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는 손자병법 시계편(孫子兵法 始計篇)에서 “병자(兵者) 국지대사(國之大事), 사생지지(死生之地), 존망지도(存亡之道), 불가불찰야(不可不察也)”라 하여 ‘국가안보는 국가의 큰 업무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요, 존망이 달린 길이니 신중하게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강조했다.그리고 현대전에서 국력(Naional Power)의 개념은 군사력(Military Capacity)을 의미하며 국가의 전략적 자원(Strategic Resource)의 변환력(Conversion Capacity)을 유사시 실제역량(전투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
혜성같이 등장한 방탄소년단(防彈少年團)은 이름부터 독특했다. 영어약칭 BTS는 영어음차인 ‘Bang-tan Sonyeondan’에서 따온 것이지만 영어로만 ‘Bulletproof Boys’에서도 차용이 가능한 애칭이다. 방탄소년단의 이름에는 ‘방탄’의 사전적 의미대로 ‘총알을 막아낸다’는 뜻으로 “10대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힘든 일, 편견과 억압을 우리가 막아내겠다는 심오한 뜻을 담아냈다”고 밝힌 점에서 MZ세대를 대변하는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공식데뷰일은 2013년 6월 13일로 올해 10주년을 지낸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난 11월 23일 북한은 ‘9.19군사합의를 전면파기’한다고 선언했다. 북한은 21일 22시 42분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신형위성운반로케트 에 탑재하여 성공적으로 발사를 하였다. 1차 발사는 5월 31일 군사정찰위성으로 위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강행했다.2차 발사는 8월 24일 북한은 또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는 명목으로 발사했으나 실패하였고 3차 발사에서 성공하였다. 북한은 정찰위성발사가 자위권 강화에 관한 합법적 권리라는 궤변(詭辯)과 달리 주변국에 대한 감시태세를 강화
국군기무사령부는 ‘국군기무사령부령(대통령령 제14258호/1994.5.13.)’에 의하여 제1조(설치와 임무)를 수행하는 국방부장관 직할 군부대이다. 국군기무사령부의 변천사는 창군시 육본 정보국 방첩대(1949년)에서 6.25전쟁시 육군 특무부대(1950년)로 바뀌고, 육군방첩부대(1960년)에서 육군보안사령부(1968년)로, 다시 국군보안사령부(1977년)에서 국군기무사령부(1991년)로 발전되어왔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2018년 9월 1일에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해편(解編)되었다가 2022년 11월 1일 기무사의 후신이라고
유대민족과 아랍민족 간의 투쟁은 기원전을 거슬러 올라 집안 싸움에서 기원한다. 모세, 솔로몬, 다윗 등의 이야기는 모두가 아랍민족과의 전쟁에서 유대민족을 보존한 영웅들의 이야기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과정에서 팔레스타인지역에 유대민족의 국가건설을 결정한 합의에 따라 오늘의 이스라엘이 1948년 5월 14일 건국했다.이스라엘 국토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주민과의 영토분쟁은 불가피한 현실로 과거 4차에 걸친 중동전쟁의 불씨가 되었고 이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제5차 중동전쟁이라고 구분해야 할 것이다. 현재 상황은 이슬람권의
인사청문회라는 것이 해당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 및 안보철학을 중점으로 검증이 되어야 하나 과거 ‘정치적 수사(修辭)’를 시비하여 ‘말꼬리잡기’로 국가적 인재를 낙마(落馬)시키려는 것은 잘못이다.신윈식 국방부장관 후보자 발언의 진위라는 것이 정치적 진영논리와 군사적 식견에 의한 것이라면 헌법 제2장(국민의 권리와 의무)의 제17조(사생활의 자유)와 제19조(양심의 자유) 및 제21조(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에 보장된 국민의 입장에서 애국적 활동으로 볼 수 있다.물론 반대진영에서 문제를 삼는 것도 자유의 일부이지만 인사청문회
