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일본의 반격

아라우의 후예(14회)

  • 기사입력 2021.11.19 22:10
  • 기자명 이 철원 전 아라우 파병부대장
▲ 초등학교 교사 초청 행사

아라우부대가 초등학교 복구공사를 하면서 일장기를 태극기로 바꾸고 있다’라는 조선일보의 기사(2014. 6. 18.)로 인해 일본에서는 일부 우익단체가 들고 일어났다. 이러한 사실은 곧바로 필리핀 주재 일본대사관으로 전해졌고 이에 주필리핀 일본 대사관과 JICA(일본국제협력기구)에서 여러 차례의 대책회의가 실시되었다고 한다. 일본은 여러 경로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초등학교에 지워진 ‘일장기를 다시 그려 넣을 것’을 우리에게 요청했다. 주필리핀 일본대사관은 한국대사관에 항의를 하였으며 필리핀 교육부와 국방부에게도 비공식적으로 강하게 불만을 제기했다고 한다.

JICA는 “레이테주와 지방 교육청에 일본의 후원에 의해 10여 년 전에 복구한 학교를 한국이 복구하면서 일장기를 지운다면 레이테주 교육청에 대한 재정지원을 중단할 것”이라는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아라우부대가 복구하기로 계획한 공공시설을 찾아가 일본이 새로운 시설을 건축해줄 것을 약속하며 건물 앞에 JICA가 복구할 것이라는 간판을 세워놓도록 하였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 복구하지 못하여 공공기관에서 다시 아라우부대에 복구를 요청하는 일이 발생했다. 또한 아라우부대 페이스북에 “왜 일장기를 지우냐?”라고 욕설을 남기기도 했으며 우리 주변을 맴돌면서 부대 활동 모습을 촬영하는 등 계획적이고 집단적으로 우리를 공격해 왔다. 나는 일부 일본인들이 찾아와 ‘재일교포’라고 하면서 “한국군이 무슨 활동을 하는지 알고 싶다”라며 설명을 요청했으나 모두 거절했다.

7월 초에는 한 초등학교 교장이 찾아와서 “자기 학교에 그린 태극기를 다른 건물에 그리고 일장기로 복원해 달라”라고 요청했다. 이는 JICA가 레이테주 교육청에 압력을 넣어, 교육감이 학교장에게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학교장에게 “아라우부대가 학교 전체를 복구해 학교장과 교사들에게 기증했다. 따라서 소유권이 학교장에게 있으므로 학교장이 알아서 하기 바랍니다.”라고 했으며 주행정관에게는 JICA에게 전하라고 하면서 “우리가 그린 태극기에 손을 대면 포크레인으로 우리가 복구한 학교를 전부 부셔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렇게 강하게 대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일장기 문제가 잘못되면 이상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라는 심각성을 인식하여 필리핀군 대표와 레이테주지사를 불러 대책회의를 실시했다. 이들은 “일본의 주장이 상식에 어긋나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하였지만, 우리는 필리핀 주정부의 공식의견이 필요했다. 따라서 세 기관이 토의한 결과 “표기문제는 필리핀 측에서 결정할 사항이며 필리핀과 일본이 협의할 문제이므로 한국군은 대응하지 않는다”라는 의견일치를 보았다. 이후 나는 일본의 직간접적인 항의에 일체 반응하지 않았다. 

그 대신 초등학교 교사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기 위해 복구한 학교와 복구 예정인 학교의 교사들을 부대로 초청하여 부대활동 동영상 시청과 주둔지 시설, 직업학교 등을 소개하였고 개인별로 선물을 주었다. 또한 이미 복구된 학교도 방문하여 학교별로 노트북을 3~5대씩 증정했으며 수시로 애프터서비스를 실시하여 전등이 고장 나거나 유리가 깨져도 수리하고 각종 학교행사에 참석했다.

그 결과 일부 학교는 허물어진 교실 벽의 일장기를 직접 지우고 우리에게 학교를 복구해도 좋다는 서한을 보내왔다. 왜냐하면 일본이 “일장기가 그려져 있는 학교를 복구하려면 일장기를 다시 그려 놓으라”라고 요구했기에 우리는 “벽에 일장기가 있는 학교는 복구하지 않고 없는 학교만을 복구하겠다”고 공표를 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부서진 학교를 보수하지도 않으면서 한국군이 보수하지도 못하게 하여 학교 관계자들의 불만이 엄청났다.

