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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左) 빵, 우(右) 물을 아시나요?

  • 기사입력 2021.06.21 15:29
  • 기자명 이석복
▲ 이석복(수필가, 차세대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한미연합사령부(CFC ROK/US)에서 연합사 부참모장(Deputy C/S) 겸 한국군 참모장 직책(육군 소장)을 맡게 되었다. 1965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후 많은 미국 군사교육과 한미연합군 부대근무를 통해서 경험했던 실수를 후배 장교들에게는 되풀이 시키지 말아야 하겠다는 사명감을 평소 갖고 있었는데 실천에 옮길 기회가 온 것이다.

그 당시를 돌이켜 보면 그렇게 많은 부대를 옮겨 다녔지만 전입이전에 그 부대를 소개받고 부임했던 일이 고급 지휘관 때를 제외하고 거의 없었다. 더욱이 언어가 다른 미군들과 함께 근무를 해야하는 한미연합부대는 부대소개의 필요성이 더 절실한데도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 군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인사참모부장(해군 준장)에게 한미연합사에 전입하는 모든 장병들이 근무에 필요한 연합근무관련 기본적인 정보를 총망라한 『전입 장병안내서』를 제작해서 전입 전에 숙지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지시하였다. 이 안내서가 한국군 장병들에게 한미연합군 부대에 근무하는 자긍심을 갖게 하며, 부임 후 그들의 임무수행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줄이고, 조기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았다.

  초안(draft)을 검토하면서 부대 역사(Unit History)는 물론 사령관의 지휘철학과 각종 근무제도, 여러 연합연습 개요, 복지시설 안내 및 미군과의 근무생활시 유의사항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부분까지 소홀함이 없도록 했다. 물론 곤혹스러웠던 나의 실수담(失手談)이 반영된 것은 물론 이었다. 다소 유치한 것 같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기에 몇 가지 예를 소개한다.

  첫째로, 미국 국방대학원(워싱턴 D.C 소재) 유학시절에 한국여성을 부인으로 맞은 미군 대령급 부부들 10여 쌍이 우리 부부를 만찬에 초대한 일이 있었다. 우선 미국 고급장교들과 결혼한 한국 여성들이 생각 외로 많아서 놀라기도 하였다. 만찬에서 미군장교들은 한국부인에 관한 자랑을 침이 마르도록 하는 것이 한국남자들에게는 낯선 대화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한국부인과 한국말로 대화 중에 무심결에 악의없이 ‘미국놈들’이란 말을 사용했다. 그러자 그 부인은 정색을 하며 “이 대령님, 점잖으신 분이신데 그런 품위없는 말을 하시죠?”라고 하면서 미군장교들도 다 알아들으니 주의하시는 게 좋겠다는 충고를 해주었다. 정말 민망스러웠던 추억이다. 한국에 근무하는 미군 장병들도 그 정도 한국말은 다 알아듣기에 비록 악의로 하는 말이 아니라도 ‘미국놈’, ‘양놈’, ‘깜둥이’ 등의 깔보는 듯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둘째로, 한•미 연합사에 근무하는 간부들은 미군들과 공적 또는 사적으로 같이 식사하는 경우가 잦다. 양식을 하는 경우 통상 식탁이 빽빽해서 어느 빵(bread)이 내 것이고, 어느 물(water)이 내 것인지 혼동해서 실례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미국 식사 예법은 본인을 중심으로 좌측에 빵 접시를 놓고, 우측에 물 잔을 두게 되므로 이를 쉽게 익히게 하기위해 고안한 요령이 ‘좌(左)빵, 우(右)물’ 이란 공식이었다. 좀 우습지만 초보자에게는 식탁에서 ‘좌빵우물’은 유용한 공식이다. 지금도 양식식당에 가면 ‘좌빵우물’의 공식대로 실수없이 지내고 있다.

  셋째로, 미군들은 영내에서 군대예절이 한국군 못지않게 엄격한데 상대국 군(軍)의 계급장이 낯설어서 결례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가 준장(BG) 일 때 한 번은 미군 중령(LTC)이 빤히 쳐다보면서 경례도 하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더니 몇 발자국 지나갔다가 돌아와서 정중히 사과하는 것 이었다. 오히려 내가 당황스럽게 인사를 받았는데 그는 한국군 소령(Major)이 예의없이 경례를 안했다고 생각했었다는 것이다. 멀리서 보거나 다소 어두운 조명에서 급히 지나치다보면 한국군의 준장 계급장과 소령 계급장을 얼핏 혼돈스러울 수도 있었기에 발생한 해프닝이었다. 반대로 우리 한국군이 미국군 육·해·공·해병대의 각각 다른 계급장과 호칭에 대하여 혼선을 일으키는 경우도 허다했다. 

  넷째로, 내가 중령 때 한미야전군사령부 포병부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당시 우리 연합포병부는 화포로 발사하는 전술 핵폭탄에 대한 총책임 부서였다. 내가 비록 직책이 정보·작전과장이었지만 미군의 핵관련 비밀문서고는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포병부 핵 비밀문서고의 관리책임자가 미군 상사였다. 나는 계획적으로 술자리를 갖고 그를 만취상태로 만들어 몇 가지 궁금한 핵에 관한 내용을 질문했지만 그는 끝내 예의를 잃지 않으면서도 답변을 회피했다. 미군의 철저한 보안준수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솔직히 부러웠다. 한미군 간 비밀관리체계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존중해 주면서 우리가 자칫 실수하지 않도록 더욱 주의가 필요했다.

이외에도 사례는 많지만 줄이고자 한다. 이러한 실수담이 승화되어 한미연합사의 『전입 장병안내서』가 완성되었고, 한국군에도 소개되어 한국군 특성에 맞게 활용되는 부대가 늘어났다는 후문도 들었다. 우리 국군의 수준이 계속 발전하고 있었지만 최근 연합연습도 제대로 하지않고 군통수권자에 의해 주적(主敵)개념도 없어졌다니 무너져 내리는 군의 기강(紀綱)과 사기(士氣)가 여간 걱정이 아니다. 그래서 오래 전 한미연합사 근무 할 때 심혈을 기우려 후배 장병들을 지도하던 시절의 생각이 떠오르는가 보다. 평시에 흘린 땀방울 만큼 전시에 피를 적게 흘리는 것이며, 강한 정신전력 만이 국군의 사명을 완수 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후배들이 잊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이 노병(老兵)의 간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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