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이오장 돌에서 쌀을 고를까쌀에서 돌을 고를까 한라산에 가자조릿대공덕비를 읽어보고낭창한 조릿대 꺾어다가조리를 만들자 겉은 빛나지만 속이 썪은 놈겉과 속이 다 썪은 놈너무 작아 쓸모 없는 놈너무 커서 불편한 놈비뚤비뚤 비틀어진 놈한 쪽으로 기울어진 놈까도까도 속이 보이지 않는 놈뒤집어 봐도 속이 없는 놈말 많아 귀가 엷은 놈말 없이 귀만 큰 놈 맑은 물에 씻어 너울너울 조리질잡것은 갈앉히고 진짜만 띄우자 쌀에서 돌을 고르자빛나는 진주를 찾자
자전거와 가로등 최명숙 네게 좀 기대도 될까쉼 없이 달려야 했던바퀴를 멈추고하루하루무게중심을 잡느라 힘주던몸의 힘도 빼고방향을 잡느라 애쓰던손잡이도 놓아두고네게 기대어 좀 쉬어도 될까늘 되풀이해서 돌아야 했던페달도 세우고갑자기 나타난 장애물 앞에서뜻하지 않게 맞닥뜨린 내리막길에서온 힘을 쓰다 탈이 난브레이크도 잊고네게 기대어 잠시 나를 돌봐도 될까빛으로 길을 밝히는네게 기대어새로운 꿈을 꾸어도 될까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품은 수를
딱 다섯 시간의 여유 김두녀 걸러낸 엿기름이 고요를 되찾았다잠시 후 뜨거운 밥알을 맞아서서히 열을 올릴 터90도에 육박하는 뜨거움 속몸 섞는 사랑이라 치자정해진 다섯 시간딱 그렇게 너를 사랑하면내 요술에 걸려들어 백기를 들고 나오리라 불덩이 속 뛰어들어도 그렇게 변하지 않지다섯 시간 족히 너를 품다가 삭아 내린너의 빈 육신 둥둥 떠오르면100도가 넘는 뜨거움으로 완성하리라더 이상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보채지도얼굴 붉히지도 않으리라 식혜를 끓이는 데도
이렇게 많이 이채원 생각지도 않게 물을 많이 쓴다시간이 멀리 가기도 전에 또 샤워를 한다이렇게 많이 흘렸는데도 또 씻으라 한다 여름만큼 욕심 많게올라가는 온도만큼물로 차게 만든다 뒤돌아서서 다시 몸을 바라보며그리운 듯 물가로 내려선다반겨주지도 않는데 다시 옷을 벗어여름여름에 씌워 주고 있다 지구의 70%는 물이다. 그중 사람이 쓸 수 있는 물은 20%다. 또 그중에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물은 2%다. 2011년 10월 31일에 지구의 인구는
석양빛 권오상 가난했어도 금슬 좋았지장미꽃처럼 좋았고얼굴 붉히며 가슴 두근거리던아름다운 시절은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고이러쿵저러쿵사느라 살아보고자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상처로 얼룩진 길만 지나왔어푸르던 시절고왔던 시절황홀하게 바뀌어 가는 줄이제 알았나 보다끝날 길이 어딘지도 모른 채저 아름다운 석양빛에보기 좋게 어울리는 것을 보면 사람마다 한 생을 그어놓고 4 등분 한다면 어느 지점에 선을 그어야할까. 유아 시절을 빼놓고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뿌리 정지홍 바람 요동쳐마른 가지 울어대는데낙엽에 덮인 뿌리는겨울잠 깊네벗어 덮어주고눈물 매운 나무라서뿌리는 한 뼘 봄으로 가네 털 갈고 허물 벗고세상은 새 옷을 입는데껴입기만 하다가 쓰러진 세월하늘 보니 혼자라 땅 보니 혼자라마른 가지 지팡이 짚고이불 한 자락 가져왔어요아 아버지... 근본을 모르는 놈, 뿌리도 모르는 놈, 흔하게 듣던 욕이다. 언제부턴가 은근슬쩍 듣기 힘든 말, 과거 유교를 숭배하던 때는 양반과 상놈을 엄격히 구분하여 상놈은
하늘 이상원(노원) 하루가 다르게높은 빌딩과 숲을 깎아 지은 아파트가점령군처럼 하늘을 지운다그 엄청난 기세에 눌려파랗게 질려버린 하늘당연히 내가 보는 하늘은그만큼 작아지고 기도도 적어졌다집 잃은 별들이소란스런 말소리 가득한 불야성의 거리에 쏟아져쓰레기와 함께 굴러다니고강변의 개망초꽃 위에 앉아 흔들리던 달빛은건물 옥상에서조차 내려오지 못한다창끝처럼 뾰족한 콘크리트 모서리를 피하려다기어코 쓸쓸히 먼 산을 넘어가는 하늘땅과 건물에
