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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회사는 왜 의약품의 가격을 홀로 결정할 수 없을까?

  • 기사입력 2021.03.11 22:25
  • 기자명 UAEM Korea

2019년 기준 한미약품은 2,098억원을 연구개발에 쏟아 부었다. 이어 GC녹십자(1,507억원), 대웅제약(1,406억원), 유한양행(1,382억원), 종근당(1,380억원), 동아에스티(770억원), 일동제약(574억원) 순으로 R&D(연구개발)에 많은 비용을 들였다.

                                                   

이렇듯 의약품 연구와 신약 개발의 전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자금과 어마어마한 시간이 소요된다. 이 엄청난 연구개발의 주체 중 하나가 제약회사이기에,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개발한 상품에 대한 가격 독점권을 제약사에게 당연한 권리로 인정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의약품의 특성과 가격 결정 구조를 고려했을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제약회사의 가격 독점권은 지나친 월권의 기회를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약품, 생명과 결부된 공공재

제약회사가 가격 결정권을 독점할 수 없는 이유 중 첫 번째는 의약품이 하나의 상품이기 이전에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의약품은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기 위해 개발되며, 따라서 공공재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다. 보건 의료권을 제창한 <알마아타 선언문(1978)>에는 “단지 질병이나 신체의 허약에서의 탈피뿐만이 아닌 완전한,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 안녕 상태인 건강은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이며, 가능한 한 최고 수준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회 목표”라고 하고 있다. 알마아타 선언문에 따라 인간의 기본 권리인 건강권을 지키는 데 있어서 의약품의 개발 및 활용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의약품의 공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최근 특허제도를 통해 의약품을 독점하여 의약품 생산의 궁극적 목적이 이윤 창출로 변질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폐렴은 치명적인 질병임에도 단 한 번의 백신 접종을 통해 충분히 예방 가능하지만 특허로 인한 비싼 약값으로 인해 저소득 국가의 유아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의약품은 사람의 생명과 연관되어 있는 공공재이기에 제약회사가 개발한 의약품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단독으로 가격 책정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적 자금의 지원을 받는 제약회사

의약품의 가격결정권이 제약회사에 한정되어서는 안되는 또 다른 이유는 제약회사가 받는 상당수의 공적 지원금 때문이다.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약품의 개발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국가는 공적 자금을 통해 제약회사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국가는 제약회사에 직접 임상 시험 비용을 지원하기도 하며, 세금 공제를 통한 감면 혜택을 부여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또한 2011년에서 2018년까지 연간 평균 3,029억 원을 신약 개발 R&D에 투자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국가는 상당한 양의 공적 자금을 대학 및 제약회사에 지원하고 있으며, 제약회사의 의약품 개발은 국가에 부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공적자금은 세금으로 마련된다. 따라서 의약품의 소비자이면서 공공투자자인 국민은 의약품 연구 과정 및 결과에 대해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많은 제약회사들은 이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결핵치료제인 bedaquiline은 총 US$455–747 million 이라는 막대한 규모의 투자금을 받았으나, 예산 분배의 구체적인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또한, 2019년 9월까지의 사용 현황을 확인한 결과 160,000명의 환자 수요와는 대조적으로, 실제 투여 받은 환자는 36,000명에 불과하였다. 또 다른 사례로 최근, 셀트리온이 개발한 코로나 항체치료제에 대한 정보 공개가 제한적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있다. 이러한 정보 불투명성으로 인한 약가의 비밀화는 지불자의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린다. 즉, 공적 투자의 대상으로서 의약품의 가격 투명성 확보는 필수적이다.

의료제도를 거쳐 지급되는 의약품

지금까지 의약품 가격의 결정권을 제약사에게만 한정할 수 없는 이유를 ‘의약품의 성격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의약품의 지급과정의 측면’에서도 그 이유가 있다. 이번에는 현행 의료제도의 규율 하에 의약품이 어떻게 지급되는지 알아보자.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나 사회가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료보장제도라고 한다. 그 중 건강 국민건강보험제도는 국민이 평소에 보험료를 내고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를 관리·운영하여, 필요시 보험급여를 제공하는 사회보장제도이다. 이로써, 국민은 상호간 위험을 분담하고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국민건강보험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고 이에 상응하는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에서 약값의 일부를 지불하기 때문에 보험에 등재된 의약품의  가격(보험약가)은 정부와 제약사의 협상에 의해 결정되고 다양한 기관이 모여 평가한다(아래 그림 참고). 의약품 가격이 유통업자나 제조업자가 정하는 ‘권장소비자가격’과는 다르게 제조업자(제약사)와 정부 간 협상을 통해 결정된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의약품은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제도 안에서 지급이 이뤄지기 때문에, 정부와 제약사 간 가격 협상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 즉, 제도적으로 제약사가 단독으로 의약품의 가격 결정권을 갖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가격 협상 시 의약품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건강보험으로 전국민이 건강권 보장을 받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 조정이 중요하다.

