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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장준하는 되고, 노태우는 안 되는가?

장례 치른 노태우 전 대통령, 아직 묘역 못 정해

  • 기사입력 2021.10.30 13:16
  • 기자명 김승동 대표 기자
▲ 대표 기자 김승동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30일 치러졌다. 망자(亡者)들은 영결식을 통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고 한다. 고인(故人)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화장한 그의 뼈를 묻을 묘지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유골은 임시로 파주 검단사에 안치된다고 한다.  

공과를 떠나 전직 대통령이 누울 곳이 없다는 게 오늘의 대한민국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마음이 참 불편하다. 이는 결코 나만의 심정이 아니리라.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노 전 대통령 유족들이 이미 지난 6월부터 파주시를 방문해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에 장지를 조성하는 방안을 요청했으나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퉁일동산이 관광특구이기 때문에 묘지 조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파주시가 답변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시유지나 국유지에 묘지를 조성하려면 지구단위계획변경과 공유재산 매각절차는 물론 장사법에 의해 관할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파주지역 시민단체들과 진보정당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파주지역 진보 4당(노동당·녹색당·정의당·진보당)과 9개 시민사회단체(16파주시민합창단·(사)겨레하나 파주지회·민족문제연구소 파주지부·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파주노동희망센터·(사)파주여성민우회·파주친환경농업인연합회·파주환경운동연합·파주673시민자치연구소)는 29일 파주시청 앞에서 ‘고 노태우의 통일동산 안장을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묘역 조성을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 단체들은 성명서를 통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5·18 당시 광주 시민 학살의 공범, 내란죄, 뇌물수수 등 혐의로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600억원을 선고받은 죄인 노태우의 파주 안장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또 “노태우는 신군부 실세로 5·18 학살에 대해 광주시민과 국민에게 단 한번도 직접 사죄하지 않았고,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이 유언비어에 현혹된 것이 사태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다”고 강조했다.

기자가 노태우 전 대통령을 변호할 특별한 뜻이 전혀 없지만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그대로 여과없이 전파되다 보면 자칫 가짜뉴스가 될까봐 조심스럽게 지적하고자 한다. 기자가 취재한 바로는 그 분이 여러가지 혐의로 2600억원을 추징받은 것은 사실(정확히는 2,628억 9,600만원)이나 지난 2013년 이를 완납한 것으로 알고 있다. 벌은 왜 주고 받는가? 죄 값을 치루게 하는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지은 죄에 대해 이미 오래 전에 추징금을 다내고 벌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진보 시민단체들은 이를 알고 하는지 모르고 하는지 수천억원의 추징금을 선고 받았다고 거듭 주장함으로  마치 아직까지 벌을 받지 않는 파렴치 범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된다.      

▲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가 노 전 대통령 취임 당일인 1988년 2월 25일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구묘역의 이한열 열사 묘역에서 참배하고 있다.  

또 노태우 전 대통령이 5.18 사태에 대해 직접 사과하지는 안았으나 그의 아들 노재헌씨는 광주 5.18 민주묘역을 두 세번 참배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의 부인 김옥순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의 취임 당일인 1988년 2월 25일 남몰래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의 이한열 열사 묘 등을 참배하지 않았는가? 아들 노재헌씨의 진정성은 어느 정도 알려진 것 같으나 대통령 취임 당일에 영부인이 참배한 것은 남편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뜻이 담긴 것으로 해석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도 모자라 중병에 걸려 10년 이상 병상에 누운 사람이 꼭 광주까지 가야만 속이 풀리는가? 

논란이 되는 통일동산은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시절인 1989년 자유로, 헤이리 예술마을과 함께 조성된 곳이다. 또 파주는 노 전 대통령이 사단장을 맡았던 육군 9사단이 일부 관할하던 곳이라 그분의 애정과 추억이 깃든 곳이라 본다.

특히 파주의 동맥인 자유로가 건설돼 당시까지 민통선 지역이던 통일동산 일대가 개방되고 주변이 개발돼 오늘의 발전된 파주가 있는 셈이다. 그래서 파주지역의 많은 주민들은 고인에게 좋은 기억을 갖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유족들은 아마 고인의 이러한 삶의 흔적에 맞추어 이곳에 모시려고 한 것 같다.

그럼에도 통일동산 지역이 관광특구이고 국유지에 매장되려면 지구단위계획변경과 공유재산 매각절차 등을 거쳐야 하는 등의 절차적 복잡함과 특혜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직 대통령이라도 법을 어겨 가면서 누울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파주시와 반대하는 자들에게 묻는다. ‘왜, 장준하는 되고 노태우는 안 되어야 하나?’ 

이미 파주 통일동산에는 민주화운동가인 고 장준하 선생이 묻혀있다. 장준하 선생은 1975년 8월 17일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사한 뒤 파주 나사렛 천주교 공동묘지에 모셔졌다가 지난 2012년 지금의 통일동산 인근에 묘소와 함께 장준하공원이 조성됐다. 잘한 일이라 본다.

노 전 대통령의 통일동산 안장을 반대하는 자들은 민주화 인사와 신군부 출신이 나란히 있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주장을 한다고 한다. 참 안타깝다. 왜 말이 안되나? 오히려 그들의 주장이 말이 안되지 않나? 여러 가지로 민심이 갈라지고 국론이 분열된 이 시절 통일동산에 두 분이 나란히 눕는 것이 국론통합에 얼마나 좋겠는가? 남.북으로 나눠진 대한민국이 얼마나 더 찢어져야 하나?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고 한다. 아직도 그릇된 이데올로기와 진영논리에 갇혀 자기만 옳다는 아집에서 벗어나, 똑 같이 이 세상에 소풍왔다가 우리보다 먼저 귀천(歸天)한 나그네의 죽음 앞에 모두가 며칠 만이라도  마음의 벽을 조금씩 열고 길을 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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