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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詩碑)를 시비(是非)하다

이오장 시인

  • 기사입력 2017.09.29 15:49
  • 기자명 이오장
▲ 이오장 시인


사람은 무엇인가를 기념하는 일에 종종 매달린다. 기념일을 정하고 그것을 축하하기 위한 잔치도 서슴없이 벌이고 그것도 모자라 그 자리에 커다란 표석을 세워 자랑한다. 인간의 알량한 우월성을 내세우기 위한 결과물이다.


옛날에 고을의 현감이나 목사 등 지방관들이 자신의 치적을 빛내기 위하여 여러 곳에 기념비를 세웠으며 가문에 높은 관직을 가진 자가 있으면 사후 사당을 지어놓고 위대한 업적이라고 칭송하며 비석을 세웠다. 근세에도 중요한 인물이 타계하면 국민적 영웅이라고 치켜 각종 기념비를 공원이나 중요 장소에 세우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기본 심리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된다. 이처럼 비석을 세우는 목적은 그 사람의 치적이 귀감이 되어 여러 사람을 가르치려는 훈도의 목적과 한 지방의 유력인사나 가문의 인물을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세우는 것은 아니었고 일정한 업적을 여러 각도에서 심사하여 후인이 남기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위대한 문인이라도 제자들이나 집안의 후인들이 전체의 뜻을 모아 신중하게 세웠던 것이다. 생전에 자신의 공적비나 문학적인 비를 세우는 것은 부끄럽게 생각했으며 일부 지방관들이 자신의 폭정을 은폐하려는 목적으로 허위의 공적비를 세웠지만 사후에 국민의 지탄을 받으며 없어지는 치욕을 겪기도 했다.


이처럼 신중하게 접근하여 세워야 하는 것이 기념비다. 한데 작금의 형태를 보면 졸망하기 그지없다. 그것도 선비라고 자처하는 시인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자랑하려는 시비를 전 국토에 세우고 있어 이를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한 사람의 시인이 70평생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대부분 약 4.5백 편의 작품을 남긴다. 그중 대표작이라고 할 작품은 사후에 평가를 받아 이구동성 합의아래 선정되고 기념비를 세우기도 한다.


그런데 생전에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내세우며 자신의 돈으로 시비를 세운다는 것은 지탄을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누가 읽어도 대단한 작품은 아니라고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 공공연히 공원이나 대로변에 떳떳하게 서 있는 것을 보면 과연 얼굴이 얼마나 두꺼운지를 재보고 싶다. 현재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시비가 얼추 3천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중에 길이 후손에게 남겨줄 작품이 몇 편이나 있을지 의문이고 만약 그 사람 사후에 작품의 평가가 졸품이라고 판명 났을 때는 과연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는 생각해 봤는지 묻고 싶다.


위대한 작품을 남기고 사후 제자들이나 후손들이 그 작품을 기념하기 위한 시비는 얼마든지 괜찮다고 본다. 하지만 시집 한 권을 상제하는 비용을 자신이 부담하며, 되지도 않는 장소에 돌덩이를 세워놓는다는 것은 큰 문제다. 만약 미당 서정주 같은 친일 행적이나 그 밖의 치졸한 행태가 드러나면 그 바윗덩이를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또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시인들을 선동하여서 한 장소에 마구잡이로 시비를 세우는 사례도 있는데 이는 시인들을 모독하는 행위다. 그곳을 둘러본 사람들의 소감은 한마디로 시의 쓰레기장이라고도 하는 것을 보면 과연 그 실태가 짐작되고도 남는다. 자신의 작품이 영원히 남을 작품이라고 호언하며 시비로 남길 작정을 했다면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하고 혹 그런 작품이 있다 해도 후대의 평가를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시인은 선비라고 자찬하면서 그런 행위를 보인다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신인으로 등단하여 몇 년이 지나기도 전에 그런 일에 동참하여 버젓이 시비를 세우는 것을 보면서 과연 시인이 선비인지를 생각해 볼 일이다. 시비에 시비를 거는 행위가 옳지 않겠지만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입을 닫기만 할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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