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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 큰 의미를 담은 궁궐의 ‘금천교’1

문화재 : (사적) 경복궁 영제교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청와대로 1 (세종로)
문화재 : (보물) 창덕궁 금천교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0 (와룡동, 창덕궁)

  • 기사입력 2022.02.22 22:34
  • 기자명 정진해 문화재 전문 대기자
▲ 경복궁 영제교

한양도성 안에는 다섯 곳의 궁궐이 있다. 정궁인 경복궁과 별궁인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이다. 경복궁에는 흥례문에서 근정문 사이의 금천교인 영제교, 창덕궁의 금천교, 창경궁의 옥천교, 덕수궁 금천교,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2001년에 발견된 석조물로 복원한 경희궁의 금천교가 있다. 금천교는 금천을 건너기 위해 세운 석교이다. 금천은 풍수지리적인 이유와 외부와의 경계를 의미하는 궁궐의 정문과 중문 사이에 둔 인공 개천이다.

경복궁의 광화문을 들어서면 광장 앞에 또 하나의 중문인 흥례문, 안쪽의 근정문 사이에 금천교인 영제교가 자리하고 있다. 영제교 아래 물 흐름은 나라의 국운이 맑고 비단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 큰 의미를 담은 다리이다. 임금이 거처하고 장사를 돌보는 입구에 다리는 누구나 건널 수 없었던 다리이다. 다리의 본래 취지는 신하는 이 다리부터 몸가짐을 바로 하고 들어오라는 의미와 궁궐에 침입하는 다양한 악귀를 막아 신성한 공간에서 나라의 정사를 보라는 의미를 담아 만든 다리이다.

영제교는 처음 경복궁을 창건할 때인 1395년(태조 4년) 9월에 만들어졌으나, 처음에는 교명도 없이 석교라고만 불러왔었다. 백악산에서 발원한 물이 청계천으로 흘러 들어갈 때 그 물길 위에 석교를 놓았었는데, 태종 대에 와서 비로소 개천을 파서 금천교를 만들었고, 세종대에 와서 ‘영제교’라는 교명을 갖게 되었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은 폐허가 되었으나 돌을 다듬어 만든 영제교는 270년간 방치되었다가 1865년(고종 2)에 경복궁이 복원되면서 영제교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영제교 아래 흐르는 금천은 백악산에서 발원하여 중학천으로 흘러들던 ‘대온암천’이다. 이 물 줄기는 현재 청와대 경내에서 두 개의 물줄기로 나뉘어 졌는데 하나는 궁 밖을 돌아서 궁 안으로 들어와 금천이 되고, 또 한 물줄기는 궁의 북쪽 정방향 끝에 있는 수문을 통해 궁으로 들어와 향원지와 경회루 연못을 채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금천과 물줄기는 대부분 흔적을 감추었고, 영제교를 복원하면서 다시 금천을 팠지만,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의 영역만 복원했다.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으며, 비가 온 뒤에 영제교의 금천에는 물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빗물이 고이거나 관리소에서 물을 채운 것이다. 

영제교는 일제강점기로 인한 피해는 계속됐다. 1915년 ‘시정 5주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가 경복궁에서 열리면서 흥례문과 주변 행각이 모두 흘렸고 공진회 개최 1년 뒤인 1916년, 영제교가 있던 자리가 조선총독부 청사가 지어지면서 8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선총독부 박물관 근처에 부재를 모아 두었고, 1950년대에 임시로 수정전 앞에 설치했다가 1970년대 건춘문 안쪽과 근정전 사이로 옮겨 놓았다.

▲ 경복궁 영제교의  엄지기둥의 이무기들

영제교는 아치가 원래 두 개였다. 그러나 계속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옮겨 다니면서 아치는 1개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원래의 위치에 복원하면서 2개의 아치로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석교의 너비는 10m, 길이는 13m에 이르고 다리 위 밟고 가는 상판에는 귀틀석과 청판석을 교대로 배열해 3개의 길을 만들었다. 가운데 길은 왕이 다닐 수 있는 어도로 근정문의 가운데 문과 근정전 월대로 이어진 길이다. 어도는 좌우의 신하들이 다니는 길보다 약간 높게 하여 그 위용이 더해졌다. 다리의 좌우에는 돌난간을 설치하였다. 각각 난간 양쪽 끝에는 이무기를 조각한 엄지기둥을 세우고 그사이마다 13개의 동자석을 세우고 그 위에 8각형의 난간두겁을 올려 고정했다. 동자석의 위아래는 연잎 문양을 새기고 가운데는 잘록하게 북을 맨 모양의 염주문과 환 무늬를 새겼다.

다리 아랫부분에 무지개 모양의 아치를 2개 만들고 윗부분 돌과 아치 돌 사이의 공간은 판축다짐으로 채웠다. 아치를 받치는 홍예기석은 2단으로 쌓고 그 위에 7개의 홍예돌을 무지개 모양으로 쌓았다. 가운데 선단석 위의 부형무사석은 1개를 두고 좌우의 삼각형 모양의 무사석은 4단을, 그 위에 난간석이 올려져 있다. 