▲ 태극기와 일장기를 병행 표기한 초등학교 

이후 나는 일본의 반응과 관계없이 계획된 초등학교 복구를 계속하였고 더 이상 일본이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8월 말에 필리핀군 재해복구 TF장이 “상부에서 계속적인 압력이 내려온다”라고 하면서 신문에 보도되어 문제가 된 바라스 초등학교에 태극기와 일장기를 병행 표기하는 방안을 제안하였다. 이에 나는 필리핀군의 난처한 입장을 고려하여 제안을 수용하기로 하면서 두 가지를 요구했다.

첫째, 일본은 학교 전체가 아닌 교실 하나만 복구했으므로 This school이 아닌 This school building으로 표기하고 복구시기를 명시한다. 둘째, 일장기가 그려져 있는 학교들 중 UN, NGO와 필리핀 인사 등에 의해서 복구된 학교도 일장기를 지우고 해당 후원기관의 로고를 표기했는데 한국군에게 요구한 대로 똑같이 양분하여 표기한다. 

또 한국대사관을 통하여 일본대사관에 우리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통보했다. 첫째, 일장기가 한국군이 복구한 학교 건물에서 제거된 것에 대한 일본의 불편한 입장은 이해가 되지만, 건물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표기들이 제거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기존의 표기를 다시 복구시키는 것은 아라우부대의 몫이 아니다. 둘째, 한국 측에 일본 국기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상식에 벗어난다. 왜냐하면 어떤 표식

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주인(필리핀)의 결정사항이다. 아라우 부대는 필리핀군과 학교의 동의와 지원 하에 태극기와 필리핀 기를 동시에 표기한 것이다. 더욱이 2004년도에 일본이 복구한 학교가 이번 태풍에 한국군을 포함한 여러 기관 및 단체에서 다시 복구하였는데 유독 한국군에게만 항의를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셋째, 필리핀에서 한국과 일본이 국기를 가지고 경쟁하는 모습은 한일관계 발전에 저해가 되며 필리핀 정부를 곤란하게 만듦으로 한-일, 한-필, 필-일의 3국 협력관계를 고려하여 우리는 조선일보에 보도되어 문제가 된 학교에 양국 국기를 표기하는 방안을 수용한다.

11월 중순 철수하기 전에 레이테 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JICA 대표를 만나자고 연락하였는데 입장이 난처하고 한국군이 겁이 나서 그런지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 대신 마닐라의 JICA 본부에서 대표 2명이 부대를 방문하였다. 나는 이들에게 부대활동을 소개하고 일장기 문제에 대한 소견을 전달했다.

“한국과 일본은 이웃 나라이다. 양국이 필리핀의 태풍피해 복구를 지원하면서 양국 간에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초등학교 등 모든 건물을 복구 시에 필리핀의 관례를 따랐고 필리핀군과 학교의 협의 하에 합의각서를 작성하여 진행했다. 양국 국기의 표기문제와 관련하여 사전에 JICA에서 우리에게 공식적으로 의견 표명을 했다면 어려움이 없었을 텐데 이런 소동이 벌어진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고 언급하자, 이에 JICA 대표는 “한국이 언론에만 보도하지 않았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사항인데 언론에 보도되어 문제가 발생했다”라고 했다.

우리가 복구한 학교에 태극기를 그리는 것에 대한 일본의 거센 항의를 경험하면서 문득 “독도 문제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자기들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무섭게 조직적으로 대응해 왔으며, 우리의 방법이 정당하였지만 저들의 집요한 요구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독도도 당연히 우리의 영토라 생각하고 대응하지 않는다면 ‘눈을 뜨고도 코 베이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일장기 소동과 관련하여 한국으로부터 내가 들은 말은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라는 것이었다. 

▲ 복구공사내역을 돌판에 새김 

나는 벽면에 페인트로 그린 태극기가 몇 년이 지나면 지워지는 것이 우려스러워서 철수하기 직전에 우리가 복구한 건물 중 37개의 학교에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도록 돌판에 한국군과 필리핀군이 연합하여 복구했다는 기록을 남겨 놓았다. 어찌되었든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가 복구한 초등학교에 일장기를 태극기로 바꾸는 작업이 우리 언론에 보도만 되지 않았으면 계획한 대로 더 많은 초등학교에 일장기를 지우고 태극기를 그릴 수 있었는데 말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정사회
경제정의
정치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