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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레떼루

  • 기사입력 2022.02.22 10:40
  • 기자명 이희영
▲ 방산 이희영 작가 

 나는 육사를 나왔다. 내 이마에는 언제나 육사 레떼루(라벨)를 붙이고 다닌다. 내 어깨에는 대령이라는 계급장이 붙어 있다. 육사 레떼루와 어깨 위의 계급장은 나의 힘의 원천이었다. 발걸음 하나 띨 때마다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이 레떼루 때문에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왔다. 이 덕분에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최대의 인정을 받았다. 그것이 레떼루의 힘이었다.

 육사에는 다른 대학과는 달리 3금 제도가 있고, 명예 제도라는 게 있다. 그 당시 술과 담배와 여자는 금기로 걸리면 용서 없이 퇴학당했다. 특히 정직과 거짓은 명예 제도의 근본이다. 이에 양심 보고라는 게 있다. 거짓을 하거나 비행을 했을 때 명예위원장 생도(4학년)에게 양심 보고를 하면 사해지는 제도다. 

 시험 볼 때 커닝을 하거나 교반장 생도의 시험 끝! 하고 구령하면 바로 연필을 놔야 한다. 그래도 연필 안 놓고 쓰게 되면 명예위원회에 회부돼 처벌받게 된다. 이런 엄격한 명예 제도에 의해 많은 생도가 퇴교를 당했다.

 입교하면 기초군사훈련을 받는다. 4학년들이 교관이 돼 후배를 훈련시키는데 1, 2월 한겨울에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 하루는 구대장 생도가 50여 m 떨어진 둥근 소각장을 우에서 좌로 돌아오라는 선착순을 시켰다. 선착순에서 나는 늘 꼴찌였다. 놀다 들어간 나는 입교 전날까지 술과 담배에 절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르르 몰려서 도는데 어떤 한 생도가 돌지 않고 들어왔다. 그것이 구대장 생도의 눈에 띄었다.

 구대장 생도는 명예 위원장 생도였다. 돌지 않고 온 생도는 손을 들라 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몇 번을 들라 해도 안 들었다. 몹시 화가 난 구대장 생도는 내일 아침까지 나오지 않으면 전원을 가만두지 않겠다 했다. 다음 날 아침 집합한 가운데 구대장 생도는 전부 눈을 감으라 하고 돌지 않은 생도는 손을 들라 했다. 침묵이 흘렀다. 조용하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순간 나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구대장 생도는 손든 생도는 창고로 오고 나머지는 해산하라 했다.

 창고로 갔다. 야구방망이, 야전침대 봉, 삽자루 등을 들고 살벌한 분위기의 구대장 및 분대장 생도들이 '너 이 새끼 엎드려!' 엎드리려는 순간 다른 분대장 생도가 뛰어 들어오면서 '아니야! 이놈 아니야! 이놈은 제일 뒤에 뛰는 놈이라 내가 알아!' 그래서 구사일생 살았다. 다음날 구대장 생도는 '귀관 동기생 중에 대신 손든 생도가 있다.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하겠다. 앞으론 절대 명예를 저버리지 마라! 해산!'

 그 구대장 생도는 '정경화 생도'다. 그는 임관해서 최전선 부대로 배치되었다. 그 곳에서 대위로 중대장 재임 중에 부하가 지뢰를 밟자 부하를 밀치고 자기의 몸으로 지뢰를 덮쳤다. 그는 부하를 살리고 죽었다. 그 후 그가 근무했던 7사단 백암산 자락에 '경화공원'이 조성되어 매년 그의 고귀한 넋을 기리고자 추모 행사가 열린다.

 생도 기초군사훈련 때 구대원은 40명이었다. 39명은 돌았는데 1명이 돌지 않았고 손도 들지 않았다. 그 생도가 누군지는 아직도 모른다. 졸업을 했는지 중도에 퇴교를 했는지도 모른다. 육사 4년 내내 아무리 엄격하고 철저한 교육을 시켜도 나쁜 본성을 숨기고 졸업하는 생도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도는 졸업 후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일이다. 

 지난해 조동연이라는 30년 후배가 야당 후보 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영입된 일이 있었다. 조동연이 남편을 속이고 혼외자를 친아들로 키워 온 사실이 탄로가 났다. 이런 사건을 보면서 대선배로서 비통함과 비애를 느꼈다. 생도 때 걸러내지 못한 한 생도로 인해서 육사의 명예 정신이 땅에 내동댕이쳐버렸다. 

 선배로서 마치 내가 죄진 양 부끄럽다. 오늘따라 항상 명예를 말씀하셨던 올곧은 정경화 선배님 생각이 많이 난다. 숭고하고 고귀한 넋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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