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꽤 부자라는 소리를 듣던 아버지와 내 위로 형님이 둘 있었다. 큰형님은 사춘기 때부터 여자관계가 복잡했다. 메이퀸을 비롯해서 고위직 비서 등, 좋은 여성들이 많았다. 장남이므로 아버지 재산은 모두 자기 것이라며 허풍을 떤 것이 비결이라고 했다. 그런 경력 끝에 결혼한 여자도 남자보다 우리 집 재산을 보고 왔다며 뻣뻣하고 오만해서 동생들이 잘 따르지 않았다.
둘째 형님은 가업을 이어받았으나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어려웠다. 그러나 겉으로는 부자라는 소문에 역시 돈 많은 집 여자와 중매 결혼했다. 둘째 형수 역시 이재에 밝아 우리 집 재산을 놓고 두 형제 집안 간에 10년을 치열하게 싸웠다.
결말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결국 내가 중재에 나서 공평하게 아버지 유산을 나눴다. 그러나 앙금은 그대로 남았다. 내가 얻은 교훈은 돈 때문에 우리 집안 형제간 우애가 깨지고 사는 재미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돈 보다 중요한 것이 형제간 우애이고 돈은 있을 만큼만 있으면 된다는 소신이 굳어졌다. 직장생활도 각종 유혹이 따르는 직종이었지만, 한눈팔지 않고 성실하게 일만 열심히 한 덕분에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은퇴했다.
은퇴 후 지역 모임에서 내게 잘 해주던 여인이 있었다. 하루는 밤늦게 전화해서 남자를 소개시켜 달라는 친구가 있어 내가 떠올랐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소위 호구조사가 시작되었다. 가진 재산은 얼마나 되고 한 달 수입은 얼마냐는 등 주로 재산에 관한 것이었다. 솔직히 답을 했더니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친하니까 가르쳐주는 건데 남자는 뻥튀기를 할 줄 알아야 여자가 붙는다고 했다. 사람이 중요하지, 재산은 먹고살 만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더니 순진한 남자라고 했다.
얼마 후, 그녀는 딸을 시집보내야 하는데 좋은 신랑감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성사되면 1천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러면서 신랑의 조건을 얘기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연봉 수준, 아버지와 조상들 재산에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몇몇 신랑감을 소개했지만, 재산이 그렇고 그런 수준이라며 딱지를 놓았다. 그녀의 기준은 오로지 돈이었다. 내 호구조사에서 다 알아봤으니 나는 대접을 못 받은 것이었다. 그 후 내가 별 볼일 없는 남자라는 것을 알았는지 그녀와 사이가 멀어졌다.
지나고 보니 우리나라 여성들은 돈을 행복의 척도로 세뇌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았다. 오래전 방송에 나와 돈이 없는 남자는 루저이며, 아무리 미남이라도 사흘을 같이 못 산다고 한 철없는 여대생 이야기가 떠 올랐다. 행복의 척도는 돈이라고 했다.
한창 단체반에서 댄스를 배우러 다니던 시절에 외제 차를 몰고 오는 과묵한 수강생 남자가 한 명 있었다. 외모도 별로였고 춤도 못 췄다. 그런데도 다른 여성 수강생들은 물론이고 여성 강사까지도 그 남자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 남자의 외제 차는 렌터카라는 것이 밝혀졌고 결국 돈 문제와 여성들과 추한 문제로 그만두었다.
오래전 결혼중매업체를 통해 상대 여성과 레스토랑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대화는 잘 통한 것 같았으나 레스토랑에서 나왔을 때 그녀가 내게 차를 어디 주차했느냐고 물었다. 전철을 타고 왔다고 하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당시 차를 소유하고 있기는 했지만, 서울 시내는 대중교통이 더 편리한 데 차를 가지고 나갈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내 차의 차종까지 알고 싶어 했으며 그것으로 내 재산 정도를 판단하려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남성들은 뻥튀기를 잘하는 남자들이다. 그런데도 여성들은 거기에 유혹당한다. 그러나 대부분 보면 사기꾼이거나 뻥튀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주 돈이 많으면 그들만의 리그에서 논다. 알면서도 안 되는 것이 내 심성이다.
여성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어릴 적 친구와 꽤 친하게 지냈는데 어느 날 내게 안부를 물었다. 글을 쓰는 일, 장애인 봉사하는 일을 하며 바쁘다고 했더니 다 듣고 나서 씩 웃었다. “돈 생기냐?”라며 물었다. 돈과 관계없는 일이라고 설명하려 했으나 그의 기준은 오로지 돈이었다. 주식 보유 현황을 자랑하며 자기가 승자라며 뻐기는 것이었다.
‘무소유’를 주장하던 법정 스님도 있었지만, 내 소신도 돈은 쓸 만큼만 있으면 된다고 본다. 오로지 돈이 모든 행복의 기준이고 사람을 보는 기준이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돈은 다다익선이라고 또다시 상대와 비교하며 욕심을 낳는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지만, 천박한 배금주의가 가장 자살률 높은 나라, 행복하지 않은 나라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인구가 감소하는 이유도 돈이 없다며 남자는 포기하고 여자는 돈 많은 상대만 찾다 보니 결혼 자체를 못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