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6년부터 1628년까지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아돌프의 명령으로 3년 만에 급조한 배 이름이다. 대형 전함 건조의 적정기간은 약 4년에서 6년 정도가 정상이었다. 당시 국왕은 개신교 진영을 대표하여 신성로마제국과 싸우던 중이었다. 발트해 패권을 놓고 폴란드, 덴마크와도 동시다발적으로 갈등하던 중으로 해군력이 절실했고 전함 건조는 국가 생존의 문제였다. 그래서 서둘렀다.
바사호는 규모 69미터, 높이 52미터, 64문의 대포를 장착한 거대한 전함이다. 원래 설계는 대포 36문 전함이었는데 국왕이 더 강력하게 하라고 해서 무리하게 무거운 대포를 더 적재했다. 이러한 변경은 원래 설계 비율과 맞지 않는 무리한 요구였다. 실제로 무게 중심 테스트에서 40명의 병사가 좌우로 뛰는 안정성 시험에서 배가 불안정하다는 결과가 나왔는데도 국왕은 계속 진행하라고 했다.
그런데 1628년, 처음 출항한 지 불과 20분 만에 1.3km 지점에서 침몰하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들여 건조한 전함인데 국왕이 보는 앞에서 처참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배는 1956년 스웨덴 해양 고고학자 안데르센 프란첸이라는 사람이 위치를 확인하고 1961년 드디어 333년 만에 해저에서 인양에 성공한다. 냉수와 진흙 덕분에 보존 상태가 아주 우수해서 17세기 전함 중 거의 원형에 가깝다. 1990년 배 전체를 전시할 수 있는 특수 설계 건물을 지어 연간 100만 명이 다녀가는 명소다.
침몰 원인으로는 국왕의 지나친 욕심과 간섭이 문제였다. 건조 기간을 너무 서두른 것과 전문가도 아닌 국왕의 정치적 압박, 설계변경, 경험 부족이 빚어낸 참사였다. 사주가 건축법을 위반해 가면서까지 증축했다가 무너진 우리나라 삼풍백화점 사고와 비슷하다. 얼마 전 북한의 5천 톤급 구축함 진수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보는 앞에서 배가 기울어져 망신을 당한 일도 그렇다.
바사호 건조를 3년 만에 너무 서둘렀던 것도 빨리빨리 문화가 안 좋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래서 스웨덴 사람들은 더 이상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다. 속도를 중시하는 문화가 아니라 신중함, 안전, 품질, 체계적 검증 절차 강화 문화가 생겼다.
우리나라는 ‘빨리빨리 문화’가 크게 이바지했다. 비록 삼풍백화점 참사와 성수대교 참사를 겪긴 했지만, 중동 건설에서 큰 장점으로 발휘되었다. 나도 중동 현장에 근무하면서 다음 날이면 건물 한 층이 올라가는 놀라운 시공 능력에 뿌듯했었다. 귀국 후 우리나라 도로 공사며, 건축 현장이 공사 중이긴 한데 진척이 없는 것을 보면 답답함을 느끼곤 했을 정도였다.
이번, 우리나라 대기업의 미국 현지 공장 건설에 투입된 한국인들이 대거 미국의 비자 단속 위반으로 구금된 사태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빨리빨리 문화와 편법이 한 원인일 수 있다. 미국 투자 협상 때 미리 비자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했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정신으로 융통성 있게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한 것까지는 좋은데, 취업 비자 문제 해결 없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
최근 한강의 르네상스를 열겠다며 출항한 한강 버스도 바사호처럼 너무 서두르다가 망신을 당한 예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조선 강국인데 한강 다니는 배 하나 제대로 못 만들어, 첫날부터 화장실 물이 역류하고. 이어서 기관 고장에 멈추더니, 결국 한 달 더 연습해 보고 출항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곧 한강이 얼어서 못 다닐 것이고, 몇 달 지나면 호기심도 없어져 흐지부지될 것 같다. 매사 탄탄한 준비가 우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