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방위에 불길한 징조를 막아주는 ‘제주도 방사탑’ 1

정진해 문화재전문위원 | 기사입력 2019/12/17 [15:27]
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마을 방위에 불길한 징조를 막아주는 ‘제주도 방사탑’ 1
 
정진해 문화재전문위원   기사입력  2019/12/17 [15:27]

▲ 몰래물마을 방사탑 1호 



문화재 : 몰래물마을방사탑1-2호, 골왓마을방사탑1-5호, 용수마을방사탑1-2호 (제주도민속자료 제8-1~9호)

소재지 : 제주시 도두2동의 몰래물마을 외 

 

마을 공동체 신앙물은 대개 마을 뒷산에 수호신을 모신 산신당 또는 성황당을 배치하고, 마을 입구에는 장승, 솟대, 돌탑, 신목 등의 신앙대상물을 배치하여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한다. 마을신앙은 집단신앙의 한 유형이다. 부족국가 시대부터 성행하였는데, 부여에서는 영고라 하여 정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한에서는 씨를 뿌리고 난 5월과 추수를 끝낸 10월에 천신제를 하였다.

 

예에서는 10월에 하늘에 제를 올린 무천이 있었고, 고구려에서는 10월에 동맹을 열어 주몽의 모신을 맞아 제사를 지냈다. 이러한 제의는 그해의 풍작을 천신에게 기원하거나 풍작을 감사드리는 동시에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는 집단제의였다. 이러한 부족 단위의 제의가 사회가 세분되면서 각 마을 단위로 토착화되어 마을 신앙으로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인간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와 그 공동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독특한 신앙체계는 인간이 특정 지역을 점유하고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발현된 하나의 공간적 형태라고 정리할 수 있다.

 

제주도를 여행하다 보면 마을이나 바닷가에 크고 작은 돌을 쌓아 만든 돌탑을 볼 수 있다. 제주도에서 이 탑을 방사탑이라 부르고 있는데, 어떤 용도로 쓰이는 돌탑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방사용 돌탑을 전통적으로 방사탑이라 부르지 않고, 마을 따라 ‘탑’, ‘답’, ‘거욱대’, ‘거와’, ‘극대’, ‘까마귀’, ‘거오기’, ‘가매기동산’, ‘거윅’, ‘가막동산’, ‘가마귓동산’, ‘액탑’, ‘매조자귀’ 등 다양하게 불러왔다. 그러나 마을에 따라 ‘탑’과 ‘거욱대’를 구분하기도 하였다. 탑은 돈을 탑으로 쌓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 쌓은 뒤 꼭대기에 석상이나 자연석 또는 새 등의 조형물을 올려놓는다. 올려놓는 조형물에 따라 부르는 것이 다르다.

 

돌탑을 쌓을 때는 먼저 바닥 가운데에 밥주걱이나 솥을 묻고 그 위에 돌탑을 사람의 키 이상의 높이로 쌓는다. 묻는 이유는 솥의 밥을 퍼 담듯이 외부의 재물을 마을 안으로 담아 들이라는 뜻이고, 솥에다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부자로 살고 싶은 염원과 재물을 솥 가득히 모으는 의미도 있다. 또한 무쇠솥은 화력이 센 불도 이겨내는 것이니 마을의 재난을 방액해 달라는 뜻에서 이루어진 주술적 사고에서 기인한 것이다. 

▲ 골왓마을 방사탑 5호 

 

 

제주도 전역의 방사탑은 모두 18기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먼저 제주시 도두2동의 몰래물마을 해안에는 2기(제주도 민속자료 제8-1, 2호)의 방사탑이 있다. 마을 해안의 동쪽(1호)과 서쪽(2호)에 각각 세워져 있다. 이곳에 세워진 시기는 조선시대 중기로 보고 있다. 마을의 ‘영물’과 ‘물동산’ 지경의 남쪽에 있으며, 물동산에서 직선으로 남쪽 약 70m 지점에 있다. 월내는 3기의 방사탑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2기만 남아 있다.

