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마에 가시 문신

  • 기사입력 2022.04.15 09:35
  • 최종수정 2024.02.03 15:21
  • 기자명 김희재 작가
▲ 김 희재 (수필가, 한국어 교육 전문가)  

 핀란드 헬싱키에서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가는 배를 타는 선착장 옆에 커다란 풍물시장이 있었다. 수수해 보이는 대통령 관저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넓은 공터였다. 길게 쳐 놓은 차일 밑에 갖가지 물건이 잔뜩 쌓여 있었다. 과일이며 채소며 꽃, 공예품에 미술품까지 없는 게 없었다. 여느 벼룩시장과는 달리 깨끗하게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쓸 만한 것이 꽤 많았고, 에누리는 한 푼도 해주지 않았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북유럽을 여행하는 중이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륙 횡단 기차를 타고 핀란드까지 왔다. 여기서부터는 크루즈를 타고 스웨덴으로 가려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승선(乘船)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었다.

혼자 시장 구경을 하던 나는 어떤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석고로 만든 공예품을 진열하고 있었다. 아래위로 검은 옷에 검은 모자를 쓰고 이마에 검은 띠까지 두르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가시 면류관 모양의 문신(文身)이었다. 그녀의 차림새며 이마의 문신이 예사롭지 않았다. 현대판 주홍글씨인지, 어떤 심오한 의미인지 궁금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내 시선이 따가웠는지 그녀도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손으로 내 이마를 가리켰다. 그러자 자기 이마를 쓸어내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틈에 얼른 말을 붙였다.

  “예수를 닮기 원하셨습니까?”

  “아니요.” 

  “그런데 이마에는 왜 그렇게.”

  “아, 이거 말입니까? 이건 종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인데요.”

  © 핀란드에서 만난 가시문신 여인

  

이마에 새겨 놓은 가시관이 종교적 의미가 아니라는 단호한 대답에 나는 당황했다. 내심 광신도(狂信徒)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었는데 허방을 짚었나 보다. 그녀는 할 말을 잃고 허둥대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저는 그 문신이 예수님의 가시 면류관인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다른 뜻이 있답니다.”

그녀가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나도 그녀의 깊은 눈을 바라보았다. 한참 그렇게 바라보고 있자니 그 가시가 내 마음에 와서 박혔다. 이미 그림으로 다 표현해 놓았는데 굳이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그녀의 문신에서 순탄하지 못했던 삶의 고통과 절규가 느껴졌다. 굳이 사연을 캐묻고자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얼른 시선을 피하고 그 자리를 떠나려는데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말투였다.

 “내 나이가 어느 시점에 다다랐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 인생 이걸로 족해. 앞으론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을 거야. 그 누구에게 지배당하지도, 고통을 강요당하지도 않을 거야. 정말로 수도 없이 나 자신을 향해 이렇게 외쳤답니다. 내 인생 이것으로 충분해!”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귀가 아닌 눈으로 들었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대로 가슴에 와서 아프게 박혔다. 그녀 이마에 두른 뾰족한 검은 가시가 억양과 표정에 따라 움직였다. 처음엔 그리 낯설고 이상하던 문신도 차츰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누구에게나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갈 흉터 하나쯤은 다 있다. 피부에 새겨 공개적으로 표현했느냐, 마음에 새겨 두고 자기만 꺼내 보느냐만 다를 뿐이지. 

그녀는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단호하고 강인한 여성이었다. 겉모습보다 속이 훨씬 더 성숙해 보였다. 남보다 일찍 많은 일을 겪었지만, 이렇게 흔들림 없이 일상을 꾸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언제 왔는지, 젊은 아가씨가 익숙한 솜씨로 그녀가 하던 일을 이어서 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나가는 말로 가족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럼요. 가족이 있다마다요. 여기 이렇게 딸이랑 같이 살고 있답니다.”

보란 듯이 딸의 어깨를 과장되게 끌어안으며 활짝 웃었다. 어린 딸을 지켜야 한다는 모성본능이 그녀를 여기까지 오게 한 모양이다.

▲ 가시문신 여인의 가게 

배를 타러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고단함이 배어나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꽉 잡았다. 딱딱하고 차가운 손이었다. 이마에 새긴 가시 문신은 손바닥에도 단단히 박혀 있었다. 그 거친 촉감이 내게 긴 여운을 남겼다. 작별이 아쉬웠다. 

  “더 바랄 것도 기대할 것도 없는 인생. 내 삶은 이로써 충분합니다.”

멀어지는 내 뒤통수에 대고 그녀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번엔 그 말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손만 위로 흔들어 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더 바랄 게 무엇이겠나. 부디 남은 시간은 더 자족(自足)하며, 날마다 행복하게 잘 사시게. 친구!” 

이건 내 입을 빌려서 그녀가 내게 해주는 말이기도 했다. 이름도 모르는 그녀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내 친구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정사회
경제정의
정치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