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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회장의 연임실패는 주주의식 제고의 신호탄

  • 기사입력 2019.03.29 10:16
  • 기자명 발행인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1999년 아버지 고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에 주주들의 반대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로써 조 회장은 국내 재벌기업 총수 가운데 주주 손에 의해 물러난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대한항공은 27일 제57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 등 4개 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관심이 집중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은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됐다. 대한항공 정관은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 회장이 연임에 성공하려면 찬성 66.66% 이상이 필요했지만, 이날 2.5% 남짓한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지 못해 경영권을 지켜내지 못했다.

이번 조 회장의 연임 실패는 조 회장 외에 부인과 세 자녀의 논란이 부른 여론 악화가 결정적이었다. 조양호 회장은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기내 면세품을 총수 일가가 지배한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를 통해 중개수수료 196억 원을 받은 혐의(특경법상 배임)로 기소되는 등 270억 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부인과 세 자녀는 2015년 '땅콩 회항' 사건을 비롯해 '물컵 갑질', '대학 부정 편입학', '폭행 및 폭언' 등 각종 사건에 연루됐다. 결국 '땅콩·물컵 갑질'의 나비효과가 조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주총에 앞서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국민연금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 및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안에 반대 투표를 권고했다. 해외 공적 연기금인 플로리다연금(SBAF), 캐나다연금(CPPIB), BCI(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 등도 조 회장의 연임에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외국인·기관투자가 의결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소액주주 역할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정상화를 위한 주주권 행사 시민행동', 참여연대, 좋은기업지배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 모임 등은 소액주주 140여명(0.54%)의 위임을 받아 조 회장 연임에 반대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조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재선임안 부결에 대해 "주주들의 이익과 주주가치를 고려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야 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연임 반대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우려스럽게 생각한다"고 반발했다. 또 "국민연금이 민간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게 된다는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있는 만큼 보다 신중했어야 하는데 아쉽다"며 거듭 불만을 나타냈다, 반면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가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 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한 후 이행하는 좋은 사례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이 부결됐지만,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에 대한 조양호 일가의 지분이 있어 경영권이 박탈됐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재벌기업의 총수도 국민과 주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엄중한 경고이자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총수 일가 관련 안건에 반대한 사례 가운데 처음으로 부결된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의결권 행사의 중요성에 대해 기관과 소액주주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향후 기업 총수나 CEO들이 경영 실적 외에도 투명 경영이나 총수일가의 기업가치 훼손 방지 등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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