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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의 멋을 담은 아미산의 화계

  • 기사입력 2020.05.04 14:11
  • 기자명 정진해/문화재전문위원

문화재 : 경복궁 아미산의 굴뚝 (보물 제811호)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아미산 굴뚝  © 정진해

고려왕조의 신화로서 홍건적과 왜구를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워 군사적 실력을 양성하였고, 위화도회군으로 실권을 장악한 이성계는 1392년 7월 17일 개경 수창궁에서 즉위식 하여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였다. 즉위 26일 만에 한양으로 천도할 준비를 지시, 1393년 2월 15일 국호를 조선이라 하고 기틀을 마련하면서 천도계획을 추진하였다. 고려왕조를 흠모하는 반대에도 있었지만, 한양에는 조선왕조의 법궁인 경복궁이 백악산의 남쪽에 1395년 9월 29일 종묘와 새 궁궐이 완성되었다. 이후로 많은 전각이 갖추어지면서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도 갖추어졌다.

왕비는 한가한 날이면 궁녀들을 데리고 후원에 나가 휴식을 취하고 후원에서 꽃구경도 하며 즐겼다. 교태전 후원에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꽃이 피고 벌과 나비가 찾아오는 자그마한 꽃동산이 갖추어졌다. 이곳을 아미산이라 불렀다. 이곳에는 궁중의 원예와 채소를 담당한 사포서 관원들이 철 따라 때맞추어 꽃을 피우는 식물을 가꾸었다.

아미산 전경  © 정진해

산이라고는 하지만 네 개의 단을 쌓은 곳에 꽃나무와 굴뚝, 그리고 석물이 어우러져 있는 교태전 후원의 화계에 불과하다. ‘아미산(峨嵋山)’이라는 이름은 중국 사천성 아미현 서남쪽에 있는 중국의 3대 영산 가운데 하나로 아미산이 양쪽 산이 대칭을 이루어 나방의 촉수같이 보인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경치가 빼어나 예부터 중국의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그 아름다움을 칭송해 왔다고 한다. 이 산의 이름을 교태전 후원의 회계 이름으로 따온 것이다. 처음부터 이곳 교태전 뒤에는 이런 지형이 아니었는데, 경회루 주변의 연못을 파낸 흙을 이곳에 쌓아 조성하였다고 한다.

2단씩의 장대석으로 석축을 4단으로 쌓고 그 위에 괴석을 세운 석분과 석지 등 석조물을 배치하였으며 주위에 꽃을 피우는 화초를 심었다. 아미산을 둘러보면 단연코 으뜸으로 치는 것이 6각형인 4개의 굴뚝이다. 이 굴뚝은 태종 때 경회루를 만들 때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조선 후기 고종 2년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만들어졌다.

붉은 벽돌을 쌓고 기와를 얹었고 굴뚝 상부에는 연기를 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 교태전 아궁이에서 불을 피우면 그 연기와 열기가 구들을 데우면서 굴뚝으로 빠져나간다. 굴뚝은 지대석 위에 벽돌을 30~31단을 쌓고 육각의 각 면에는  네 가지 종류씩의 무늬를 구성하였다.

굴뚝의 정상부에는 점토로 만든 연가를 두어 연기가 빠지도록 하였다. 바로 아래는 목조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소로, 창방, 첨차 형태로 만든 벽돌을 쌓고 기와지붕을 이었다. 굴뚝 몸체의 6면은 십장생, 사군자, 장수와 부귀를 상징하는 무늬, 화마와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형상 등을 전돌로 구워 4단으로 박았다.

