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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가듯

  • 기사입력 2021.06.03 09:43
  • 기자명 이오장
▲ 시인 이오장 

봄이 가듯

                     권영기  

시퍼런 고풍리

호수 아래

떠돌다 물결 속으로

잠드는 꽃잎이 될래

토끼풀꽃 하얗게

흔들리는 언덕

돌계단 아래

머리칼처럼 찰랑이는

등꽃 나무 곁에서

자주색 꿈을 꿀래

해장죽 서걱이는

호젓한 산 속의 봄날

하얀 감꽃이 피어나는 저녁이면

너의 눈 속에 파묻히고 말래.

그렇게 만발하던 꽃들은 어느새 져버리고 봄이 갔는가. 참 허무하다. 지구의 온난화로 봄이 빨리 간다면 이제는 여름과 봄이 같은 계절이라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 등이 차례로 피던 때는 이제 가버렸고 모든 꽃이 한꺼번에 피는 계절의 변화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도 모자라 봄을 잊어버리게 한다. 추위에 떨다가 따듯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 얼마나 고대하였던가. 그런 봄이 여름 같아져 이젠 4계절의 구분이 3계절로 변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많은 꽃이 있다. 아카시꽃이 필 무렵이면 여름을 알리는 대표적인 감꽃이 피고 감꽃 아래 토기풀꽃이 피어 마지막 봄을 느끼게 한다. 이때 조금의 감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위치를 떠올려 계절의 문턱에 올려놓고 자신을 저울질하게 된다. 권영기 시인도 마찬가지다. 살아오며 겪은 모든 추억을 물 위에 그리다가 물결 속으로 잠들어가는 꽃잎이 되고. 향기 짙은 등꽃 아래에서 이루지 못한 자주색 사랑의 꽃을 피운다. 감흥어린 기억 저쪽을 떠올려 아쉬움이 가득한 삶의 뒤안길을 그린다. 회한에 젖은 추억의 그림자를 한잔 해장술로 달래고 여름이 시작되는 열기가 피어나는 감꽃 아래서 인생의 눈 속에 파묻혀 삶은 그립고 아쉽지만 지나고 나면 한갓 헛된 꿈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빨리 가는 봄날이 시인의 가슴을 요동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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