육군사관학교 교수부 정문에 세워져있는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이 문제가 되고 있다. 2018년 3월 1일 육사에는 국군의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의병과 독립군 그리고 광복군의 정신을 계승하는 행사로 독립영웅 5인의 흉상제막식이 거행됐다.이 과정에서 항일독립전쟁이 재조명이 되었으나 왜 저분들이 5대 독립영웅으로 선정되었는지는 그 과정의 투명성에 정치적 정권적 의혹이 있었다. 당시 정권의 특정권력자의 집안내 어르신을 끼워넣은 것은 아닌지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그런데 최근 국방부와 보훈부에서 이 흉상들을 독립기념관으로 이전이 가능한지에 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연설은 미국의 정치가이며 독립운동가인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의 외침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도 단적으로 ‘자유’라는 정치철학의 선언이었다. 윤 대통령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그것이 ‘자유’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유의 보편적 가치를 재발견 해야 하고,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자유시민이 되어야 하는 것”을 역설했다. 그리고 “어떤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 방치된다면 우리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자유마저 위협받게”되는 것으로 “어떤 사람의 자유가 유린되거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무려 1129일간의 동족상잔이었으며, 그 전쟁은 북한 김일성의 전쟁범죄로 시작된 ‘남침전쟁(南侵戰爭)’이었다.오는 27일은 정전협정이 체결된지 제70주년이 되는 날이다. 돌이켜보면 과연 정전협정이었나 할 정도로 ‘정전(停戰)’에 회의를 품게한다. ‘정전’의 사전적 의미는 “교전 중 어떤 목적을 위해 한때 서로 교전을 중지함”(에센스국어사전)이라고 정의되어 있으나 끊임없이 70년간 교전해왔기 때문에 유감스러운 단어이다.정전협정문의 ‘서언’에는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우리는 올바른 역사관, 책임있는 국가관, 명확한 안보관을 가져야합니다.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공산집단에 대하여 유엔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부르고 다녔습니다.” 이 발언은 지난 6월 28일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한 연설의 일부이다. 실로 연설을 들은 귀를 의심하게 되는 명쾌한 자유민주 대한민국 국가원수의 통찰력(insight)이다. 민족사의 흐름에서 지금 21세기 2023년 대한민국의 존재적
지난 5월 10일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정권 5년의 안보위기와 경제파탄 및 외교혼선이라는 국정의 비정상화를 단 1년 만에 동맹안보 강화와 경제순항 및 외교안정으로 국정의 정상화와 국익(國益)에 충실했다는 중평(衆評)을 받고 있다. 특히 윤대통령 자신의 전격적인 결단으로 한미동맹의 ‘워싱턴 선언’과 한일정상의 ‘셔틀 외교’라는 핵심적 안보 및 외교성과는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북핵위협이 현실화된 동북아 정세에서 한미일의 외교공조와 안보협력을 이끌어낸 윤석열 정부의 선제적 국정행보는 문 정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카는 역사를 살펴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길을 잘못 들었는지를 찾아보고, 왜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과거를 통해 미래에 대한 건전하고 균형 잡힌 전망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과거는 살펴볼 수 있는 것이고, 현재와 과거가 대화하면서 다가오는 새로운 미래를 건전하게 열어가자는 관점에서 과거 43년전 ‘5.18 민주화운동’을 누구든지 언제고 다시 볼 수 있어야 국가가
문재인 정권의 5년간 한국과 일본의 외교관계는 냉전(冷戰)을 방불케 하는 최악의 대결국면이었다. 문 정권에서 일본과 시비를 다툰 논점에는 원론적으로는 과거사 문제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문제를 풀어갈 생각보다는 반일감정을 자극해 정치적 반사이익을 계산한 좌파적 외교술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전범국 일본과는 자유민주진영에 공존하면서 냉전기에는 국익과 실리를 위해 안보와 경제협력과 문화교류를 중시했다. 탈냉전기에는 과거사 문제로 한일 양국간 갈등이 증폭하면서 해결의 기미가 없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양상으로 평행선이다.이러한 한일