아미산 굴뚝  © 정진해

굴뚝 6면의 맨 위는 직사각형의 당초문(넝쿨)을 띄어 민초인 백성을 으뜸으로 나타내면서 오래도록 쉬지 않고 살아간다는 생명력을 표현했고, 두 번째 부분은 벽사의 상징인 나티(귀신 얼굴), 왕비의 상징인 봉황, 복을 상징하는 박쥐, 장수의 상징인 학을 띄어 벽사와 장생을 나타냈으며, 세 번째 부분은 부귀와 명예를 상징하는 모란, 사군자의 하나의 지조와 은일을 상징하는 국화, 사군자의 하나로 지조와 절개, 그리고 올곧음을 상징하는 대나무, 장엄과 찬탄을 상징하는 창살, 늙은 줄기에서 새 가지가 나오며 추운 겨울을 견딘 후 꽃이 피기 때문에 늙거나 쇠퇴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매화, 특히 매화 꽃잎이 다섯 장이므로 오복(福祿壽喜財)을 표시한다. 장수와 절개, 화합을 상징하는 소나무, 풍요를 상징하는 석류를 띄어 부귀공명, 절개와 지조, 인내와 고고함을 나타냈고, 맨 아래는 벽사상을 부조한 직사각형 또는 정사각형의 벽돌을 끼워 엄정한 법 정신을 상징하는 해치, 악몽을 물리치고 사기를 좇는 능력의 소유자 불가사리, 장수를 상징하는 박쥐를 띄어 화마와 악귀를 막는 벽사를 나타냈다.

굴뚝의 평면도는 6각형의 평면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내부는 4개의 연도를 설치하였다. 연도는 오지 토관을 원형으로 설치하고 그 주위를 암기와 3개로 감아 싸고 외부 벽돌과 사이에는 생석회를 채웠다.

아미산에는 굴뚝 외에 석물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괴석은 문양이 새겨진 팔각 또는 사각의 석분에 심어놓아 장식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석조는 거북 좌대 위에 두 마리의 용이 서린 형상의 것과 연화형 수조에 해와 달을 상징하는 두꺼비를 새긴 것은 이곳이 신계임을 암시하고 있다. 모두 왕실의 안녕과 장수 그리고 건강한 왕자의 잉태를 기원하는 의미를 가진다.

아미산의 화계  © 정진해

화계 1단에는 큰 소나무 1그루가 자라고 있고 해당화, 철쭉, 만첩옥매, 할미꽃, 작약, 옥잠화가 주를 이루고 그 사이에 연화석분대와 8각의 석분에 괴석을 심어 화계를 더욱 아름답게 꾸미려고 하였다. 화계에 십장생의 소나무가 자라게 한 것은 사시사철 아미산에 푸른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과 소나무를 대대손손 후손이 번창하길 기대했던 것 같다. 또한, 소나무 옆 가장 낮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옥잠화가 터를 잡았다. 옥잠화의 이름은 ‘옥(구슬) 비녀(簪) 꽃’이란 뜻이다. 비녀가 사용되던 조선 시대의 관습에서 여인이 성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머리에 꽂을 수 있는 여성 전용의 장신구이다. 비녀가 가지는 상징은 ‘성숙한 여인’이다.

옥잠화 곁에는 할미꽃이 피어 있다. 할미꽃을 ‘노고초’ 또는 ‘백두옹’이라고도 부른다. 흰털을 꽃과 줄기, 잎까지 덮는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꽃을 피운다. 수정이 끝나면 열매는 긴 달걀 모양으로 암술머리가 깃털 모양으로 자라 백발처럼 된다. 그래서 할미꽃을 ‘백두옹(白頭翁)’이라 부른다. 아미산 화계에 할미꽃이 꽃을 피워 있은 모습을 보며 궁궐에서 생활을 할미꽃에 비유하지 않았을까 한다.

