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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혁명군” 창건 기념 ‘열병식 연설쇼’에 숨겨진 김정은의 속내

  • 기사입력 2022.05.06 18:23
  • 기자명 유판덕 객원캘럼니스트
▲북한 김정은 [연합뉴스]  

4월 25일은 1978년 2월 김일성이 자신의 항일 빨치산 활동 부각 및 정통성 강화 차원에서 1948년 2월 8일 창건한 인민군 창건일을 존재하지도 않았던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4.25)로 소급시켜 적용했던 날이다. 이를 김정은이 2018년 1월 22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인민군 창건일을 2월 8일로,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을 4월 25일로 되돌려 놓았다. 물론 ‘90년’이란 상징성이 있지만, 김정은은 자신이 할아버지 우상화 치적을 훼손하면서까지 바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에 대형 이벤트를 왜 벌였을까? 이번 ‘열병식 연설쇼’에 숨겨둔 김정은의 속내를 ‘열병식 개최 의미와 그 의도, 대원수 군복 착용의 의미, 항일혁명전통 및 반제국주의 강조 저의, 핵무기 선제사용 천명 의도’ 등 네 가지로 나눠 들춰보고자 한다. 

첫째, 김정은은 왜 ‘영원한 주석’ 김일성 탄생 110주년인 4월 15일이 아닌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일에 열병식을 했을까? 이는 조부 김일성의 전유물인 ‘항일혁명전통’을 김정은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 우상화하는 데 이용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69년 전 원수 군복을 착용한 김일성의 모습과 흡사한 연출로 북한 주민과 북한군의 의식 속에 이미지 오버레이(overlay)를 의도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 김정은으로 하여금 대원수 계급장이 부착된 군복을 입고 김일성의 전유물인 ‘항일혁명전통’까지 자신의 권위 강화에 이용하게 한 속 사정은 무엇일까?

둘째, 김정은은 왜 스스로 ‘대원수’ 계급장을 달았을까? 이날 김정은이 입은 군복 계급장은 공화국 대원수 계급장이었다. 아버지 김정일은 사망(2011.12.17.) 후인 2012년 2월 14일 공화국 대원수로 추서되었다. 그런데 김정은은 집권 11년 차, 원수가 된 후 약 10년(2012.7.17.) 만에 셀프 대원수로 진급한 것이다. 이는 김정은이 아버지의 권위를 뛰어넘는 더 높고 강력한 권위가 필요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도 무엇이 김정은으로 하여금 이 같은 조급증을 갖게 했는지 궁금증을 자아 낸다.

셋째, 왜 진부(陳腐)한 ‘항일혁명전통’과 반제국주의를 강조했을까? 북한에서 ‘반제국주의’와 ‘항일혁명전통’은 북한체제를 정당화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북한은 주체사상의 뿌리이자 군사국가의 사상이론적 기초가 되는 ‘총대철학’ ‘총대중시사상’이 ‘김형직(김일성의 父)-김일성의 항일정신’으로부터 비롯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항일혁명전통’은 식민시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였고 오늘날에는 미국에 대항하는 반제국주의 사상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듯 북한체제의 존재는 반제국주의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체제의 계승과 영속을 위해서는 지속하여 제국주의란 제물(祭物)이 필요하고, 그래서 김정은이 이를 강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넷째, 왜 김정은 자신의 입으로 ‘핵무기 선제사용’을 공식화했을까? 많은 국내 언론들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새로운 언급처럼 소동을 피웠다. 하지만 이는 3차 핵실험(2013.2.12) 직전 최고인민회의에서 제정(2013.4.1)했다는 이른바 ‘핵보유국법령’에도 암시된 내용이며, 비공식적으로는 수시로 핵 선제공격을 위협해 왔다. 이처럼 북한의 주장과 달리 북한 핵무기는 처음부터 미국의 공격에 대한 ‘자위적 수단’이라기보다 남한에 대한 ‘직·간접적인 침략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20년 넘게 국제제재로 인한 고통 속에서도 핵 개발 및 고도화를 지속해 왔고, 최근에는 다양한 전술핵 투발 수단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북한군 화생방 교범에도 남한 전·후방에 산재된 전략·전술적 표적에 대한 공격·방어 간 핵무기사용 시기 및 권한 위임, 핵무기 크기 및 폭발 고도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전시에 핵무기사용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앞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열병식 연설쇼’에 숨겨놓은 김정은의 속내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정리할 수 있다. 먼저 대내적인 것으로, 아버지 김정일을 능가하고 조부 김일성의 권위와 대등한 더 높고 강력한 권위와 우상화가 필요할 정도로 자신의 지위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민군대 내 신세대를 의식하여 “백두에서 뿌리내린 위대한 혁명사상과 정신의 바통을 굳세게 계승해 나가는 것을 군 건설, 반제투쟁의 초미의 전략적 과업”임을 강조한 데서 김정은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김정은은 2020년 10월 노동당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도 인민을 추켜세우며 ‘읍소(泣訴) 쇼’를 벌렸고, 2021년 4월 제6차 당세포비서대회에서는 북한 신세대의 사상적 일탈 현상을 ‘전당, 전 인민적 과업’으로 제시하면서, 현시기를 ‘고난의 행군’ 기간으로 설정하고 ‘자력갱생’으로 돌파할 것을 강조했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이번 ‘열병식 연설쇼’도 체제내구력 약화에 따른 자신의 취약한 권위를 강화하기 위한 이벤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대외적인 것으로, 미국 바이든 정부와 남한의 새 정부에 대한 노골적 불만과 위협을 표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연이은 ICBM 발사 등 ‘모라토리엄’ 파기에도 ‘외교적 해법’이라는 원칙론에 입각한 미국의 소극적 대응에 “보유한 핵무력을 최대의 속도로 더욱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계속 취해나갈 것”이라는 엄포와 함께 적극적으로 임해달라는 의도를 숨겨놓았다고 볼 수 있다. 또 과거 문재인 정부 5년과는 너무 다르게 한미동맹 복원과 공조 강화를 통해 ‘원칙적 대북정책’을 펼칠 윤석열 정부를 출범 초반부터 흔들어 입지를 약화시키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향후 김정은은 북한 내부 사정이 악화될수록 자신의 권위 강화 및 우상화 작업에 속도를 높일 것이며, 한미동맹과 공조 강화를 방해하기 위해 추가 핵실험 및 ICBM·SLBM 발사 도발 등 감춰놓은 속내를 현실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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