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춤에 빠져 있을 시기에는 나이트클럽에도 자주 갔다. 댄스 동호인들이니 공통 취미가 춤이었다. 춤을 배웠으니, 실전에서 해 봐야 하는데 그 무대가 나이트클럽이 제격이었다. 모인 날이 마침, 현충일이었는데 혹시 나이트클럽이 문을 열었을지 모르니 가 보자고 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당일 휴업이었다.
우리는 댄스스포츠가 건강을 위한 국민체육이자, 건전한 취미생활이므로 현충일과는 무관할 줄 알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보는 시각으로는 음주가무는 현충일 같은 애도일에는 자제해야 하는 것이다. 유교적 가치관이 존재하므로 방종한 음주가무는 도덕적 해이로 간주한다. 도덕과 분리된 사적 행위로 보는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규범이 있다.
예를 들면, 절, 묘지, 학교, 종교시설, 병원, 공공 기관에서의 음주가무는 부적절한 행위다. 장소의 성격이 경건함, 공공성, 치유, 학문 등에 집중되어 있고 타인의 권리와 질서를 침해할 수도 있다.
현충일 같은 국가적 애도 기간에는 공동체적 슬픔과 경건함의 표현으로 추모가 필요하다. 대다수가 애도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유흥은 부조화와 도덕적 반감을 유발할 수 있다.
특정인의 음주가무 금지 규범도 있다. 공직자, 군인, 스님, 목사, 교사, 장례 중인 유족, 등은 사회적 모범이 되어야 한다. 경건한 태도와 일정한 윤리 기준 유지도 필요하다.
도덕적 규범은 단순히 “하지 말라”보다 타인과의 조화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다. 그러므로 비도덕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공감 결여로 비쳐 신뢰 상실로 이어진다.
춤은 체육, 취미, 예술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음주가무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술은 뇌의 기능을 완화해 사람을 더 감정적으로, 개방적으로 만든다. 몸을 흔들고 싶게 만들고 목소리를 내고 싶은 충동을 끌어낸다.
음주가무는 위계나 체면을 넘어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기 쉬운 장치다. 직장에서 회식 때 상사와 부하가 함께 춤추며 어울리다 보면 친밀해진다. 낯선 사람들도 술과 음악으로 금세 친해진다. 그러나 절제가 어렵다. 절제하지 않으면 도덕적 법적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음주가무가 단순히 나쁘다기보다는 그로 인해 인간이 쉽게 경계를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언행의 통제력이 흐려지고 타인에 대한 배려나 규범이 무너지기 쉽다. 절제된 해방을 지킬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우려하는 것이다.
대학 재학 시절, 내가 과 대표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방학 중 우리 과 학생 한 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개학 후 경영대 전체가 구로공단 견학 행사가 있었다. 교무주임은 공단 견학은 오전 중 끝날 것이므로 오후에는 피크닉으로 준비하라고 했다. 한바탕 놀아야 하니 회비를 갹출하여 술과 음악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부의금을 거두는 중인데 놀러 간다고 또 회비를 거둘 수가 없어서 반발심이 생겨, 우리 과는 상중이므로 그럴 수 없다며 빠지겠다고 했다. 교무주임은 내가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한다며 대단히 화를 냈다. 그 보복으로 교무주임이 맡고 있던 필수과목에 줄줄이 낙제하는 난관에 부닥쳤다. 지금도 그것이 어떻게 공과 사로 구분되며, 내 결정이 왜 잘못되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