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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천만 했던 불교성지순례

  • 기사입력 2021.05.24 08:19
  • 기자명 수필가 이석복
▲ 이석복 차세대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전 육군 제5사단장   

지난 2012년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약 7일간 지금은 파키스탄(무슬림 97%)땅인 옛 간다라 불교성지순례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사전에 파키스탄 정부와 간다라지역 주(州)정부의 안전보장을 약속받은 초청순례였지만 테러집단 ‘알 카에다(Al-Qaeda)’의 수괴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의 사망 1주기가 5월 2일이라는 것을 미처 착안하지 못했었던 여정(旅程)이었다.

순례 첫날은 파키스탄 제2의 도시 '라호르(Lahore)'에 도착하여 사진으로만 보던 부처님의 고행상(피골이 상접한 모습)을 비롯한 기원전 그 옛날의 정교한 불교조각들을 대하였을 때 “헉!”하고 숨이 막히는 감동을 느겼다. 일행 중 누군가 감격에 겨워 반야심경(般若心經)을 독송(讀誦)하기 시작하자 스님 두 분을 비롯한 우리 일행들 모두가 환희에 넘쳐 힘차게 독송했다.

어느 결에 기자들이 모여들어 우리들의 불심(佛心)에 가득 찬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고, 인터뷰 요청을 하는 등 파키스탄측의 관심이 지대함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박물관에 도착하기 전 첫 일정인 ‘펀잡(Punjab)’주 주지사가 우리 일행을 청사로 초청해서 양국 발전에 힘이 되어 달라는 부탁을 들을 때는 그저 인사말로 그러려니 하였는데 기자들의 취재모습에서 대한민국에 기대하는 것이 매우 크다는 것을 실감 할 수 있었다.

순례 둘째 날에는 ‘라호르’에서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까지 대우건설이 공사를 하였다는 고속도로를 달려서 인근 ‘탁실라(Taxila)’라는 곳의 불교유적을 찾았다. 그곳에서 2500여 년 전에 세운 자칭 인류최초의 대학이라는 ‘쥬리안’ 불교사원과 기원전 3세기 고대 ‘마우리아’왕국의 ‘아쇼카’ 대왕이 조성한 지름 50미터, 높이 15미터의 거대한 녹야원(鹿野苑) ‘다르마라지카(Dharmarjika)’ 부처님 사리탑(stupa)을 경이로운 마음으로 참배했다.

그런데 파키스탄의 분위기가 어제 첫째 날과는 다른 긴장감을 엿볼 수가 있었지만 계획대로 둘째 날 일정을 보냈었다. 우리 일행이 머물 던 호텔에서 저녁 만찬을 초대해준 한국대사로부터 알카에다의 테러얘기를 듣고서야 비로소 긴장된 분위기를 알게 됐다. 심지어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된 장소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멀지 않은 곳이며, 사망일이 다가오자 미국 대사관도 몇 일간 폐쇄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실감하기 시작하고 우리 일행은 일정을 포기하고 도중 귀국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파키스탄 정부의 내무부 간부가 파키스탄 군과 경찰이 2중, 3중 경호로 안전을 다짐해 주었지만 진심으로 걱정하는 한국대사의 충고를 무시하기도 힘들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은 이런 경우에 쓰라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순례 2일간의 여정에서 기대이상의 감동과 환희로 마음이 크게 고무되어 있었고, 앞으로 펼쳐질 기대감에 쉽게 포기하기가 어려워 매듭을 짓지 못하고 일단 다음날 아침에 결론을 내기로 했다. 만찬장에서 객실로 오는 도중에 경호원들이 복도에도 촘촘히 배치된 것을 보니 테러위험의 개연성이 실감되었고, 파키스탄 관리들이 약속대로 철저히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우리 일행은 내일 아침 어떤 결론을 내야 할까하는 뒤숭숭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에 순례단장은 조찬 후 모임을 갖고 순례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중단하고 귀국할 것인가에 대하여 각 개인별 의사에 따르기로 하겠다는 나름의 방침을 공개했다. 순례단의 안전과 초청해준 파키스탄 측의 입장 그리고 한국대사의 안전책임 등을 종합해서 찾아낸 묘책이었다.

