃들어 있는
큰 바위 큰 산이셨죠
동학년 곰나루의 피 끓는 함성이었고
4.19와 5.18과 6.10을 잇는
시대의 준령 역사의 파발마셨죠
.................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고 오종렬 의장님은 단 한 순간도 투쟁의 최전선을 비우지 않은 교사 노동자들과 자주민주통일의 큰 선생이었다”며 “고인의 결의를 받아 모든 노동자 민중과 함께 드팀없이 싸워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

전국농민회총연맹 박행덕 의장도 “고인은 억압받고 고통받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과 투쟁의 최전선에서 언제나 선두에 서 계셨으며, 탄압을 온몸으로 맞받아 투쟁했던 ‘민중의 벗’이었고, 지배자에게는 ‘감당키 어려운 적’이었다”고 회고하고, “한국 현대사의 큰 거목을 잃고 민중은 슬픔에 잠겨있지만, 이 슬픔을 딛고 다시금 고인이 바라신 자주민주통일을 위해 새로운 길을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6.15민족동동위원회 해외 측 손형근 위원장은 전국여성연대 한미경 대표가 대독한 조사에서 “오 의장님은 평생을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해 민중이 모두 잘 사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언제나 용감하게 대열의 앞장에 섰다”고 회고하며 “자주민주통일운동의 중심을 잃은 것은 크나큰 손실이지만, 이 슬픔을 딛고 운동을 더욱 전진시키는 것이야말로 고인의 가르침과 은혜에 보담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 한국진보연대 문경식, 박석운, 한충목 상임대표들이 결의문을 밝히고 있다.   

한국진보연대 문경식·박석운·한충목 상임대표들은 결의문을 통해 “의장님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이 외면받고, 많은 이들이 다른 길을 찾아 떠나던 시기, 자주민주통일 운동이 혼란에 빠져 외면받던 시기, 산처럼 버티시며 위기에 빠진 우리의 운동, 우리 민족, 민중의 미래를 지켜냈다”면서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고, 아직 해방은 오지 않았으며 미군이 철수하고,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진정한 ‘해방’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상은 뿌리 깊게’ 표현은 얕고 낮게‘ ’연대는 넓디 넓게‘ ’실천은 무궁토록‘이라는 고인의 말씀을 되뇌며 “다가올 새 시대를 앞당기고 그 시대를 온몸으로 만들어가는 민족 간부, 민중 간부가 될 것이며, 살아있는 우리가, 민주주의와 민중생존, 민족의 자주와 평화통일을 위한 남은 여정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참석자들    

마지막에 유족이 단위에 올라 참석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고인의 병환과 영면에 들기 까지의 과정을 소상히 설명하며 마지막 순간에 고인이 말하려 했던 것을 오늘 참석한 모든 민중들이 깊게 생각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생을 민중의 편에서 살아온 한국 민중운동이 선각자
 

▲ 영결식 참석자들이 '조국통일 완수하자'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1938년 전남 광산군(현 광주 광산구)에서 태어난 오종렬 의장은 광주도와 광주사범대를 졸업했다. 그 후, 전남 고흥에서 교편을 잡은 뒤 전국교사협의회 활동을 통해 1987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출범에 기여, 전교조 광주지부 초대 지부장 등을 지낸 후, 1989년 정부가 불법으로 규정한 전교조 활동 관련자로 구속되기도 했다.

1991년에 치러진 1대 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광주시의회 의원에 당선, 교육 개혁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1999년에는 민족자주통일 운동에 적극 나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의장과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고인은 또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단식을 하기도 했고, 2005년에는 APEC반대, WTO와 한미FTA지지 운동에 헌신했으며, 이후 6.15남측위 상임대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통일의길 이사장 등을 맡아 오다가 2014년 2월 간경화와 급성 신부전증 진단을 받은 뒤 건강이 악화되었다. 

광화문광장에서의 영결식을 마친 운구행렬은 이후 광주 조선대학교 장례식장으로 이동한 뒤 오후 4시부터 빈소를 마련해 조문객을 받기로 했으며, 오후 8시부터는 고인을 기리는 '추모의 밤' 행사가 장례식장 앞에서 열린다. 이날 행사는 추모시와 추모노래, 고인의 생애를 담은 영상 상영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  고인에 헌화하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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