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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시마을]김정현, 갱년기의 벽

  • 기사입력 2019.06.21 10:18
  • 기자명 김정현

갱년기의 벽

김정현

날카로운 그녀의 겨울이
고슴도치의 털처럼 솟았다
뾰족한 털 사이에 숨겨진 그녀의 귀는
애초부터 열리지 않았다

있는 듯 없는 듯
잠잠한 입이 뻐끔거리자
화살촉 같은 말이 튀어나와

또 다른 뽀얀 여인의 분홍색 살결을 비집었다
여인의 보드라운 솜털이 붉게 물들었다 투명한 벽이 그녀와 그녀 사이에 쌓였다

숨겨놓은 그녀의 귀에서
점점 소리가 멀어졌다

김기덕 시인의 시해설/갱년기는 폐경에 이르러 성기능의 위축, 전신노화를 수반하는 시기를 말하며 대체로 45세에서 55세 사이에 해당된다. 이 시기에는 발작성 흥분, 두통, 심계항진, 현기증, 이면, 불면 등의 혈관운동장애나 위장장애, 정신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날카로워진 그녀의 삶은 겨울과 같고, 모든 감각은 바늘처럼 예민하다. 입을 뻐끔거리기만 해도 화살촉 같은 말들이 튀어나와 순수한 대상, 사심이 없는 이들에게까지도 상처를 입히게 된다. 상처로 인해 서로 좋았던 사이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고 관계는 멀어지게 된다. “뾰족한 털 사이에 숨겨진 그녀의 귀”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의 열린 마음을 의미하는데, 불행이도 시인은 애초부터 열리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있는 듯 없는 듯”한 관계로 표현된 대상은 현대인들이며, 시인은 주변의 모든 관계에서 갱년기의 벽을 느끼고 있다. 너무 민감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며, 분노 조절이 되지 않는 이 시대 소통부재의 벽을 느낀다. 사실적으로 사람의 귀는 외부로 드러나 있지만, 상대의 말을 들어주고 받아들이며, 이해하려는 마음의 귀는 닫혀있고 숨겨져 있어서 진실의 소리, 마음의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음을 안타깝게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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