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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마을의 천사

[연재 31회]

  • 기사입력 2022.04.30 01:01
  • 기자명 이철원 전 아라우 파병부대장

아라우부대 차량 중에는 5톤 적재능력의 쓰레기차가 있다. 쓰레기차를 위병소 앞 공터에 세워 놓고 병력들이 쓰레기를 버리면 거의 매일 쓰레기장 하치장으로 적재함을 비우러 가야 했다. 그런데 부대 앞 쓰레기차 주변이 적재함에서 쓸 만한 물건을 찾거나 쓰레기를 버리기 전에 가로채는 주민들로 항상 붐볐고 쓰레기를 다 헤쳐 놓으니 너무 지저분해졌다. 그래서 쓰레기차에 주민들이 일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위병소 근무자에게 이를 감독하도록 임무를 부여했다.

그러나 밤이 되면 아이들 두세 명이 항상 쓰레기차 적재함 안에 있었고 다가가서 소리 지르면 주변 풀숲으로 숨었다. 필리핀 경계병에게 아이들을 쫓으라고 하면 쫓는 시늉만 하는 것 같아 나중에 경찰연락관에게 확인을 시켜보니 “애들이 줍는 쓰레기 중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집으로 가져가고 옷, 신발 등은 필리핀 경계병에게 상납하고 있다”고 했다. 그 사실을 안 뒤로는 더 이상 쓰레기차를 뒤지는 아이들을 통제하지 않도록 했다.  

모아진 쓰레기는 타나완시 외곽에 있는 쓰레기 하치장에 버리는데 현지 쓰레기차에 비해 우리 쓰레기차는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멀리서 마을에 들어오는 우리 쓰레기차가 보이면 어른, 어린이 할 것 없이 30여 명의 주민들이 몰려들어서 쓰레기를 주워갔다. 이러한 쓰레기는 세 가지로 분류되었는데 첫 번째는 식빵, 계란 등 음식물 쓰레기로 먹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자리에서 주워서 먹었고 나머지는 돼지를 주기 위해 그릇에 담아 가지고 갔다. 둘째는 돈이 되는 것으로 PT병 등 플라스틱은 1kg에 5페소(1페소에 250원), 박스 등 종이류는 1kg에 3페소, 깡통은 1kg에 14페소였다. 셋째는 헌옷으로 티셔츠, 반 바지, 신발 등은 가져가서 입었으며 일부는 주민들 사이에서 거래 되었다. 6월 말에 1진이 철수하면서 부대원들이 입던 옷을 대부분 버렸는데 나중에 보니 쓰레기장 마을 주민들이 모자, 운동화까지 부대원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쓰레기차를 운전하는 김중사와 조중사는 쓰레기장 마을 주민들에게 는 천사와 같은 존재였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매일 음식을 챙겨다 주고 1주일 동안 병력이 먹고 남은 식빵을 모아 토요일에 토스트를 만들어 나누어 주었으며 가끔 사비를 털어 PX에서 과자와 음료수를 사다가 불쌍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러한 김중사를 마을 주민 들은 ‘엔젤 킴ʼ이라 부르고, 아이들을 잘 챙기고 좋아하는 조중사를 아이들은 ‘대디(아빠)ʼ라고 불렀다. 이들은 얘기한다. “우리들은 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도 항상 남과 비교하여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은 쓰레기장에서 더러운 쓰레기를 뒤져가면서도 표정이 너무 밝고, 항상 웃으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 을 배우게 된다고”

▲ ‘대디’ 조중사

어느 날 부단장이 “아이들이 쓰레기장 주변 작은 공터에 먼지도 날리고 비만 오면 흙탕물이 튀는 곳에서 코코넛 나무로 농구골대를 만들어 놓고 농구를 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 아프다”며 농구장을 만들어 줄 것을 건의했다. 나는 지금의 농구장이 위생상 너무 안 좋아 다른 장소에 설치해 주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쓰레기장 주변에 공공부지가 있어서 시장에게 요청하여 공사를 할 수 있었다. 드디어 11월 3 일 농구장이 완성되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마을 주민과 우리 부대원 간에 농구경기를 했으며 이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고 영화를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한두 사람에서 시작된 착한 마음과 선한 행동이 부대원 모두에게 확대되고 마을 전체 주민에게 행복감을 선사하게 되었다. 아마 부대원들은 한국에 돌아와 쓰레기차를 볼 때마다 쓰레기마을의 주민들과 어린이들의 해맑은 미소를 잊지 못할 것이며, 이를 계기로 또 다른 선행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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