1963년 12월 21일! 말도 글자도 모른 채 독일이라는 이역만리 낯선 땅으로 조국의 경제발전과 한독우호 증진을 위해 123명의 첫 광부가 파독의 길에 올랐다. 개인적으로 잘살아보겠다는 꿈을 안고 떠났던 길이지만 그들의 가슴에는 조국을 먼저 생각했던 용감한 도전이었다. 60년 전 한국은 1인당 GDP 103달러, 무역규모 5.2억달러의 세계 최빈국으로 미국과 우방의 무상원조에 의존하는 나라였었다면 이해될까? 1977년까지 모두 47차에 걸친 약8천여명의 산업전사들이 독일에 진출하였다. 지하 1,000m와 35℃의 지하탄광에서 흘린
다부동 전투는 1950년 8월 20일부터 27일까지 경북 칠곡군 왜관읍과 가산면 다부리일대에서 벌어진 국군 제1사단(사단장 백선엽 준장)과 북한군 제1, 3, 15, 13사단과 격돌한 국가존망의 결정적 전투였다. 김일성은 6.25전쟁을 도발하면서 제5회 광복절 기념행사를 부산에서 하겠다는 허무맹랑한 계획을 밀어붙였다. 북한군 4개 사단을 상대해야 하는 국군 제1사단으로서는 병력과 장비와 탄약에서 취약해 전멸이 우려되는 전투였다. 북한군 제2군단은 미 27연대의 방어정면을 회피해 전투력이 약세인 국군 제1사단 정면(제11, 12, 1
전쟁(War)에서 작전(Operations)라는 것은 무엇인가? 합동군사대학교가 발행(2013년)한 미 국방부 군사용어사전(DOD DM&AT)에는 ‘전략적 군사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만든 일련의 기동과 어떤 전투행동’으로 정의하고 있다.그런데 작전의 규모에 따라서는 대규모 작전과 소규모 작전으로 구분할 수 있고, 작전결과에 따라서는 승리한 작전과 실패한 작전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승리한 작전의 성과에 따라서 ‘대첩(大捷)’이라고 명명하는데, ‘대첩’은 전쟁 중 전투에서 아군이 적군을 크게 이긴 전승을 지칭한다. ‘대첩’은 전쟁국
지난 16일 일본 각의(국무회의)는 자국의 외교·방위정책 기본방향을 담은 ‘국가안전보장전략’을 비롯해 ‘국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 등 3개 문서를 연이어 개정했다. 특히 일본정부는 이들 문서 개정을 통해 자위대의 ‘반격능력보유’를 명문화했다. 이 가운데 일본자위대가 유사시 북한의 탄도미사일 공격에 막저 반격능력을 즉각 행사하고자 하는 경우 우리 정부의 사전 동의여부를 두고 한·일 양국의 견해가 다른 징후가 있어 자칫 대북공조에 갈등이 우려된다.과거 일본 정부와 집권 자민당은 아베신조(安倍晉三) 전 총리 재임때부터 ‘적 기지’
문재인 정권은 우리 사회의 경제적 취약층을 대상으로 ‘마을공동체사업’을 내세우며 조직화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는 경제취약계층의 약점을 파고들어 ‘공동소비’, ‘공동생산’, ‘공동교육’, ‘공동육아’ 등 그럴듯한 마을공동체단위로 묶어서 사회주의적 시스템으로 편의를 제공해 정치적 지지기반을 형성하는 고도의 좌익화 사업을 추진했었다고 여겨진다. 이런 조직과 체제가 합법적인 방식으로 정부의 세금까지 지원받아가며 전국적으로 확산되어가는 작금의 현실을 예의주시하고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심각한 관점에서 원점에서 ‘주민자치기본법’을 재검토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채 6개월이 안된 173일만에 발생한 ‘이태원압사사고’로 집권 1년차에 최악의 악재를 맞이하고 있다. 우발적인 사고의 발생으로 지금 국정(國政)이 총체적으로 난국(難局)에 빠져들어 국민들의 입장에서 답답한 심정이다.그런데 국가사회적 난관(難關)을 여야없이 협치(協治)를 기대했지만 여전히 당리당략을 앞세운 정쟁거리 만들기에 여념이 없어 국민들의 실망이 작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노동계의 ‘동투(冬鬪)’사태는 국가산업의 중추를 마비시키면서 그 피해정도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화물연대를 앞세운 민노총의 이
지난 15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충남도청과 언론(대전일보) 그리고 여야국회의원(홍문표, 김종민) 공동주최로 ‘육사 충남이전·유치를 위한 국회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토론은 커녕 대회사도 못한 ‘혼란회’였다. 김태흠 도지사가 사주(使嗾)하는 토론회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로 육사총동창회와 충돌이 예상되던 일이었다. 이면에는 주관자측의 고도로 계산된 ‘노이즈마케팅(noise marketing)’이었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의 현수준을 재발견한다.대한민국 국회에서 정책토론회를 한다는데 왜 이런 ‘난장판’이 되었는가를 그 원인