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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각 초화문살에 담은 빛살의 성지 ’내소사’
 
정진해 문화재 전문위원   기사입력  2017/01/20 [10:12]
문화재 : 부안 내소사 동종(보물 제277호)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보물 제291호)
           내소사삼층석탑(전북유형문화재 제124호)  
           내소사설선당과요사(전북유형문화재 제125호)
소재지 : 전북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로 243, 내소사 (석포리)


▲ 내소사 대웅보전     ©정진해
 
내소사는 당산목을 지나 일주문에서 전나무, 왕벚나무 길을 따라오면 경내로 들어가는 사천왕문을 만난다. 사천왕문을 경계로 돌과 흙과 기왓장을 이용하여 쌓아 올린 담장 너머에 보이는 전각과 이곳을 지켜온 수목이 가득 차 있다. 천왕문에 발을 딛는 순간 좌우에는 보검을 든 증장천왕, 비파를 켜는 지국천왕 탑을 든 다문천왕이, 용과 여의주를 든 광목천왕이 용맹스러운 눈빛에 무게감 있는 모습에 손에 들고 있는 기물에 마음까지 놓이게 된다.

경내 중앙에 자리 잡은 느티나무(당산목)는 내소사의 역사만큼이나 노거수로 삶을 이어가고 있고, 석가탄신일이 가까지면 주렁주렁 연등이 매달린다. 중첨되어 있는 계단은 건물의 위치에 따라 기단이 더해지고 계단으로 연결하고 단아한 삼층석탑과 화려한 꽃살문을 하고 있는 대웅전이 관음봉을 지붕 삼아 자리하고 있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두타가 소래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수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치면서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에 타 소실된 것을 조선 인조 때 청민 선사가 인조 11년(1633) 대웅전을 중건하였으며, 광무 6년(1902) 관해 선사와 만허 선사가 증축을 하고 1932년에 해안 선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6년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반경 500m 일원이 문화제 보호구역(전북 기념물 제78호)으로 지정되었다.

▲ 내소사 삼층석탑     © 정진해

대웅전 마당 중앙에서 서쪽으로 약 150cm 치우쳐 자리 잡은 삼층석탑은 전북 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되었다.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의 석탑이다. 하층 기단은 하나의 석재에 지대석, 면석, 갑석을 새겼으며, 면석에 우주와 탱주를 새겨 넣었다. 상대 중석은 한 개의 석재로 이뤄져 있는데 받침 쪽은 높은 경사를 이루고 있고, 중석 받침은 2단으로 각출하였는데, 아래의 것은 둥글게 몰딩 되어 있다. 면석에는 우주와 탱주를 하나씩 새겼다.

상대갑석도 하층 기단 갑석과 같이 탑신 받침 쪽이 높은 경사를 이루고 있고 2단의 탑신 받침은 몰딩 되어 있다. 탑신석은 1개의 석재로 이루어졌으며 각 층마다 모서리에 우주를 새겨 넣고, 2층의 탑신석부터 높이가 급격하게 체감되었다. 지붕돌은 각 층이 1개의 석재로 이루어졌고 4단의 지붕 받침을 새겼으며 낙수면은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각 층의 지붕돌 상면에는 탑신 받침을 만들지 않았고 3층 지붕돌 상면에 노반이 있으며 윗부분은 상대갑석과 같은 형태로 조각했으며, 그 위에는 크고 작은 구형의 석재 2개가 올려져 있는데 복발인지 보륜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원래의 것이라면 보륜일 가능성이 높다. 전체적인 형태는 통일신라시대의 형식을 따른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 내소사 대웅보전     © 정진해

조선 인조 11년(1633) 청민 선사가 지은 대웅보전은 보물 제29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높은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워 지은 다포계 양식의 팔작지붕으로 된 불전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건물이며 단청을 하지 않고, 나무무늬가 살아 있는 모습대로 사각의 판을 만들고 조선의 문인 서화가인 이광사(1705~1777년)가 쓴 “大雄寶殿”을 돋을새김 하여 단 현판이 건물 전체의 얼굴로 조화롭게 걸려있다. 이광사는 백하 윤순에게서 글씨를 배워 진서, 초서, 전서, 예서에 능하고 원교체라는 특유의 필체를 이룩하여 동국진체를 완성하고 집대성하였던 인물이다.

▲ 내소사대웅보전 현판     © 정진해

추녀를 바치고 있는 공포에 조각된 용은 고리에 달린 여의주를 혀로 잡고 있는 모습이 대웅보전을 화마로부터 예방하고, 중생들에게 악을 제거하고 혼탁한 물을 맑게 하며, 재난을 없애는 공덕을 주기 위해 여의주를 놓치지 않고 잡고 있다. 공포는 내5출목이고 외 3출목으로 짜여 있으며 외부로 나온 각 제공의 쇠서는 겹쳐서 섭세한 모양을 하고 있다.

내부에는 외부와 연결된 제공의 뒤 뿌리에는 연봉을 새겼고 단청도 장엄한 금단청을 채색하였으며, 추녀 아래의 귀한대와 내무 충량 머리는 용이 고기를 물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건물의 화사함을 더해준다. 천장은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짜 맞추어 지붕 윗부분을 가리고 있는 우물천장으로 꾸몄다. 석가 좌상과 좌우의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봉안되어 있고 후불벽화로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남아 있는 벽화 중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내소사대웅보전 초화문     © 정진해

문은 모두 4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 2단은 청판을 달았고 3번째와 4번째 단에는 화려한 투각 꽃무늬로 장식하였다. 문짝은 초화문(草花紋)을 투각(透刻)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화려한 창호는 좌우에는 2짝, 중앙에는 4짝으로 구성되어 있어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창호에는 정교하게 새겨진 해바라기꽃, 연꽃, 국화꽃, 모란 등이 빗화문으로 짜여있다. 그 새긴 모양이 문마다 다르고 섬세하고 아름다움이 넘치는데 이 문을 만든 목수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엿볼 수 있다.

