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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에게 준 성탄절 선물

  • 기사입력 2021.04.27 04:56
  • 기자명 수필가 이석복
▲차세대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전 육군 제5사단장     

내가 최전방 사단장으로 여름에 부임하고, 겨울을 맞이했던 때의 일이다. 아내와 고등학교 1, 2학년 연년생 두 아들이 겨울방학이라고 떨어져 지내는 아버지를 찾아 공관(사단장 관사)에서 며칠을 같이 지낸 적이 있었다.

직업군인들의 가족생활이라는 것이 대대장 직책수행 할 때까지는 아이들도 어리고 아직 내집 마련도 못할 시기라 통상 관사에서 같이 지내기 마련이다. 내 경우는 비교적 결혼을 늦게한 편이라 연대장 할 때까지 두 아들과 관사에서 같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잦은 보직(補職) 이동으로 이사도 자주하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덩달아 전학을 하게 되어 큰 아들은 초등학교를 일곱 번 옮긴 끝에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군인가족들의 고생은 말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꿈이 있었고, 젊었기 때문에 견디어 낼 수 있었다. 

그해 겨울 방학은 오랜만에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 아버지로서 너무 반가웠지만 최전방부대 지휘관으로서 막중한 임무가 우선이었다. 적과 대치하고 있기에 성탄절 전야에도 삭풍의 칼바람을 맞으며 혹한 속에서 빈틈없이 경계근무를 하고 있는 장병들에게 나의 격려와 마음의 선물을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하다가 나름 묘안을 찾아냈다.

그 묘안이라는 것이 아직 고등학생의 어린 나이지만 두 아들에게 힘든 전방경계근무 체험을 하게 해서 직업군인의 아들들로서의 안보관을 심어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동시에 사단장의 두 아들을 장병들과 함께 그 혹한 속에서 경계근무를 시키는 사단장의 마음을 성탄절 선물로 보내주고 싶었던 것이다.

비록 사단장의 아들들이기는 하나 민간인 신분의 고교생을 병사들 속에서 경계근무를 체험시킨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점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사단장의 생각에 대한 예하부대장들의 진솔한 의견을 자문해보기로 하였다. 해당 연대장과 기무부대장은 나의 생각이 부대에 폐(弊)가 되지도 않고 장병들에게 큰 격려가 될 것이라는 의견을 주었기에 결심을 할 수 있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이 밝았다. 아내와 함께 6시에 사단 경내에 있는 법당에서 108배를 하고 돌아왔다.  불교신자의 108배(拜)는 나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도 도움이 되었지만 매일 사단 장병들의 임무완수와 안전을 위해 기도하는 지휘관으로서의 정성이었다. 두 아들과 아침을 같이 하면서 “아빠가 오늘 너희들에게 좋은 성탄절 선물을 줄 테니 기대하라”고 말한 후 출근을 해서 선물계획을 진행했다. 물론 아내에게는 내 구상을 미리 말해주고 동의를 구한 후 아들들에게는 “아빠가 아마도 전방에다 무슨 선물을 준비해 놓으신 모양이다.”라는 정도만 얘기해두라고 당부했다.

출근해서 상황보고를 받은 후 전방 DMZ(비무장지대)의 남방한계선의 철책선의 경계를 담당하는 전방대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의 두 아들을 보낼 것이니 군복으로 입혀서 정식신고를 받고 병사들과 똑같이 야간경계근무에 투입해서 근무체험을 시켜달라는 지시 아닌 부탁을 했다. 대대장은 사전에 연대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는지 철저히 준비해 놨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보내 달라고 복명(復命)을 했다. 전속부관에게 내용을 설명한 후 두 아들을 전방대대장에게 인계하고 내일 오전에 복귀시키도록 지시했다.

두 아들은 아버지가 무슨 선물을 줄려고 지프차에 태워 전방으로 보내는지 매우 궁금해 하였지만 “가보면 알게 돼”라는 전속부관의 말에 더 이상 질문을 못하고 조바심을 내며 갔다고 한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나는 불교신자였지만 사단의 교회예배와 성당미사에 참석하여 신자장병들에게 성탄축하를 해주고 공관에 돌아왔을 때 두 아들은 이미 돌아와 있었다. 다소 긴장된 말투로 “크리스마스 선물 좋았지? 춥고 힘들었지?”하며 칭찬과 준비한 조그만 선물과 용돈봉투를 내밀었더니 좋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아들들은 국군장병아저씨들이 얼마나 수고를 하는지 온몸으로 알게 되었다고 아빠가 말한 ‘성탄절 선물’에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 아닌가? 참 대견하고 기특한 아들들이었다.

속으로는 혹시 두 아들이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마지못해 따르기는 하였지만 삐치지는 않았는지, 너무 힘들지는 않았는지 걱정을 했지만 괜한 노파심이었음이 확인됐다. 전방대대장에게도 수고했다는 전화를 했더니 “저희들에게도 특별한 선물이었으며, 사단장님의 아들들이 정말 잘 따라주어서 전혀 문제가 없었고, 장병들이 모두 사단장님의 깊은 뜻에 감사드린다.”고 하였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았다. 이 소문은 내가 의도했던, 안했던 간에 전 사단에 알려졌고 사단 장병들이 모두 특별한 ‘성탄절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는 후일담(後日譚)을 들었다.

다음날 부사단장들(한 분은 준장으로 작전부사단장, 한 분은 대령으로 행정부사단장)과 참모장과 잠시 환담을 하는 자리에서 이 얘기가 화제가 되었고,  자식교육의 한 수 가르침을 받았다고들 호응해 주었다.

세월이 흘러 두 아들은 자기 친구들과 또는 지인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이 얘기를 여러 차례 하게 되었고, 술자리에서 모두들 이미 들은 얘기지만 처음 듣는 듯 다 같이 웃고 즐거워한다고 했다. 나도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이 얘기를 했을 때 다들 흐뭇해하며 맞장구를 쳐줬던 모습들이 새삼스럽다. 경계근무에 고생하는 부하장병들에게 두 아들은 사단장의 ‘성탄절 선물’이 되었고, 장병들과 함께 경계근무 체험은 두 아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아버지의 ‘성탄절 선물’이 되었던 것이다.

이석복 : 수필가, 문학공간 등단, 예비역 육군소장, 차세대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사)한국문화안보연구원 명예이사장, 한미연합사 부참모장 겸 유엔사군사정전위 수석대표 역임, 저서 <한미동맹의 미래>, <한국문화의 정체성>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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