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 년을 살아오면서, 그간의 단체 생활을 되돌아보면, 사람은 혼자 존재감을 나타내기 어렵지만, 둘만 돼도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내가 단체에서 감투를 많이 썼던 이유는 그때마다 누군가가 나를 강력히 밀어줬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아서였는지, 사람 좋아하고 술을 좋아해서 가까운 사람이 많았는지, 가는 곳마다 나를 따르고 밀어주는 사람이 생겼다. 남들은 각자 혼자인데 우리는 둘이니 존재감이 다르고 파워도 있어 보였을 것이다. 몇 명 안 될 때는 우리가 대세처럼 보인다.
단체에서 회장을 뽑는데 누가 봐도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자기를 자천하는 사람은 보기 어렵다. 그랬다 하더라도 된다는 보장이 없다. 모양새가 좋지 않다. 결과도 대부분 안 좋았다.
반대로, 내가 회장을 하는데 신규 회원들이 패거리로 들어와서 파워게임을 할 때 피곤했다. 결국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고 돈이 결부된 것도 아니니 내가 물러나는 편을 택했다.
댄스동호회를 할 때 한 커플이 나를 회장으로 추천해서 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나오기 전에 매번 데이트 겸 만났다. 둘이 말을 맞춰서 사사건건 반대하는데, 그에 맞서 설득하자니 2배로 힘들었다. 혼자 둘을 상대한다는 것은 얼핏 다수의 의견에 맞서는 꼴로 보여, 보기 안 좋았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 고집대로 하다 보면 독재한다는 오명까지 생길 수 있다.
또 다른 댄스동호회 활동을 할 때도 내가 회장이었다. 어느 고등학교 동창생 4명이 한꺼번에 들어오면서 이들도 반대 세력이 되어 피곤하게 했다. 결국 내가 그만두었다.
오래전 대학 신입생 시절 과 대표를 뽑는데도 고교 출신이 같은 동창생들이 있어 밀렸다. 모두가 처음 보는 얼굴이기 때문에 자천만으로는 검증이 안 되므로 당선되기 어려웠다.
반대로, 사진동아리 회장은 원래 4학년이었는데 회장 대상자들이 모두 ROTC라서 3학년으로 낮추기로 했다. 그런데 3학년 대상자가 2학년인 나를 강력히 추천하는 바람에 회장을 맡은 일도 있다. 위에서 밀어주면 반감이 없는 것이다.
군대에서도 각자 자대로 배정받은 사람보다 한동네 사람들이 동기로 몰려온 패거리가 가장 강력하게 집단을 형성했고 하급자들을 괴롭혔다.
단체의 장(長)이 되려는 사람은 장으로 나서기 전에 이미 자기 조직을 거느리고 있어야 한다. 혼자 힘으로는 전체 조직을 이끌어가기 어렵다. 조직에서 패거리가 나타나서 사사건건 시비를 걸면 결국 못 당한다.
한번 장이 되고 나면 기득권이라는 것이 생기게 마련이다. 전임자나 선배의 후광이나 입김도 있다. 단체의 가장 배경이 되는 실세의 추천도 강력하다.
지나고 보면 직장 생활도 비슷했다. 그 작은 사회에서도 학연, 지연으로 자기 패거리를 만들고자 한다. 그 결과 얻은 직급이 자신의 지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래야 권한이나 파워도 생긴다. 사장이 임명하는 것이니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장이 되고 나면 명예욕이라는 것이 실감 난다. 회원들이 모두 장으로 대우해 주는 것이다. 자기 철학이나 주장대로 단체를 이끄는 재미와 보람도 있다. 그 맛에 하는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에는 별것도 아닌 일로 서로 장이 되겠다고 나선 적이 있었다. 지나고 보면 추억일 뿐이다. 지금은 뒷전에 물러나 있는 것이 물심양면으로 편하다. 나서서 설쳐야 할 때가 있지만, 물러나 있는 편이 좋을 때가 있는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