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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있는 곳이 위험하다

  • 기사입력 2021.03.23 22:06
  • 기자명 이오장
▲ 시인 이오장  

밥이 있는 곳이 위험하다

                   차옥혜 (1945년~)

참깨 밭에서 고소한 깨알을

쪼아 먹던 새를

야생고양이가 순식간에 덮친다

밥이 있는 곳에 함정과 덫이 있는 것을

누가 모르랴만

먹지 않고 배길 목숨 어디 있으랴

참깨나무는

고양이를 쫓아주지도 못하고

육식동물의 야만을 고스란히 보다가

바람이 놀란 가슴을 다독이자

남은 깨알을 마저 토한다

새들이 다시 날아와 깨알 먹기에 빠지자

잠복해 있던 야생고양이가 번개처럼 뛰고

새 떼가 화달작 날아오르는 찰라

새의 깃털이 또 꽃잎처럼 흩날린다

한여름 한낮 세상의 참깨 밭은

일방적인 밥 전쟁이 한창이다

메뚜기를 버마재비가 노리고 버마재비 뒤는 매가 노린다. 이게 자연생태다. 삶을 유지하는 방법은 정해져 있는 것이라 바꿀 수 없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육식이냐 초식이냐로 가려져 종에 따라 사는 방법은 나뉜다. 피라미드 형식으로 약육강식은 층계를 이뤄 여기에서 벗어나는 생태는 없다. 사람은 먹는 것에는 잡식성을 보이지만 사는 방법은 약육강식을 벗어나지 못하여 육식동물이 약한 동물을 잡아먹듯이 약한 사람은 강한자로부터 도태되기 일쑤다. 그러나 생태를 바꿔 강자가 약자를 먹지 못하게 한다면 생태는 무너져 멸종하는 사태를 맞게 된다. 차옥혜 시인은 참깨 밭에서 일어난 약육강식의 생태를 목격하고 인간사회의 강자와 약자의 상태를 떠올린다. 약자에게 연민을 보이고 강자를 향해 분노를 느끼지만 자연의 법칙을 벗어나서는 강자도 약자도 함께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자책감에 빠진다. 이런 작품은 얼핏 보기에는 사소한 일상의 기록으로 읽게 되지만 시인의 가슴 속에는 인간본연의 사랑이 자리 잡고 있어 자연과 하나가 되려는 교감능력을 말해준다. 자연의 약육강식은 어쩔 수 없지만 사람만이라도 약자를 보살피는 사랑이 아름답게 발현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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