1호의 방사탑의 지형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다. 원뿔형이고 가장 윗부분에는 새 모양과 비슷한 다소 길쭉한 형태의 자연석 두 개를 가운데에 서로 맞대어 붙어 있다. 1990년대에는 이 두 개의 자연석이 나란히 서 있었다고 한다.

 

2호의 방사탑은 1호의 방사탑과 약 15m 거리를 두고 있으며, 역시 원뿔형이다. 지형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다. 돌탑의 지반은 안반과 잡석으로 이루러지고 탑은 현무암 자연석을 쌓았고 안쪽에는 잡석을 채웠다. 밑의 넓이는 주변의 잡석으로 인하여 확인할 수 없으며 윗지름은 약 2m 정도이다. 1호에 비해 돌탑 위에는 장식물이 없으며 자연석만 올려놓았다. 몰래물마을은 예로부터 북쪽인 해안을 허하다고 여겨 이곳에 방사탑을 세웠다고 한다. 현재는 제주국제공항 확장으로 사람들이 더 이상 거주하지 않게 되었지만, 방사탑은 남아 있다.

 

제주시 이호2동 골왓마을에는 5기(제주도 민속자료 제8-3~7)의 방사탑이 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호해수욕장 남쪽에 위치한 자연마을이다. 마을의 북쪽은 지대가 낮고 하천과 비슷한 작은 골짜기들이 있는 지형으로, 바다가 훤히 들여다보여 북풍이 불면 바닷바람이 마을에 닿을 정도이다. 마을 남쪽 역시 지형이 험한 편으로, 마을의 서쪽으로 길게 골과 구릉을 이루고 있다.

 

주민들은 마을의 허한 곳에 방사탑을 세워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고 부정한 액을 막고자 하였다. 마을 북쪽에 4기가 동서 방향으로 서 있고, 남쪽에 1기를 세웠다. 북쪽에 있는 4기는 동서 방향으로 약간의 간격을 두면서 줄지어 세워졌고, 남쪽에 있는 1기는 마을 안의 길가 바로 옆에 있다. 방사탑은 원뿔형 또는 원통형이다.

 

북쪽 4기 가운데 가장 서쪽 방사탑 1호(민속자료 제8-3호)는 원뿔형태이다. 동쪽에 세워진 방사탑은 3개의 밭이 만나는 지점에 있고, 기단석이 밭의 경계인 밭담 위에 있다. 탑 위에는 까마귀 모양의 나무를 서쪽 구릉을 향해 서 있는데, 이것은 서쪽 구릉이 강인한 형상이어서 까마귀가 이를 쪼아 약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밭 경계 담에 만들어져 있어 탑의 하단은 주변의 잡석이 쌓여 있다. 골왓마을 5기의 방사탑 가운데 가장 크다. 돌탑은 원뿔형태이나 위로 올라가면서 2개의 단을 둔 것이 다른 방사탑과 다른 형태를 띤다. 부분적으로는 거칠게 다듬은 돌들도 보이지만 대부분이 현무암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골왓마을 방사탑 2호(민속자료 제8-4호)는 1호의 방사탑과는 약 40m 떨어져 있다. 1호 방사탑과 같이 밭의 경계석인 돌담 위에 마련되었는데, 북쪽이 높고 앞쪽이 낮은 지형이다. 탑의 하단에는 잡석이 쌓여 있다. 탑의 정상에는 나무 막대가 꽂혀있다. 

 

골왓마을 방사탑 3호(민속자료 제8-5호)는 2호의 방사탑에서 동쪽으로 약 50m 거리를 두고 원뿔 형태이다. 탑 위에는 길쭉한 모양의 돌을 세웠다.

 

골왓마을 방사탑 4호(민속자료 제8-6호)는 3호에서 동쪽으로 약 60m의 거리를 두었다. 지형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다. 동서는 남북에 비해 넓어 위에서 보면 타원형을 이룬다. 현무암 자연석으로 막돌허튼층쌓기를 하였고 탑의 정상에는 길쭉한 돌이 세워져 있다.

 

골왓마을 방사탑 5호(민속자료 제8-7호)는 마을 남쪽의 길가에 있다. 지형은 북동쪽이 높고 남서쪽이 낮다. 탑 위에는 나무막대를 십자가 모양으로 하여 꽂아 두었는데 가로로 놓인 나무막대는 까마귀를 뜻하는 새 모양으로 깎았다.

