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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라면

  • 기사입력 2021.04.08 08:20
  • 기자명 이오장
▲ 시인 이오장 

                  컵라면

                                   정민욱

구불구불 구겨진 삶들이 모여 사는 세상

한때 열정을 부어 끓이던 젊음이

식어버린 시간 속에서 바삭 굳어있다

잠들지 못한 생각들이 건져 올린 시간 속에서

존재의 이유를 묻는다

굳어버린 삶에

옮기지 못한 상념

끝내 놓지 못한 체념

버리지 못한 미련을

스프로 넣고 들여다보면

뜨거운 삶의 이유가 된다

시를 왜 쓰냐고 묻는다면 즐기기 위하여, 삶의 고민을 풀어내기 위하여, 슬픔을 떨쳐내기 위하여 등등 시를 쓰는 이유는 달라도 모두 같은 뜻이다. 그것은 시가 삶의 과정에서 완숙되어 나오는 감정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는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무슨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시인이 풀어낸 삶의 감동을 공유하기 위하여 또는 자신이 느끼지 못한 삶의 율동을 함께하기 위하여 시를 읽는다고 하면 충분한 대답이 될까. 아닐 것이다. 쓰는 이와 읽는 이의 감정은 똑같을 수 없다. 다만 함께 살아있다는 확인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시를 만난다면 확연히 대답할 수 있다. 살아가며 겪는 모든 일상을 다 잊었다가 사소한 컵라면 하나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녔다면 저절로 감동하지 않을까. 이것이 시가 지닌 힘이라고 할 것이다. 정민욱 시인은 그런 힘을 지녔다. 구불구불 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식어버린 시간에서 굳어 잠들지 못한 생각을 투시하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좁은 틀에 갇혀 옮기지 못한 상념과 끝내지 못한 체념, 버리지 못한 미련을 혼합의 스프에 버무려 뜨겁게 끓인다면 서로를 이해하고 삶의 공동체를 만들어 한층 높아지는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컵라면 하나를 마주하고 삶의 연속적인 과정을 그린 시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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