▲ 경복궁 영제교 천록  

영제교 옆 금천 축대 사방에 각각 1마리의 서수상(천록)을 배치했다. 천록은 온몸에 비늘로 덮여있고 정수리에 3가닥의 뿔이 달려있으며, 겨드랑이와 뒷 다리 부분에 갈기가 나 있다. 이곳에 천록을 배치한 까닭은 요사스럽고 나쁜 것을 물리치는 벽사의 능력을 갖춘 상상의 동물이다. 외부의 잡귀를 막는 상징적 경계인 금천에 사악하고 나쁜 것을 물리치는 동물인 천록을 둠으로써 궁궐의 신성함을 더욱 돋보이려 했다. 그래서 4마리의 천록이 모두 금천 바닥을 향해 감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서쪽의 천록은 혀를 빼고 있는 모습이 매우 익살스러워 보인다.

▲ 창덕궁 금천교

창덕궁의 금천교는 돈화문과 진선문 사이를 지나가는 금천 위에 설치돼 있다. 창덕궁은 1406년에 지어졌으나, 금천교는 그 후 6년 뒤인 1411년(태종 11) 3월에 만들어졌다. 화재와 전란 등으로 수모를 겪었지만, 온전히 남아 있기는 하나 1907년 순종이 창덕궁으로 이어 했을 때 차량 통행이 불편함을 이유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약간 이동했으며, 다리는 처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서울의 석교 중에 가장 오래됐다.

금천교 아래로 흐르는 물은 북악산에서 발원한 ‘북영천’이다. 원래는 지금의 청계 3가 부근에서 청계천으로 바로 합류했으나, 1421년(세종 3년)에 원래 종로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던 회동천의 물길을, 범람을 이유로 동쪽의 옥류천과 만나게끔 바꾸면서 북영천 역시 회동천에 흘러들었다.

금천교의 너비는 12.5m, 길이는 12.9m로 5대 궁궐의 금천교 중에 가장 넓은데, 이것은 임금이 정식 행차를 할 때 맞도록 설정된 폭이다. 다리 상판은 귀틀석과 청판석을 교대로 배열하고 영제교처럼 3개의 돌길을 놓았고 가운데 어도는 좌우의 신하가 다니는 길보다 조금 높으며 영제교보다 그 폭도 넓다. 

다리 위에는 난간을 설치하기 위해 가장자리에 각각 6개의 돌기둥을 설치하고 그사이마다 8각의 돌을 다듬어 난간두겁을 설치했다. 돌기둥 중 동서 첫 번째 엄지기둥의 머리 장식은 복주의와 앙주의를 위아래로 새기고 가운데를 잘록하게 하고 염주문을 새겼다. 그 위에 서수를 조각하여 올렸고, 나머지 동자주에는 연화봉을 장식했다. 돌기둥마다 판석을 세웠는데. 판석은 하엽동자기둥 모양의 부조를 중심으로 구름 모양의 구멍을 2개씩 뚫었고 칸마다 동자주 좌우로 하엽동자기둥 모양을 투각했다.

▲ 창덕궁 금천교 천록 머리 

엄지기둥을 제외한 나머지 기둥 밑에는, 멍엣돌에서 튀어나온 돌로 천록 머리 상을 조각해서 놓았다. 천록은 중국에서 전해오는 공상적인 동물로, 노루와 비슷한 외모를 하고, 머리에 뿔이 있으며, 뿔이 하나인 것이 천록, 뿔이 두 개인 것이 벽사라 한다. 천록은 해태와 비슷한데, 해태는 갈기가 발달해 있고 송곳니가 치솟아 있다는 면이 비늘이 덮여있는 천록과 다르고, 노루나 사슴과 비슷한 천록은 사자 모양을 한 신예와 구분이 된다. <후한서>에 천록과 하마를 주조하여 궁중 문 앞에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요사스럽고 나쁜 것을 물리치는 벽사의 능력을 갖췄고 한다. 즉, 외부의 잡귀를 막는 상징적 경계인 금천에 사악하고 나쁜 것을 물리치는 동물인 천록을 둠으로써 궁궐의 신성함을 더욱 돋보이려 했다.

▲ 창덕궁 금천교 잠자리무사 

하천 바닥의 중앙과 물가에 놓인 기반석을 토대로 홍예를 2개 튼 형식으로 물가의 축대는 부벽(扶壁) 구실을 하고 있으며, 홍예 위에는 장대석 모양의 멍에돌을 얹었다. 아치를 받치는 돌을 선단석이라 하는데, 선단석은 1단으로 되어있으며 금천 바닥 밑에 박혀 있으나, 그중 반 단은 밖으로 길게 빼놓았다. 그리고 선단석 밑에 지대석을 두어 더욱더 튼튼하게 했다.

▲ 창덕궁 금천교 해태상  

그리고 선단석 위, 아치가 서로 만나는 부분에 잠자리무사로 불리는 도깨비 얼굴이 새겨진 역삼각형 석면을 배치했고, 그 앞에 홍예 기반석 위에 돌로 만든 동물상이 앞을 주시하고 있는데, 남쪽에 해태상, 북쪽엔 거북이 상 등 환조로  만든 동물상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금천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 창덕궁 금천교 거북이상

금천교는 궁궐의 위엄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각상과 아름다운 문양, 견고하고 장중한 축조 기술 등이 돋보이는 이중 홍예교로서 역사적, 예술적, 건축적 가치가 뛰어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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