새해의 불꽃을 태우자 이오장 태양을 향해 뛰어라 제자리에서 늘어진 그림자는거미줄에 맺힌 이슬방울머리 위에 태양을 얹혀라 뚜벅뚜벅 소걸음으로대지를 밟은 굳센 의지는호랑이를 맞이하기 위한 것지구는 멈추지 않고 돌고 돌아우리의 희망을 새롭게 한다 보아라 맞이하라찬란하게 떠오르는 새해를걸음마 배우는 아이의 입에 마스크라니 말도 익히기 전에 입막음이 웬일인가 멈추지 않는 지구와변함없이 반겨주는 태양이 있는데이대로 주저앉아 땅을 치며코로나 타령만 할 것인가 새해의
낡은 호미 곽진구 장에서 횡재한 낡은 호미에서 사람의 소리가 났다 봄꽃이 핀 이후에는때도 없이 그 소리가 꽃밭에서 살았지만꽃이 진 다음부터는 차분히 좌정하고서창가에 머문 고요의 행세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그 소리를 따라가 보면한 집안을 건사하느라 팔순의 나이에도봄만 오면 어김없이 새순을 들이미는느티나무 한 그루 같은 여자가 불쑥 튀어나온다 농사짓고 바늘질품 팔고 남편 병수발하며뼈 빠지게 보낸참, 가지 많은 세월이어서인지그 세월이 아
부부 한희숙 여러해 살다보니있으나마나한 존재감없느니만 못한 남의 편걸림돌이 되었다가그래도 어느 순간디딤돌 되어 그 자리 지키는 좋은 옷 입히고 싶고맛있는 음식 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가족관계증명서엔내 옆에 착 달라붙어있는영원한 필요악그래도 양심상꼬리치며 달려 나오는 반려견과서열 다툼 비길 수 없는 그 사람 가시버시란 순수한 우리말은 부부의 다른 말이지만 가시버시라고 부르는 건 이제 모두 잊었다. 경제적으로 공동생활을 하며
어둠길 김병해거뭇해진 하늘황혼이 아름답다 어느 때 어디선가 행여 나도 누군가를저리 곱게 물들인 적 있었던가 남을 위한 저녁을 들인 적이여태 내게도 한 번쯤은 있기나 했을까왔던 길 되짚는 한 생애 저물도록 지나온 몇몇, 멀리 어수룩한 빛을 향해일찌감치 어둠길이 되며 눕는데 황혼은 마지막이다. 하루의 끝이며 인생의 마지막으로 그 앞에 서면 누구나 회환에 젖는다. 뉘우치고 한탄한다고 무엇인가 달라져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것같
적막에 들다 김선진 적막이 적막 속으로 파고든다적막의 껍질을 깨고 들어선 적막이다시 고요해졌다나무는 잎사귀마다진초록 물을 그득하니 머금고가끔 기침을 한다그때마다 적막이 잠시 흔들렸다길섶 마타리, 산초, 달맞이꽃, 개망초좁쌀풀, 달개비, 갈퀴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앞서거니 뒤서거니호랑나비가 길을 터주는이천 양돈 연수원 팔월의 오솔길가끔씩 내뱉는 내 숨결에적막이 화들짝 놀라가슴을 쓸어내린다발자국 소리만 내 뒤를 자꾸만
하루살이 윤희선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인정도 사정도 눈물도 없는 시간은어김없이 흘러가고 밤이 되면일손도, 펜도 그 모든 것 다 내려놓고잠들어야 한다잠들기 전까지 나는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 쫓기듯 살아가는 삶에서 세상을 위해나는 무엇을 했는가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굳이 따진다면 해는 가만히 있고 지구가 돌아간다. 왜 지구가 도는가. 태양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태양이 없다면 지구가 없고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한 쪽으로만 도는가. 반대로도 돌고 옆으로도 돌고 빨