개인들의 의사를 일일이 확인한 결과 일행 19명중 1명만 순례를 포기하고 귀국하기로 결론을 내리게 됐다. 행사를 주관하는 파키스탄 정부측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우리 일행의 순례결정에 감사하는 표정이었다. 뒷이야기이지만 순례를 계속하겠다는 분들 중에는 미리 유서(遺書)까지 준비할 정도로 긴장의 강도가 컸었다고 하니 지난 밤새 어려운 결정을 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아직도 약 2,000여 명의 탈레반(Taliban)이 준동하고 있다는 파키스탄 북서부의 ‘카이버 팍툰콰(Khyber Pakhtunkhwa)’주 방향으로 일행 18명이 순방을 출발했다. 아무튼 우리 일행을 태운 대형 관광버스 앞에는 순례여정 내내 경찰무장 경호팀이 선도하고, 뒤에는 군 경호팀이 후방 방호를 하는 삼엄한 에스코트(escort)를 받는 순례단 행렬은 죽음을 무릅쓴 아주 특별한 여정이었다.

노스웨스트프론티어 주의 수도 ‘페샤와르(Peshawar)’를 가기 전 백제에 불교를 전파한 ‘마라난타’스님의 고향인 ‘찬다 나호르’ 마을을 방문하여 고승에게 예(禮)를 표하는 즉석 간이 법회를 갖기도 했다. 법회를 마치고 버스를 세운 곳까지 우리 일행이 걸어 나오는데 집집마다 여자들이 문을 빼꼼히 열고 서너 명씩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는 모습에 인지상정(人之常情)을 느꼈다. 도시 여자들은 개방됐지만 시골에서는 아직까지도 외지인(外地人)이 오면 여자들은 집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니 문화의 차이가 안쓰럽기도 했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불교성지 근처의 시골마을을 지날 때도 손을 흔들면 불교순례자들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그들도 웃으면서 마주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에서 일반 무슬림들과 불교도의 화합 가능성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페샤와르’시는 아프가니스탄과 이어지는 국경근처의 주요 교통로 상에 있는 옛 왕국들의 수도이기도 했던 번잡한 큰 도시였다. 주(州)의 관광장관은 박물관에서 우리를 영접하면서 일일이 화환을 목에 걸어주면서 부처님 석고상을 선물로 주고 우리 순례단 대표들을 대동하고 기자회견도 가졌다. 회견의 주요 내용은 대한민국과 문화 및 관광교류를 활발히 발전시키겠다는 희망찬 내용이었다. 

다음 일정으로 인근 300고지 정상에 기원전 1세기에 건립되고 7세기까지 운영되었던 간다라 지역사원 가운데 유명한 ‘탁트히 바히’승원을 방문했다. 1907년 영국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다고 하며, 현재는 유네스코 유적으로도 등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곳 사람들은 불교를 모르니 불교 유적 및 유물을 발굴하거나 관리하는데 어려움이 많아서 부지(敷地)까지 무료로 제공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불교대학을 세워주기를 요청하고 있는데 우리 불교계는 아직 관심이 적은 형편이다.

마지막 순례일정으로 ‘페샤와르’ 북쪽 해발 3,000미터의 ‘말라칸드(Malakand)’패스를 넘어 '스왓'분지 지방을 방문했다. 버스로 말라칸드패스를 넘는 것이 불안하다면 군(軍) 헬기를 제공하겠다는 관광장관의 제의를 우리는 정중히 사양했다. 헬기탑승이 오히려 더 노출되고 불안할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었다. 과거 영국수상 처칠경(Lord Churchill)이 초급장교시절 이 지역에서 근무한 바가 있었다고 한다. 산 중턱에 하얀 실같이 옛 실트로드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스왓’ 분지에 거의 다 내려오면서 길가에 부처님 사리를 모신 ‘쉼가르다’ 스투파(높이 27미터, 지름 12미터 원통형)가 이태리 고고학자들에 의해 복원되고 있었다. 가톨릭 국가의 고고학자들이 불교의 진귀한 유적을 복원하고 있다니 불교국 한국의 입장에서 다소 민망스럽기까지 했다. 우리를 안내한 파키스탄 정부요원은 신문에 크게 보도되고 있는 우리 일행 뉴스가 담긴 영자신문을 보여 주었다. 신문의 다른 면에는 다른 지역에서 감행된 탈레반 공격과 피해 관련사항이 함께 실려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이슬라마바드로 가서 귀국하게 된다. 그래도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도록 일행들을 단속하면서 파키스탄의 마지막 밤은 깊어갔다. 한국과 파키스탄 교류 발전을 위한 숙제도 안고 왔지만 언제 닥칠지 모르는 테러위험에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듯한 긴장감을 느끼기도 했던 성지순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어 한편 보람이었고 다행이었다. 

우리일행을 초청해주고 끝까지 잘 보호해준 파기스탄 정부 그리고 군과 경찰의 경호팀들에게 감사한다. 그런데 순례기간 중 대한민국 특전사 1개팀이 함께 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왜였을까? 아무쪼록 탈레반의 테러위협이 사라지고 많은 불자들이 대승불교의 발원지인 간다라 성지순례를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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