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직장생활하며 아파트 평수를 늘려 갈 때 나만의 서재를 갖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나 막상 큰 평수의 아파트를 분양받아 내 서재를 꾸몄는데 생각보다 아늑하지 않았다. 그 방만 나 혼자 쓰는 공간이지, 방 밖으로는 가족이 있어 언제라도 들어올 수 있고 밖에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진정한 나만의 공간은 아니었다.
지금은 독거노인이 되어 주거지를 작은 평수로 옮겼다. 집에 나 혼자 있으니 내 아지트인 것은 맞는데, 집에 있으면 TV가 있어 나의 시간을 빼앗아 간다. 소파에 누워 바보상자 TV를 보다 보면 나도 바보가 되는 것 같았다. 늘어져서 낮잠이라도 들면 밤에 잠이 안 온다. 무엇보다 집에만 있다 보면 운동 부족이 생긴다. 잠옷 바람이고 면도도 안 했는데 세수도 귀찮다. 폐인이 따로 없다.
사람은 아침에 날이 새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오늘 날씨가 어떤지도 알아 보고 그에 맞는 옷도 고른다. 어딘가 갈 데가 있어야 한다.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퇴직 후 일단 집에서 나갔다. 처음에는 개인 사업을 한다고 사무실을 정식으로 임차해서 출퇴근했다. 나이도 들고 사업 환경도 만만치 않다 보니 그것도 한계가 있어 포기하고 정말 은퇴했다. 갈 데가 없어진 것이 가장 당황스러웠다. 탑골 공원에 가서 남들 바둑이나 장기 두는 것 구경하거나 훈수 두는 것도 취미가 맞아야 한다.
그래서 사업하는 친구들 사무실에도 가보고, 내가 영어를 좀 하니 도와달라 하여 가서 통역, 번역 등을 도와주기도 했다. 집에서 편도 2시간이나 걸리는 곳까지 출, 퇴근한 적도 있다. 냉, 온방 잘 된 전철 타고 다니며 책도 보고 나름대로 그 시간을 활용했다. 무보수지만, 점심은 얻어먹었다.
그러나 정식 직원도 아니고 애매한 입장이다 보니 언제든지 나오지 말라면 자리를 비워줘야 했다. 마지막으로 남의 신세를 진 것은 댄스동호회 후배가 국제 결혼 회사를 운영하는데 내가 갈 데가 없다 했더니 자기네 사무실에 나와 소일하라는 것이었다.
직원들이 젊어서 천방지축인데 점잖은 어른이 자리 잡고 있으면 분위기가 잡힐 것이라고 했다. 존재의 이유라고 했다. 그래서 몇 년간 잘 있었는데 사업이 잘돼서 직원들을 계속 뽑아야 하니 자리를 비워줘야 했다.
다시 집으로 가면 그만이지만, 아침에 나오던 습관 때문에 주변에 소호사무실을 얻었다. 말 그대로 ‘SOHO’는 ‘Small Office/Home Office’다. 칸막이가 없는 공동 공간에 있다가 여기저기에서 전화 통화하는 소리가 듣기 싫어 독방으로 옮겼다.
나만의 아지트인 것이다. 맛있는 과자, 과일 등 갖다 놓고 책도 보고, 신문도 본다. 나 이 외에는 올 사람도 없으니 좀 지저분해도 상관없다. 나만의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커뮤니티 카페에 글 올리며 소통하고, 여기저기 원고 써 보내고, 힐링도 할 수 있다.
특히 좋은 것은 연중 24시간 활용할 수 있다. 은퇴 노인은 휴일이 따로 없지만, 휴일에도 사무실에 나와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특히 명절 연휴 등, 갈 데도 마땅치 않을 때는 이 공간이 있어 심심하지 않다.
오다가다 쇼핑도 하고 근처에서 밥을 사 먹는 재미도 있다. 지인들과 만날 때도 집으로 오라고 하면 서로 부담스럽지만, 사무실로 오라고 하면 부담이 없어 좋다.
낮에 지인들과 당구를 치고 나서, 남들은 집으로 향하지만, 나는 사무실에서 남은 하루를 마무리한다. TV 없는 혼자만의 시간도 중요하다. 나만의 취향과 개성은 집보다는 이런 아지트에서 더 나를 표현하기 좋다. 일과 삶의 분리도 필요하고 소셜 피로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도피처가 되는 것이다.
멀쩡한 집 놔두고 왜 월세 내가며 돈을 쓰느냐는 사람도 있다.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위해 하루 커피 한 두잔 샀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만의 아지트는 내가 좋아하는 공간, 분위기의 물리적인 공간과,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휴식, 몰입, 치유, 창작을 할 수 있는 진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심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퇴직 후 25년이 흘러갔다. 내가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