                        

                

따라서 오늘날 의약품의 가격 결정은 제약회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이를 구입하는 국가의 보건당국과 협상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한 협상 방법 중 특이적인 경우에 RSA 이하 위험분담계약을 도입하고 있는데, RSA는 현재 밝혀진 신약의 임상가치를 바탕으로 가격을 우선 책정하고, 이후 차차 약의 진가가 밝혀짐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을 제약회사와 보건당국이 합의하에 분담하는 방식이다.

불이익을 분담한다는 것은, 보건당국이 실제로는 효과가 크지 않은 약에 대해 지나친 비용을 부담한 것일 수도 있고, 반대로 뒤늦게 부작용 등이 발견되어 제약회사가 급여 중단을 선언받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4년부터 대체제가 없는 희귀질환 치료제나 고가의 중증 항암제에 대해 이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RSA가 특수한 상황에서 가격 협상 시 필수적인 ‘정보’의 결핍문제를 보완하고자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약가 협상의 문제점을 완벽히 보완한 방법이 될 수는 없다. RSA의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제약회사가 ‘정보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발된 지 얼마 안된 신약의 임상 결과는 의약품이 인체에 미치는 모든 가능성을 보여줄 수 없으며, 신약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근거들로만 구성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제약회사는 이러한 점을 이용해 일단 최초 협상에서  의약품의 실제가치에 비해 명목상의 가격을 높게 설정해두고, 실제 판매가를 이와 다르게 책정하기도 한다 (이중약가). 각 국가에서 약가를 결정할 때 다른 국가에서 책정된 가격을 많이 참고하곤 하는데(참조가격제), 이렇게 명목 약가를 높게 책정하면 전세계적으로 높은 약가가 설정되어 의약품의 접근성을 해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더욱이 국내 의약품의 경우 정보의 부족이 극대화된다. 우리나라는 임상 시험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적어, 신약의 불확실성이 크며, 특히 희귀의약품을 대체제로 하는 경우 환자 수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해당 문제점이 대두된다. 또한 대체제가 없는 의약품을 상대로 RSA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임상 효과를 비교대조하여 객관화하기 어려운 실상이다. 제약회사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가지고 가격을 책정해야 하는 이 상황은 곧 주체가 정해져 있는 가격 결정 방식이며, 가격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당당히 주장할 수 없다.

사실상 제약회사가 정보의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정한 가격을 위해 가격 협상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 앞으로 보험자의 협상 상의 혜택을 주고 우위를 높이는 방식으로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한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금까지 제약사가 의약품의 가격을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근거를 3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의약품의 존재 목적은 상품의 수익이 아니며, 연구 개발비용에는 세금과 공적자금이 꽤 많이 포함된다. 또한, 의약품은 의료 제도라는 규율 안에서 지급되므로 제약사가 단독으로 의약품의 가격을 결정할 수 없는 구조이다.

그러나 의약품의 가격 접근성 보장을 향해 달려야 할 길이 아직 멀다. 제약사는 국민의 세금과 공적 자금을 연구개발비로 지원받고 세금 감면 및 조세 혜택을 받고 있음에도 그 투명성이 확보되고 있지 않다. 또한 정부는 사회적 제도 아래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 조정을 하고자 하나, 제도의 허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따라서 의약품의 가격 협상 시 제약사의 정보 우위로 인해 생기는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따라서, 의약품의 가격은 제약회사와 정부, 그리고 소비자인 국민이 함께 주체가 되어 결정되어야 하며, 이러한 다원적 결정 구조를 통해서 보다 형평성이 있는 의약품 공급 체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 노승진(경희대학교 한의학과), 서유나(연세대학교 화학과), 서지원(경희대학교 약과학과), 이예린(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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