 

한경면 용수리 포구에 2기(민속자료 제8-8~9호)의 방사탑이 남북으로 세워져 있다. 조선 후기에서 근대 초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북쪽의 방사탑은 포구의 오른쪽, 남쪽의 방사탑은 포구의 왼쪽에 세워져 있다. 이곳 마을 주민들은 북쪽의 방사탑을 ‘새원탑’, 남쪽의 방사탑을 ‘화성물탑’이라 부르고 있다. 옛 마을 주민들이 해상사고를 당하거나 사체가 들어오자 남쪽과 북쪽에 방사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북쪽의 새원탑에는 소의 멍에, 남쪽의 화성물탑에는 보습을 넣어 세웠다고 한다.

 

▲ 용수마을 방사탑 2호

 

 

방사탑(새원탑) 1호(민속자료 제8-8)는 포구의 바닷가 암반 위에 원추형으로 만들어졌다. 탑의 걷은 큰 돌로 쌓고 안쪽에는 잡석을 채웠다. 탑의 윗부분에는 길쭉하면서 끝이 구부러진 돌을 서쪽을 향해 세웠다. 방사탑 위에 세운 이 돌이 매의 부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매조재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방사탑(화성물탑) 2호(민속자료 제8-9호)는 바닷가 암반 위에 원추형으로 1호 방사탑과 500m 정도 떨어져 세워졌다. 새원탑처럼 큰 자연석으로 겉을 쌓고 안에는 잡석을 채웠다. 탑 위에는 새의 부리와 길쭉한 모양의 돌이 세워져 있다. 서쪽에 있는 차귀도와 바다를 향하고 있다.

 

조천읍 신흥리 포구 방파제 끝에서 5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방사탑(민속자료 제8-10~11호)이 세워져 있다. 마을 사람들이 만든 포구(浦口) 내에 넓고 평편하게 형성된 암반(巖盤) 위에 하나를 세웠고, 포구를 형성하는 코지의 높은 곳에 또 하나를 세웠다. 원통형의 탑 위에 ‘돌하르방’처럼 생긴 돌기둥을 세워 놓은 것도 있다.

 

신흥리지에 의하면 1898년 1월에 동네 원로들이 모여서 “우리 동네는 북방이 크게 허하니 탑을 쌓아 살을 막는 것이 어떤가?”하고 하니, 온 동네가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각처에 탑을 쌓으니 섬여답(剡嶼塔), 큰개답(大浦塔), 큰성창답(大城昌塔), 답알답(塔矸塔)이 이것이다. 

 

원래 이 마을에는 1950년대 초에는 5개의 탑이 있었다고 한다. 파도에 무너져 버린 후에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자주 일어나고, 언청이로 태어나는 아이가 많아 복원하게 되었다. 또한, 귀인이 이 마을을 지나가다 “마을이 게 형상이라 하여 액운이 있겠다고 하였다. 마을에서 큰 인물이 나도 게가 집게발로 물어서 성공하지 못하니 탑을 쌓아 액을 막도록 해야한다.”라는 말을 하고 떠났다고 한다. 

 

이곳은 포구 가운데 가장 넓은 곳이어서 ‘큰개’라고 부른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방사탑을 큰개에 있는 탑이라 하여 ‘큰개탑’, 또는 새들이 날아와 새끼를 부화한다고 하여 ‘생이탑’이라고 부른다. 특히 2호 탑인 ‘오라리탑’과 대비 시켜 ‘음탑’이라고도 부른다.

 

신흥리는 바다와 연결된 평탄한 암반으로 되어 있고 지형이 ‘깅이(게)’ 형국을 하고 있어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쫓기듯 허덕이면서 살아야 할 운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을 지나가던 신안(神眼)이 마을 사람들의 살아가는 형편을 보고 ‘탑’을 세워 방비할 것을 일렀다. 마을 사람들은 협력하면서 5개의 탑을 포구 주변에 세웠다. 지금은 2개만 문화재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카카오톡 카카오톡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네이버 네이버
기사입력: 2019/12/17 [15:27]   ⓒ wngo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