4짝의 어간에는 소슬금강저꽃과 빗연모란꽃, 2짝의 왼 칸에는 빗국화꽃, 2짝의 오른 칸에는 소슬모란과 소슬연꽃이 가득 차 있으며 각 꽃의 잎이 문살을 만들어 문 전체가 꽃과 잎으로 틀을 메웠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비바람에도 그 모양 그대로 간직한 채 나뭇결무늬와 함께 오늘을 지키고 있다. 건물 좌우측 문은 3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문짝의 아래 2단은 청탄을 하고 윗 3단은 정자살 3단으로 짠 창을 하였다. 정면의 각 칸 중에 중앙 칸에는 장대석의 댓돌을 두었고 좌측 충립을 하고 있는 문 앞에는 나무를 이용한 댓돌을 놓았다.

▲ 내소사 법종각     © 정진해

종각에는 은은한 푸른 청자의 빛을 띠는 고려동종이 쇠고리에 달려있다. 종을 치기 위해 이곳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 동안 새벽을 깨우고 중생들을 깨웠던 일을 중단하고 푹 쉬기 위해 이곳의 보호각에 매달려 있다. 새벽이면 으래 종소리가 관음봉을 돌아 멀리 중생들이 머물고 있는 마을까지 울려 퍼지던 동종은 옛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종은 고려 고종 9년(1222)에 내변산의 청림사에서 제작하고 사용되었다가 폐사된 후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조선 철종 4년(1853)에 내소사로 옮겨진 종이다. 종의 하대와 상대에는 모란당초무늬 띠를 두르고 있고 견대에는 복엽꽃무늬를 장식하여 마치 화관처럼 보인다. 정상부에는 소리의 울림을 돕는 음통과 큰 용머리를 가진 종을 매다는 용뉴가 있다. 종의 어깨 밑에는 당초무늬가 새겨진 유곽이 4개가 있고 그 안에는 꽃무늬의 유두는 각 9개씩 돌출되어 있다.

▲ 내소사 범종    ©정진해
 
종을 치는 4개의 당좌에는 중판 연화문이 배치되었고, 종의 몸통에는 구름 위에 삼존상이 양각되어 있는데 두 뺨이 볼록한 선정인의 본존은 연화좌 위에 앉아 있고, 좌·우협 시상은 서 있는 모습이다. 삼존상 위에는 운미가 길게 솟아 있고 그 위에는 장식을 흩날리는 보개가 있어 장엄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는 등 옛 조상의 조각기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종의 양식을 잘 계승한 법종으로 아름다운 고려 동종의 대표작이다.

대웅전 외에 경내에는 설성당과 요사 등 많은 건물이 각각의 현판을 달고 있는데 그중에서 설성당과 요사는 전북 유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설성당은 인조 18년(1640)에 청영 대사가 승려들과 일반 신도들의 수학 정진 장소로 사용하기 위하여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설성당과 요사는 4면이 연결되어 있어 중앙 내부에 마당과 우물을 둔 回자형의 특이한 건축양식이다.

▲ 내소사 설성당     © 정진해

정면 6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공포는 주심포 양식이다. 이 건물은 동쪽 측면 한 칸은 마루이고, 전면의 남쪽에서 2칸은 부엌이고 큰 아궁이가 있다. 주초석은 자연석 그대로 사용하고 그 위에 원형의 기둥을 설치하였다. 요사는 설성당과 같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정면 6칸, 측면 2칸의 2층 맞배지붕 건물이다. 1층은 승방과 식당, 부엌으로 사용하고, 2층은 마루로 물건을 저장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각 칸에는 환기창이 설치되어 있다.

대웅보전과 마주 보고 있는 봉래루는 조선 태종 12년(1414)에 건립하였으며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된 누각의 맞배지붕의 건물이다. 3면의 벽은 판자를 짜서 만들어 고풍스러워 보이고 안쪽의 5칸은 벽을 하지 않았다. 주초석은 큰 자연석을 사용하였는데 일정한 높이의 돌을 사용하지 않아 기둥으로 높낮이를 조절하여 수평을 맞추었다. 또한 초석의 배치도 안으로 갈수록 넓어지게 하였고, 정면과 좌우의 벽은 통판을 짜 만들었다. 내부에는 36개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정지상의 시와 그 주위로 정지상의 원운을 차운한 시가 여러 수 있으며 중창기, 송덕기, 시주질 등이 있다.

사천왕문을 나서며 화려한 꽃으로 구성된 문살과 나뭇결이 훤히 보이는 기둥과 공포, 내부의 화려한 금단청이 눈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세월의 흐름과 비바람에 씻겨 비록 그 칠을 찾을 수 없지만 조각의 섬세함은 오히려 도드라져 보였다.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정교하게 짜 맞춘 대웅보전은 아직 천년의 세월을 더 견딜 수 있지 않은가 한다.

‘설성당에서 소생 차 한 잔 드시라’ 넉넉한 한 줄의 글을 따라 들어서니 ‘내 마음이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못하게 하네’라고 쓰여 있는 문짝의 글귀가 숲 속의 나를 묶어두지 않았다. 왕벚나무와 연지, 부도전을 뒤로하고 다시 전나무 숲을 거닐며 또 다른 자연과 어우러진 환경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그윽하고 고즈넉했던 마음의 평정심이 중심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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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1/20 [10:12]   ⓒ wn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