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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은 피었습니다

  • 기사입력 2020.11.21 20:32
  • 기자명 시인 이오장
▲ 이오장 시인  

 무궁화 꽃은 피었습니다 

                    구금섭 (1952년~)

 
바람 한 점 없는데도 추스리며
모퉁이 길목에
무궁화 꽃은 피었습니다
 
오랜 가뭄에 타들어가는
연한 잎 야금야금 갉아먹어도
무궁화 꽃은 피었습니다
 
화장한 얼굴을 개미 파리들이
귀찮게 간질대며 기어 다녀도
무궁화 꽃은 피었습니다
 
인적이 끊어진 지 오래고
가까이 다가서는 이 없어도
무궁화 꽃은 피었습니다

 
1882년 제물포조약에 따른 수신사로 선발된 박영효는 우리나라 최초의 태극기를 제작하여 일본으로 들어갔다. 나라의 상징을 만들어 외국에 조선을 알린 것이다. 이후 신라 때부터 나라꽃이라 불리던 무궁화를 조선의 나라꽃으로 논하게 되는데 1949년 해방 이후 정식으로 대통령 휘장 등에 사용하게 되므로 나라꽃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왕실에서는 이화 즉 자두나무꽃을 왕실의 문장으로 사용하여 사실상 나라꽃이었으나 서구문명이 들어오고 조선의 멸망으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변경된 것이다. 무궁화는 전국에 퍼져 끝없이 핀다는 의미로 무궁화란 이름을 가지게 된 꽃으로 윤치오의 애국가 재정 때 후렴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으로 쓰이게 되므로 확실한 나라꽃으로 지정되었으나 갖은 수난을 겪으며 민족의 혼을 일으켜 온 우리 겨레를 닮았다. 수많은 해충에 몸살을 앓아오면서도 굳건하게 의지를 잃지 않는 성질을 가진 꽃으로 우리와 애환을 함께한다. 구금섭 시인은 나라꽃의 고난에서 현 시국의 어려움을 읽었다. 수난에서도 굴하지 않고 피어나는 무궁화로 우리는 어떠한 고난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그렸다. 굴하지 않는 무궁화를 닮은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한다. 누구나 보는 꽃에서 꽃이 가진 의미와 성질을 찾아내고 그것을 독자의 애환을 지우고 희망을 품게 하는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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