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현재 불행하십니까! '행복 총량의 법칙'

이현원 | 기사입력 2015/02/25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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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현재 불행하십니까! '행복 총량의 법칙'
 
이현원   기사입력  2015/02/25 [04:37]
[한국NGO신문]이현원 칼럼니스트 = 최근에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지랄 총량의 법칙’에 대해서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 말에 관심이 끌려서 구체적인 내용을 더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란 사람이 한 평생 살면서 해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주장한 분이 있다. 한동대 법대 김두식 교수의 저서 ‘불편해도 괜찮아’에 나오는 말인데, 듣는 이로 하여금 흥미를 자아낸다. 이 법칙에 의하면, 모든 인간들은 평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고, 죽기 전까지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에, 어떤 사람은 사춘기에, 어떤 사람은 늦바람이 나서 늘그막에 마침내 지랄의 총량을 채우게 된다고 한다. 지랄을 곁에서 바라보는 힘겨운 사람들에겐 조금 위안을 갖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과연 이 법칙이 맞느냐, 안 맞느냐에 대해 다툼으로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총량의 법칙이 일리가 있다고 보고, 이를 원용하면 여러 가지 다른 법칙을 만들 수 있어 재미가 쏠쏠하다.

예를 들면 ‘주량(酒量) 총량의 법칙’, ‘고민(苦悶) 총량의 법칙’, ‘질병(疾病) 총량의 법칙’, ‘행복(幸福) 총량의 법칙’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 중 ‘행복 총량의 법칙’에 대해 좀 깊이 살펴보기로 한다. 이 원칙은 인간이 행복을 누리는데 한도가 있다고 보는 제도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바라지만 총량의 제한으로 마냥 행복한 삶만을 살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불행 총량의 법칙’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인간의 삶엔 좋은 운수만 지속적으로 주어지지 않고 고통이나 불운이 같이 따라다닌다. 인생을 희비쌍곡선에 비유하든지, 신은 사람에게 오복(五福)을 다 주지 않는다는 말과 일맥상통 한다. 속담에서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라든지, 한자성어의 ‘호사다마(好事多魔)’나 ‘고진감래(苦盡甘來)’ 등과 뿌리를 같이 한다고 할까.

어찌 보면 우리 삶은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을 더 많이 겪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는지 모른다. 그래서 인간 세상을 고해(苦海)로 일컫는가 보다.

선인(先人) 중에는 ‘석복(惜福)’을 좌우명으로 삼아, 복이 있을 때 복을 저축했다가 어려움이 닥쳤을 때 꺼내 쓰자는 사람이 있었다. 기쁠 때 어려움에 대비하자는 유비무환(有備無患) 의미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너무 행운이 계속되고 있을 때, 낮은 자세로 남에게 봉사를 한다든지, 물심양면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지혜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고 싶다.  

이렇게 보면 인생에 있어서 평생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양이 정해져 있다는 ‘행복 총량의 법칙’이 일리 있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일생이 순탄했던 사람이라도 불우한 때가 있었고, 한평생 불운했던 사람도 행복한 때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운명론적인 닫힌 사고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구적인 행복과 불행은 없으니 ‘행복 총량의 법칙’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곧 ‘즐거울 때가 오겠지’ 하고 위로를 삼는다든지, 또는 ‘지금의 고난은 나만이 겪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다른 사람과 함께 겪고 있다’고 생각하면 슬픔이 가벼워진다.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맞부딪치는 가시밭길 언덕을 오르다보면, ‘오늘은 힘들지만 참고 견디면 내일은 밝은 태양이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어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행복의 총량이 사람들 각자(各自)에게 적용된다면, 한편으로는 인류 전체에게도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지구상의 인간 중에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행복이란 개념이 주관적이고, 물질의 잣대로만 잴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러한 인간이 전체의 20%다, 30%다 이렇게 쉽게 얘기하기는 어렵다. ‘행복지수’를 산출하는 객관화된 계량 방법을 개발하여 개인별로 측정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보편적인 가치 요소로 보아 ‘행복하다’ 또는 ‘행복하지 않다’로 구분해 볼 때,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훨씬 많으리라고 본다. 여기에도 행복 총량의 법칙은 예외 없이 활용된다고 볼 수 있다.

이 법칙에 의하면, 내가 운이 좋든 노력의 결과든 행복하다고 느끼면 그만큼 어디엔가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고, 반면에 나의 불행이 누군가 남의 행복 때문이라고 오히려 위로나 긍지를 느낄 수 있다. 나와 다른 사람과의 이해관계가 상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남보다 뛰어나 만족한 삶을 산다고 오만해서는 안 될 일이고, 불우하다고 해서 자포자기나 슬픔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도 안 된다.

따라서 내가 잠시 보관하고 있는 복 주머니 이기에, 조그만 일에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겠다. 행복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불행한 처지의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가지고 도와주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나의 불행을 남이 대신해준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춥고 배고픈 이웃들을 외면하지 않는 공동 운명체 의식이 요구된다.

한편, 행복이라는 상승곡선의 꼭대기를 지나 불행의 내리막길에 이르렀을 때에는, 용기를 가지고 희망찬 내일을 위해 끈기 있게 참고 기다리는 의지가 필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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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2/25 [04:37]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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