광화문 스캔들 하옥이 어둠이 내려앉은 카페에공존할 수 없는밀물과 썰물이 콘서트 한다바람이 삼켜버린 캄캄한 나라멀리서 피리소리 환청으로 들리고천년 들끓는 목멘 사랑짐승의 핏줄 같은 민족의 한을 삭인다정치가 죽어야 나라가 살고내가 파수꾼이면이웃은 사냥꾼이어선 안 된다면서도산이 높아 산을 오를 수 없고물이 깊어 물을 건널 수 없는그냥저냥 끊어질 듯 이어지는 시간사라진 미소를 찾는다어디선가잠복한 배고픈 사자의 수정체 하나그렇게 번득이고 있다 세상에는 함께 할 수 없
파도는 도무지 가만있질 못한다 김두자 나는 파도다좀체 가만있질 못한다찬바람 부는 날에도비가 오는 날에도푸른 하늘 흰구름바람 자는 날에도나는 출렁인다달빛 아래서도 별빛 아래서도넘실넘실 물춤을 춘다때와 곳무슨 대수나는 살아 있다아직도 살아 있다 파도처럼파도는 도무지 가만있질 못한다 사물의 움직임은 자동(自動)과 타동(他動)이 있다. 움직임에 따라 동물과 식물로 나뉘지만 동물인 사람의 움직임은 자신을 알리는 신호다. 제자리에 가만히 있다면 사람이 아닌 식물이며 뿌리와 잎이 없어 금방 죽는다. 결국 사람은 움직여야 생명이 유지되며 모
삶 이효애 나는 나를 날마다 속이며 삽니다그런데도 단 한 번도 죄책을 느끼거나위선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참 뻔뻔하지만뻔뻔하지 않는 게 참 자연스럽습니다오늘도 뻔뻔한 하루를 용감하게 살기 위해세상사 모두 거느리고 삽니다 사람은 내부 깊은 곳에 피해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자연에서 얻는 불안감, 이웃과의 불화감, 옆 사람과의 불협
조개무침 -부안장날- 공현혜 부안장날 뒷골목 떡집 앞에는온순하게 이승을 떠난 구담댁 자리가 있었다조개무침 앞에 놓고 졸음을 훑던 상실의 자리영감의 하루치 밥상을 차려놓고주산 황토반죽 길을 빠른 걸음 놓던 사람아따, 겁나게 기둘릿제며느리 좋아하는 조개무침 미끼로손주를 그리던 마음이 아직 남았다배 과수원 하루치 일 접고곰소 뻘밭을 종일 기어다니며 캔 조개들자식 대신 젊은 엄마들에게 퍼주던 긍정의 손서해안고속도로를 놓으면 좋겠다더니개통식 전에 떠난 사람 자리엔 불청객만 이어지고이젠
화천대유 이오장 밤도깨비 한 마리가머리에 꽃등 달고 싶어산기슭 팔방에 말뚝 박아밧줄 걸어 하늘에 던졌겠다 낮도깨비들이 우르르 몰려들어하나 씩 붙들고 하늘에 올라이리저리 둘러봐도 고리가 없어천당 위 분당에 당도 하였겠다 마침 이무기 잡아 먹고 뿔 뽑아 만지작거리던 원님이옳다구나 잡아채어 제 코에 걸어보니그게 바로 하늘이라 이때부터 용이 되려는 수작으로꼭두각시 놀이를 하였겠다 사방에 흩어져 살던 구렁이들이분당 아래로 모여들어 궁전을 짓고하늘까지 차지하려
경계선 한순안 사과를 깎다가무심코 경계선을 넘어버린날 선 칼날에 손가락을 베었다 손가락에 입은 상처야벌겋게 부어오르다가 쿡쿡 쑤시고곪아 터지거나 가려우면 그뿐이지만 작심하였거나 무심하였거나날이 선 언행에 베인 상처는일회용 밴드로 봉합이 어려운 법아무리 새살이 돋아도 마음에 흉터가 남는다 당신과 나 사이에도지켜야 할 안전거리넘지 말아야 할 중앙선이 있건만가끔 빨강 신호등 무시하고전력 질주하다 상처를 낸다 마음에 입은 상처는진심을 담은 사과가 명약이지만사
벽을 밀면 골목이 넓어진다 김영만 생은 두근거림이다목구멍으로 기어오르는 것은허무함이란 이름의 어지럼증이다 적막감이 줄곧 나를 괴롭혔다때때로 어둠이었다가 천년의절벽이었다가, 그럴 때마다일기장 귀퉁이에다 사랑을 꾹꾹 눌러 썼다 불현듯 나를 밀어낸 것은소리 없이 내려앉기 시작한 어둠이었다자잘하게 부서지는 것들을 지켜보면서섬진강 기수역에 나를 풍덩 던진다벽을 밀면 골목이 넓어진다 마침내 사지가 풀려 뜨거운 피 스며들어쫑긋쫑긋 솟아나는 푸른 귀들사지가 풀리면 저런 모양이 되는 걸까 햇살을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