화계에는 작약도 자라고 있다. 모란은 보이지 않는데, 모란과 작약은 구분이 쉽지 않다. 모란은 나무에서 꽃을 피우고 작약은 풀에서 꽃을 피운다. 모란이 없을 때는 작약을 보면 된다. 화계의 작약은 매년 봄에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작약에서 계절을 느끼기 위해 심은 것 같다. 모란의 별칭은 ‘화왕’이라 한다. 즉 모란은 ‘꽃들의 왕’이다. 그러나 작약의 별명은 ‘화상(花相)’이다. 즉 ‘꽃 중의 재상’이라는 별칭이다. 화왕과 화의 차이는 작약은 모란이 진 후에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화왕은 ’경국지색(傾國之色)‘, ’가장 존귀 하는 자’를 상징하는 꽃이지만, 화상은 남녀 간의 ’야합(야합)’을 상징하는 꽃으로 미인을 상징하는 꽃으로 쓰이지 않는다. 작약은 황후궁 앞뜰에 필 수 있지만, 모란은 황후궁 앞뜰에 피지를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아미산 화계에는 모란꽃은 피울 수 없고 작약이 피는 꽃을 보며 깊어가는 봄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화계 2단에는 석분 1기와 방형 석지인 함월지(涵月池)와 낙하담(落霞潭)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함월지는 ’달이 잠긴 못‘이라는 뜻이고, 낙하담은 ’노을이 잠긴 못‘이라는 의미로 자연을 이곳으로 끌어들여 인공 산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갖추기를 바랬다.

 아미산의 식물 © 정진해

석분과 석조 사이에는 옥매와 앵두나무, 황매, 홍매, 매화를 심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았다. 옥매는 흰꽃이 피며 꽃잎이 많은 종류로 만첩흰매화라고 부른다. 붉은 꽃이 피는 옥매를 만첩홍매화라고 한다.

강희안(姜希顔)은 《양화소록(養花小錄)》의 화목9등품론에서 1품으로 분류하였다.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꽃을 피워 봄을 가장 먼저 알려줌으로써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삼았고, 늙은 몸에서 정력이 되살아나는 회춘(回春)을 상징하였다. 또한 사랑을 상징하는 꽃 중에서 으뜸이며 시나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한다. 꽃말은 ‘고격·기품’이다.

화계 3단에는 붉은 벽돌로 축조한 굴뚝 네 개에는 당초문, 소나무, 대나무, 매화, 모란, 국화, 용, 호랑이, 박쥐, 해태, 구름 등의 정교한 문양을 색깔 있는 조형전으로 구워서 굴뚝의 벽면에 박아 장식하였다. 이러한 문양은 왕과 신하를 상징하며, 행복과 장수를 희구하고 선비적 고고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굴뚝의 상부에는 목조 건물 지붕 형태의 연가(煙家)를 설치하였다.

서쪽의 굴뚝 다음에 경관을 위한 장식적 조형물로 모란이 새겨진 석연을 두었다. 굴뚝과 석연 주변에는 산철쭉과 옥매를 심어 굴뚝과 잘 어우러지게 하였다.

화계 4단에는 소나무, 참배나무, 느티나무, 살구나무, 산수유 등 다양한 수목을 식재하여 놓았다. 키 큰 나무는 뒤에 배치하고 키 작은 나무는 앞에 배치하였다. 또한 아미산의 전체적인 조화를 위해 초본류도 함께 자라면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하였다.

아미산 굴뚝은 사계절 연기를 뿜어내면서 주변의 식물과 어우러짐은 마치 신계의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의 뒤뜰이다. 왕비는 궁궐로 들어온 그 순간부터 살아서는 나가지 못하는 닫힌 공간의 생활이다. 이를 위해 왕은 왕비를 위해 작은 동산을 만들었다. 잠이 오지 않은 밤에 이곳에 나와 달빛에 핀 꽃을 둘러보며 마음을 달래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동산에 노란 풀꽃이 피기 시작하면 봄을 느끼고 초록색의 열매가 열리면 여름을 느끼고 열매가 붉게 익는 날이면 가을을 느꼈을 것이다. 하얀 눈이 내리면 겨울이 왔고 또 봄을 기다렸을 것이다. 아미산은 그렇게 왕비의 현실을 녹아내리게 하는 이상의 세계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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